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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도, 인생처럼 빛과 그림자가 있다‘영’의 건축가로 불리는 안도 다다오
송지은 기자 | 승인 2021.02.15 08:53

안도 다다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외에 다수의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유현준 건축가는 그를 근본과 본질에 다가선 ‘영’의 건축가라고 평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건축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것 같지만, 안도는 젊은 시절 권투선수로 활동했고 독학으로 공부했다. 마치 링 위의 권투선수처럼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거듭한 안도 다다오의 건축 여정을 소개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긴장과 우울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작품을 찾다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떠올랐다.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는 한 발 한 발 묵묵히 한계를 넘고 나아간 그의 건축 이야기라면 뜻밖의 힐링이 되리라 예상했다.

안도는 말한다. “건축 이야기에는 반드시 빛과 그림자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밝은 빛 같은 날들이 있으면 반드시 그 뒤에 그림자 같은 날들도 있다.” 매사 뜻대로 되지 않았고 대개 실패로 끝났지만, 희미한 가능성에 희망의 빛을 품고 살아온 그의 삶은 현실이라는 그림자를 뛰어넘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행복은 빛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향해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있다고 말하는 그의 정신을 건축물을 통해 찾아본다.

1941년 생 안도 다다오. 그는 건축에 빛을 잘 활용했다.

자신을 향한 도전의 나날들

안도 다다오를 세상에 알린 첫 데뷔작은 오사카에 있는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이다. 1969년에 건축 사무소를 열었지만,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일본 건축계에서 독학 건축가가 명함을 내밀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일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남는 시간에 아무도 의뢰하지 않은 설계도를 혼자 그려나갔다. 지인의 소개로 건축 의뢰가 왔을 때 마침내 그 노트 속에 담아둔 아이디어들을 실현했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기법은 노출콘크리트와 유리창으로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독학으로 건축을 알아가던 스무 살 시절, 그는 헌책방에서 발견한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에 매료되었다. 넉넉지 못한 집안 환경에 어린 시절부터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대학 진학을 못하고 부득이하게 독학으로 건축의 길에 들어섰다.

17살에 재미로 시작한 복싱에서 한 달 만에 프로 복서 자격을 따고 해외 원정 경기까지 나섰지만, 당시 복싱 세계 챔피언 하라다 선수의 경기를 실제로 보곤 자신이 다가설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을 깨닫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던 중 어린 시절부터 목공소와 주조소鑄造所를 오가며 흥미를 두었던 것을 기억하며 건축 설계의 길에 뛰어들었다.

무엇을 배워야 할지 의문이 생겨도 물어볼 선배나 교사도 없이 장님이 앞을 더듬듯 건축을 공부했다고 한다. 건축학과 교과서를 모두 사서 1년 안에 다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그는 잠을 자고 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하던 중에 르 코르뷔지에의 책을 발견하고 향학열에 불을 붙였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도면을 다 외울 정도가 된 그는 대가의 건축물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오기로 한다. 당시 모아둔 돈을 몽땅 털어 그는 유럽으로 갔고, 르 코르뷔지에의 ‘사보아 주택’과 ‘롱샹 성당’을 비롯해 유명 건축물들을 마주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추상적인 언어로 아는 것과 실제 체험으로 아는 것은 그 깊이가 전혀 다르다.”고 썼다. 이를 그의 건축에서 실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안도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미로와도 같은 다양한 시점을 가진 건축물을 만들었다. 스물네 살 때 떠난 건축 순례에서 그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라고 할 정도로 많은 영감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비난과 찬사가 엇갈린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앞서 말한 안도의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에서 그의 건축 철학을 상당 부분 엿볼 수 있다. 목조주택이 늘어선 스미요시 마을에 창문도 하나 없는 사각 콘크리트 건물이 주택이라고 지어졌다. 굳이 작은 부지를 삼등분하여 중앙을 중정(외부공간)으로 설계했다. 비 오는 날 화장실에 가려면 우산을 쓰고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건축 전문지에 이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의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은 콘크리트 박스 형태로 지어졌다. 별도의 마감재 없이 간결한 소재와 공간 구성으로 정신적 풍요를 이끌어낸이 집은 안도 건축의 출발점이다.

안도는 주거 공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중 단지 효율성과 편리함이 전부가 아닌 풍부한 변화와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한다. 주거에는 육체와 동시에 정신도 산다는 그의 지론이다. 필요 없는 모든 것을 제거해 공간을 확장하고 집 한복판에 중정을 두어 하늘을 볼 수 있고 계절의 변화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당시 미국을 흉내낸 밝은 교외형 주택이 좁은 일본 땅에 즐비하게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일본의 환경에 맞는 주택을 고민한 결과다.

