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Essay

몇 해 전, 시골에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께 아이패드를 선물해 드렸다. 자녀들은 결혼해 도시로 나와 살고, 아픈 아내는 요양원에서 지내게 되면서 혼자 남은 할아버지는 소일삼아 밭을 가꾸셨다. 농촌에는 사람 그림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텅 비었고, 그곳에 계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커다란 화면으로 영상통화를 하실 수 있도록 손주들이 용돈을 모아 할아버지께 사드린 것이다. 활용법은 간단하다. 영상통화가 오면 초록색 버튼에 손가락을 대고 왼쪽으로 쭉 그어서 켜면 된다. 그리고 배터리를 제때 충전해주면 된다. 매달 몇 만원씩 내는 인터넷 전화까지 설치해 와이파이로 얼마든지 통화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드렸다. 이제 손주들과 영상으로 통화를 하면 얼마나 기쁘고 반가워하실지 우리는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반응은 냉담했다. “야야~ 무섭다. 내는 이런 거 싫다.” 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사용하기 쉽다고 여러 번 권했지만 자신은 못 한다며 만지지도 않고 가져가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를 겨우 설득해서 아이패드를 집에 놓고 왔지만, 이후에 영상전화를 드려도 받지 않으셨다. 결국 다음 명절에 뵈러 갔을 때 도로 들고 와야 했다.

태블릿PC를 보는 할아버지와 아이 할아버지는 왜 아이패드를 ‘무서워’ 하셨을까? 아직 폴더 폰을 쓰시고, 컴퓨터 자판도 쳐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손주들이 사온 비싼 물건을 당신이 잘못 만지면 고장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우셨던 것이다. 또 ‘터치’라는 작동법이 너무 낯설기도 했다. 태블릿PC는 할아버지에게 결국 넘지 못한 ‘부담’이었다.

(일러스트=김현정)
(일러스트=김현정)

반면에 21개월 차 인생을 살고 우리 집 꼬맹이는 ‘터치’에 환장한다. 어쩌다 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손에 넣으면 전원을 켜서 어플도 눌러보고 혼자서 동영상도 촬영하고 사진도 찍는다. 물론 거의 자기 발가락이나 방바닥을 찍지만,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폼이 제법 능수능란하다. 심지어 내가 어머니와 통화하고 나서 “끊을게요~”라고 하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사리 손으로 빨간색 종료 버튼을 주저 없이 누른다. 아이에게 전자기기는 부담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전자기기는 이렇듯 말 못하는 어린아이라도 반복해서 시도해보면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어렵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할아버지께는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물건인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많은 부담을 만난다. 언제 부담을 느낄까? 나에게 익숙하고, 쉬운 것, 또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부담스럽지 않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 나의 한계를 넘는 어려운 일을 할 때, 또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막막해진다. 사람마다 부담을 느끼는 일과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마음의 자세는 둘 중 하나이다. 피하느냐, 맞서느냐. 부담을 피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은 “난 이게 익숙해요. 전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이렇게 살래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하는 것은 결코 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담을 뛰어넘을 때, 삶의 질이 향상되고 마음에서 자유를 얻는다.

수포자의 길 앞에서 생각을 바꾸다

나의 길지 않은 30년 인생도 부담의 연속이었다. 그중에 학창시절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이 수학 시간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근의 공식이 등장하면서부터 수학시간이 싫었다. 내가 이해하는 속도보다 선생님의 수업 진도가 훨씬 빨랐다. 혹시 선생님께서 나에게 질문을 하실까 봐 수업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도 수학 시간에 암기 과목 공부하는 친구들처럼 수학을 아예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여러분, 고3이 되면 절반 이상이 수학을 포기합니다. 포기하고 다 찍으면 잘해도 30점 나오기 어렵지만 포기하지 말고 기본 연습문제라도 맞추자는 생각으로 해보세요. 50점, 60점만 나와도 대학이 바뀝니다.”

‘수포자’(수학 포기자의 약자)의 길 앞에서 생각을 바꿨다. ‘그래! 피하지 말고 한번 해보자!’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심화문제나 응용문제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기본문제만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해서 풀었다. 기본 원리가 이해되고 공식을 외우면서 틀린 문제가 하나둘 줄어들었다. 그리고 비(틀린 문제)가 세차게 내리던 문제집에 언제부턴가 눈(맞는 문제)이 내리기 시작하니까 점점 수학에 재미를 느꼈다.

수능에서 수학 1등급을 받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3등급을 받은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히 기적과 같았다. 그리고 수학 성적보다 더 값진 수확은 ‘배우는 속도가 느리고 최고 수준에 다다르지 못해도 뭐든지 포기하지 않고 배우면 기본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삶의 교훈이었다.

