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봉사를 가기 전, 내가 꿈꿨던 모습들이 있다. 스페인어를 빨리 배워서 현지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고, 주변 나라들에도 자유롭게 왕래하며 많은 경험을 하는 것. 이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란 부푼 기대를 안고, 나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콜롬비아로 떠났다.

불청객 코로나바이러스

콜롬비아에 도착하자마자 같이 온 봉사단원들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최대한 다양하고 알차게 하고 싶어서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언어는 물론 태권도, 미술, 음악 등 체육 및 예술 분야 아카데미도 기획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생들이 찾아왔다. 그들과 대화하며 아카데미를 진행한 덕분에 나도 스페인어를 빠르게 배울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뿌듯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 막았다. ‘왜 하필 지금 이런 전염병이 생긴 건지…’ 원망이 터져 나왔다. 그런 원망도 잠시, 죽음의 두려움이 찾아왔다. 콜롬비아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져 사망자가 계속 늘어났고, 급기야 정부는 강제 격리를 시행하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대던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텅 빈 거리를 볼 때마다 ‘내가 만난 학생들은 무사한지, 그 가족들은 괜찮은지,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도 여기를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사진 왼쪽이 오지원 단원
사진 왼쪽이 오지원 단원

몸은 집에 있어도 사람을 만나는 방법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대부분 ‘코로나가 심각하고 그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한국으로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현재로선 어디에 있든지 코로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고 어려움이 있는 만큼 그 과정에서 얻어 가는 것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왕 있을 것이라면 콜롬비아에서 알차게 보내기로 정했다.

우선 코로나로 잠정 중단된 코리안 아카데미 수업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고민했다.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확인해 보니,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고, 더 멀리 있는 친구들은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았다. 수업에 빠지지 않고 출석했기 때문에 당연히 가까운 곳에 사는 줄 알았는데, 한 시간 수업을 받기 위해 4~6시간을 투자한 친구들이 너무 놀랍고 고마웠다.

우리는 수업을 계속 이어갈 방법으로 ‘온라인 수업’을 선택했다. PPT로 수업 자료들을 준비해서 진행해 보니, 칠판에 써가면서 수업했던 때보다 시간도 절약되고 수업 내용도 알찼다. 무엇보다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이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아예 올 수 없었던 친구들까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덕분에 교실에서 수업할 땐 25명이었던 학생들이 2,0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온라인으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드라마 '도깨비' 대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온라인으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드라마 '도깨비' 대본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코로나로 꼼짝하지 못하고 건물 안에서만 생활하던 우리에게 ‘온라인 수업’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매일 많은 친구들을 만나서인지 우리는 매 순간 활기가 넘쳤다. 온라인 수업에서만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온라인 수업 마지막 날, 수업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나에게 ‘최고의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해 우울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시작할 땐 엄두가 나지 않았던 한국어를 가르쳐주어 감사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텐데 콜롬비아에 남아줘서 고마워.”

학생들은 여러 이유로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내가 만약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이 학생들을 만날 수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선택을 잘했다는 마음이 들고, 그런 나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 또한 고마웠다. 그리고 언제나 해맑고 씩씩한 친구들을 보며 나도 행복하고,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다시 함께하는 기쁨몇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강제 격리 조치도 조금씩 완화되었다. 우리는 수도 보고타를 벗어나 산후안San juan de rioseco이란 작은 마을로 활동지를 옮겼다. 산후안은 산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산속 마을로, 코로나 감염자가 전혀 없어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정해진 격리 기간을 보낸 뒤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산후안에서 마을로 나간 첫날, 태어나서 외국인을 처음으로 본 아이들을 만났다. 그 아이들은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마냥 해맑게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옆으로 와서 가만히 손을 잡았다. 아이 들의 밝게 빛나는 눈동자와 해맑은 미소가 어찌나 예쁜지, 순수한 아이들에게 난

첫눈에 반했다. 유독 아이들이 많은 산후안, 우린 그런 환경에 맞춰 색종이로 한복 만들기, 율동과 동요 배우기 등의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아카데미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산후안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산후안에서 보낸 시간은 사람 만나는 게 그리웠던 나에게 단비 같은 선물이었다.

산후안에서 키즈캠프를 하며 만난 어린이 친구와 함께.
산후안에서 키즈캠프를 하며 만난 어린이 친구와 함께.

새로운 삶의 공식, 초점

한국에 살면서 어쩌면 결코 느낄 수 없을 행복을 나는 콜롬비아에서 경험했다. 그래서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행복’ 바이러스가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처음 코로나를 마주했을 땐 ‘전염병’, ‘약이 없는 병’이라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하고 실망하게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어디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 초반에는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고 사람을 못 만나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사람 만나는 소중함을 배워 언제 누굴 만나든지 반갑다. 그리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유로운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거나 생각지 못한 난관을 만나는 등 다양한 종류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이곳에서 배운 것을 적용해 행복 바이러스를 얻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살 이유가 늘었다.

글=오지원

단국대학교 스페인어과에 재학 중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으로 콜롬비아에 갔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예상치 못한 1년을 보내며 인생에서 가장 큰 어려움과 기쁨을 동시에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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