한국에서 저는 부족함 없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벌어서 썼습니다.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남들 다 걱정하는 등록금 걱정 한 번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 관계와 교우 관계도 좋았고, 나름 해보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만족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25살에 브라질로 해외 봉사를 갔습니다. 평소 배우던 운동 때문에 브라질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해외 봉사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브라질에 있으면서 처음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냈습니다. 쾌활한 성격 덕분에 현지인들과 쉽게 친해지고,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의사소통도 제법 수월했습니다. 눈치껏 행동하고 열심히 하니까 모두 저를 좋아해 주었습니다. 공사 일도 배우고 방송일도 배우면서, 이렇게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인 2월, 영어캠프를 열어 학생들을 만나 영어를 가르쳤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인 2월, 영어캠프를 열어 학생들을 만나 영어를 가르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코로나가 터진 후로는 해외 봉사의 모든 활동을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아카데미, 한국어 수업, 월드캠프 등 큰 활동부터 작은 모임까지….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프로그램이 새로 생기는 등 일이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송 중에 조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졸고 있던 저를 짜증 섞인 말투로 깨웠습니다. 순간 화가 난 저는 그 친구에게 “너는 아무것도 몰라!”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나 없이 한번 잘 해보라’는 생각에 그대로 방으로 올라가 잠을 잤습니다.

브라질에서 건축봉사를 하고 있는 최원진 씨.
브라질에서 건축봉사를 하고 있는 최원진 씨.
노래 콘테스트에 나갈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함께 노래하는 친구들과 찰칵.
노래 콘테스트에 나갈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함께 노래하는 친구들과 찰칵.

나중에 그 친구는 화가 단단히 난 듯 ‘왜 네 마음대로 일을 하냐’고 따졌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힘들었지만 참아왔던 것, 단원들이 몰라줬던 것 등등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피곤하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있고, 힘든 것을 들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미 단원 3명과 싸우고 화해하는 것을 반복하며 제가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본 모습을 만나며 진짜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알게 모르게 저를 신경써주시고 저와 싸워주신 모든 사람이 고맙습니다.

글 최원진 (브라질 해외 봉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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