실버대학에서 자원봉사하시는 이모의 용기 코로나19의 여파로 비대면 시대가 부동의 자리를 잡았다. 이에 10대와 20대들은 자신의 활동영역을 온라인으로 빠르게 전환하였다. 반면에 온라인에 비교적 취약한 중년과 노년층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화될수록 더 숨통이 막혀 한다. 매일 노인복지관에서 취미생활도 하고 양로원에서 같은 연배의 노인들을 만나서 담소도 나누었는데,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실버대학에서 자원봉사하시는 이모로부터 신선한 소식을 들었다. 온라인으로 실버대학을 전환해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봉사자들의 평균 연령이 50대 이상인데 어떻게 온라인으로 가능할까?’ 너무나 궁금해서 나도 온라인으로 실버대학에 참석해 보았다. 강연 영상은 물론이고 크로마키 스크린을 이용해서 멋진 배경까지 넣은 공연 순서도 있었다. 그리고 직접 줌Zoom으로 화상 채팅을 하고 유튜브 라이브까지 관리하는 모습이 전문가의 수준 그 자체였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는지 이모에게 여쭤보았다.

“문 닫은 실버대학을 온라인으로 다시 열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정말 막막했지. 줌, 화상 채팅, 영상 촬영과 편집…. 용어부터가 너무 낯선 거야. 그런데 어떡해? 우리를 기다리는 노인 학생들을 생각하니까 해야겠더라고. 아들딸한테 하나씩 물어보면서 배웠어. 내가 줌 채팅 관리를 처음 할 때, 내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길래 목이 터져라 소리 높여 말했거든. 알고 보니 음소거로 되어 있었던 거야. 호호호~ 그런 우리가 영상 찍겠다고 신형 스마트폰을 사고, 어떤 봉사자는 편집을 초보부터 배우기 시작하고…. 모르지만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하니까 되더라고. 우리는 지금도 신기해! 어르신들은 실버대학 온라인에 들어와서 같이 얼굴 보고 같이 댄스를 하면 TV 보는 것과는 다르게 친구들을 진짜 만난 것처럼 너무 좋다고 하시네.”

문제를 꺼내 놓아야 마음이 가벼워지고

부담을 대하는 자세가 ‘피하자’인 사람은 사고가 경직되고 ‘못 해, 안 돼’ 라는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부딪치자’로 노선을 바꾸면 생산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이 능동적으로 바뀐다. ‘안 되는 나’에서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로 생각의 길을 옮겨간다. 방법을 찾고 물어보고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담’이라는 산을 오르는 게 한순간에 쉬워지거나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도저히 못 하겠다’는 소리가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높은 산일수록 정상에서 멋진 경치가 보이듯이, 내가 불가능해 보이는 한계를 넘을 때 더 큰 보람과 즐거움을 얻는다. 마치 환하게 웃으며 조카에게 온라인 실버대학을 자랑하는 우리 이모처럼!

인간관계에서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사람 사이에 갈등이나 오해가 생겼을 때, 내가 큰 부탁을 해야 할 때,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 최대한 만남을, 마찰을, 대화를 피한다 하더라도 마음속 부담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도 돌이켜보면 룸메이트와 갈등이 생기는 것이 싫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했던 적도 있었고, 교수님께 양해를 구할 일이 있을 때 교수실 문을 열기가 부담스러워서 교수 동에서 한 시간 넘게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던 적도 있었다. 취직한 뒤엔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업무시간 내내 긴장해서 오히려 더 실수를 많이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부담스러워도 입을 떼고, 교수실도 찾아가고, 내가 실수한 것을 얘기하고, 어려운 부탁도 해보고, 불편한 것도 꺼내 놓았을 때 오해가 풀리고 이전보다 더 깊은 신뢰와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설령 갈등이 시원스레 풀리지 않고 내가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품었던 마음의 짐은 한결 가벼워졌다.

한계나 문제는 ‘성장의 디딤돌’

인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개발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문제나 한계, 어려움 등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자 ‘기회’이다. 따라서 내가 없애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바로 ‘문제를 피하려는 생각’이다. 나 역시 작년에 ‘코로나’라는 재앙을 만났다. 순식간에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온라인으로 강연을 했고 글을 썼고 영상편집을 배웠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평탄한 삶을 살 때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을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실행한 것이다.

오늘도 한계나 문제를 만나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 체계가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이제 안다. ‘피하고 싶다’는 생각의 버튼을 끄고 ‘한번 부딪쳐 보자’라는 버튼을 켜야 한다는 것을!

글쓴이 오지영

코로나 시대 비대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온라인으로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영상편집을 배웠다. 이를 기반으로 최근 유튜브를 시작했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는 어학연구소에서 중국어 수험서 편집을 했고, 뜻한 바가 있어 대학원에 진학해 아동가족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결혼 후에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자녀 교육 관련 심리상담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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