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이티에서 대지진으로 거의 30만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이티에 해외 봉사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고 취업 준비를 하느라 잊고 지내다가,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면서 제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필요해 해외 봉사를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의 연속이었어요. 미국을 경유해 아이티로 갔는데, 경유 과정에서 가방이 어느 미국 분과 바뀌었습니다. 아이티에 도착해 그 사실을 알고 바로 주인에게 가방을 보냈는데,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모든 비행기가 취소돼 제 가방은 결국 받질 못했어요. 당장 갈아입을 속옷도 없었습니다.

그걸 지켜보신 지부장님이 본인의 속옷 두 장을 주셨고, 시청에서 나눠준 아이티 티셔츠 한 장으로 거의 반년을 버텼어요.

한번은 무척 아팠습니다. 열도 많이 나고 살도 많이 빠져서 한국에 가고 싶었어요. ‘내가 왜 아이티에 왔지? 코로나 때문에 외부 활동도 못 하지, 가방도 미국에 있어서 생활하는 것도 여의치 않지, 게다가 몸은 이렇게 아프지…’ 하면서요.

코로나가 잠잠해진 후, 봉사단원들이 오까이라는 지역에 가서 현지 아이들과 한국어 말하기대회를 준비했습니다. 그때 제프라는 아이를 만났어요. 작고 왜소한 체격 때문에 친구들한테 항상 놀림을 당하는 아이였어요. 몇 번이나 죽고 싶다고 말하며 삶을 비관하는 친구였지요. 그런 제프가 저와 함께 한국어 말하기대회를 준비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지부장님이 항상 “준모야, 네가 아이티 에 있는 동안 선한 영향을 주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저 역시 우울할 때가 많았지만 그 친구에게만큼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려고 했죠. 신기하게 제프가 변하더라고요. 여전히 놀림을 당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냈어요. 그런 제프를 보며 이상하게 제가 행복했어요. ‘나도 저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오까이 지역에서 열린 연말 콘서트에서 공연중인 연준모 단원.
오까이 지역에서 열린 연말 콘서트에서 공연중인 연준모 단원.

코로나로 인한 제한이 모두 풀려 8월부터는 아이티 곳곳을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오까이 지역에 유명한 지휘자께서 저를 연말 콘서트에 초청하셨어요. 같이 노래하자고요. 제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종종 노래를 불렀는데, 현지 분들이 좋게 들어주셨는지 연말 콘서트에 초청을 해주신 거죠.

12월에 오까이 지역을 다시 방문했는데, 바로 장티푸스에 걸려서 너무 아프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아픈 게 그저 죄송했어요. 겨우 기운을 차려 콘서트 무대에 섰는데, 정말 많은 아이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제가 말하는 것은 서툴지만 노래는 현지어로 마음껏 부를 수 있어서 콘서트에 오신 분들과 노래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마쳐져 정말 기뻤어요.

아이티에서 많이 아팠지만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참 행복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제프에게 흘려주었던 긍정 에너지가 저에게도 흘러들어와 저 역시 행복한 사람으로 바뀐 거예요. 제프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제가 저를 도운 셈이 되었어요.

글 연준모 (아이티 해외 봉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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