따로 마감재도 없이 콘크리트만을 사용한 간결한 소재와 단순한 기하학 공간 구성에 자연을 도입함으로써 정신적 풍요로움을 강조한 이 집은 안도 건축의 거점이다. 콘크리트라는 소재는 단열이 잘 안 되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지만 닫힌 실내에서 숨죽이고 사는 대신 일부 편리함을 희생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호흡하는 생활이 쾌적하다는 그의 주거론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생각보다 강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콘크리트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창조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자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라 답한다. 결코 아름답다고 볼 수 없는 콘크리트를 훌륭한 건축재로 탈바꿈시킨 그의 건축으로 창조력은 이미 입증된 셈이다.

역경을 이겨내는 사고력의 결과물 ‘빛의 교회’

그의 건축을 비난하는 사람들만큼 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아짐에 따라, 그에게 주택뿐만 아니라 공공재와 종교 건물, 상업 건축물 등을 건축할 기회가 열렸다. 새로운 기회에서 그가 도전하고자 했던 주제 중 하나는 빛, 물, 바람과 같은 자연이었다. 다른 장식을 일체 배제하고 ‘빛’으로써 색다른 공간의 특징을 만들고자 했다.

그 대표작 중에 ‘빛의 교회’가 있다. 그는 교회 건축 의뢰가 들어왔을 때 기능성을 능가한 정신을 표현한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교회의 신자들이 정성껏 모은 귀한 돈이라고 건네준 건축비는 설계 이익은커녕 일을 맡아줄 시공사도 찾기 어려운 액수였다. 이미 교회 건축을 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참된 의미의 종교 공간이라고 볼 수 없었던 그는 ‘빛의 교회’ 건축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로 보았다.

영적인 충만감을 얻는 공간이 되도록 의자 외엔 여백으로 남겨둔 '빛의교회

부족한 예산과 50평의 좁은 대지라는 제한된 상황이었지만 주도면밀하게 사고하고 최선의 선택을 했다. 사각 콘크리트 박스에 벽 하나를 어슷하게 꽂아둔 구성에 실내에 들어오는 빛을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정면에 십자형으로 벽을 뚫었다. 얼핏 보면 단순한 구성이지만 실제로 가본 사람들은 입구 벽을 통과하며 들어갈 때 엄숙한 느낌이 들며 어두운 공간 내부로 들어가면 십자가 형태로 강하게 비치는 빛이 마치 신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2000년이 넘는 교회 건축사에서, 안도의 건축물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창조성이 있다는 점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찬사를 보낸다.

그는 “사람의 ‘사고’는 경제를 초월하는 힘이 된다.”라고 한다. ‘빛의 교회’는 그에게 ‘무엇을, 누구를 위하여 짓는가?’ 라는 중요한 물음을 마음에 새겨주었다고 한다.

건축가의 책임감으로 지은 ‘나오시마 섬’ 미술관

1980년 말부터 나오시마 섬에서 공공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한 ‘베네세 코포레이션’ 기업 사장이 그에게 미술관 건축을 직접 의뢰했다. 심한 자연 훼손으로 황폐해지고 노인이 대다수인 외딴 섬 나오시마를 문화의 섬으로 살리겠다는 취지에 공감한 안도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미술관 절반은 땅에 묻힌 듯이 보이지 않게 설계했다.

안도의 건축은 직접 그곳에 가서 보고 걸어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미술관도 처음 들어서면 콘크리트 벽으로 막아선 좁고 긴 길을 만난다. 길 마지막에 난 좁은 입구를 통과하면 지금까지와 다른 뻥 뚫린 공간이라든지, 통유리에서 들어오는 강한 빛을 마주하는 등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들어가면서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있는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의 오벌 룸. © Alex Roman, Chichu Art Museum, Naoshima

한때 쓰레기 섬이라 불리던 나오시마 섬은 안도의 손길을 거쳐 이제 예술의 섬으로 유명해졌다. 1992년 베네세하우스 뮤지엄 완공 후에도 20여 년에 걸쳐 호텔, 지추미술관, 이우환 미술관을 나오시마 섬에 지었다.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향유되는 건축을 하겠다는 그의 신념을 이루고자 그곳 사람들과 계속해서 대화하며 외딴 섬을 생명이 깃든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이제는 일본 외에 미국, 유럽, 우리나라에서도 안도의 건축물을 종종 볼 수 있다. 현지의 자연과 문화를 고려한 그의 건축은 외국에서도 사랑을 받으며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의 건축을 직접 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원주의 ‘뮤지엄 산’을 추천한다. 안도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산책로와 기하학적 구성의 노출 콘크리트로 된 미술관을 관람하는 재미를 느낄 것이다. 코로나로 외출이 꺼려진다면 그의 건축을 영상이나 사진으로도 감상해 보길 권한다. 작품을 관람하듯 느긋한 마음으로 안도의 건축을 감상하는 것도 2월을 따뜻하게 보내는 슬기로운 겨울 생활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쓴이 송지은

대림미술관과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홍보를 담당한 바 있으며, 한성백제박물관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어린이 대상 전시 교육 강사를 했다. 대학원에서 박물관미술관교육을 전공한 그는 문화와 예술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송지은 기자  songj86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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