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 <노끈 한오라기>

누구나 크든 작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 그때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결백을 증명할 길이 없다면 심정이 어떨까? 우리 삶의 단면을 그린 단편 소설 <노끈 한 오라기>의 주인공 오슈꼬른 영감은 마을에서 도둑놈으로 오해를 받는다. 영감은 너무 억울해서 결백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진실을 밝힐 길이 없어서 고통스러웠을 그의 심정이 이해가지만,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어느 장날, 오슈꼬른 영감은 장터로 가다가 땅에 떨어진 노끈 한 오라기를 발견한다. 노르망디 지방에서 지독한 노랑이로 소문난 영감은 쓸모가 있을까 해서 노끈을 얼른 줍는데, 그때 마구馬具 수선업자 말랑땡 영감이 나타난다. 그는 전에 어떤 일로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던 사람이다. 오슈꼬른 영감은 하찮은 노끈을 줍는 모습을 원수에게 보여주는 것이 적잖이 수치스러워, 주운 노끈을 얼른 셔츠 안에 감추었다가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는다. 그러고는 무슨 물건을 찾다가 발견하지 못한 사람처럼 땅바닥을 이리저리 한참 들여다보다가 장터로 향한다.

그날도 오슈꼬른 영감은 평소처럼 주르뎅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헌병대장이 들어와 영감을 읍사무소로 데리고 간다. 읍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오슈꼬른 영감에게 거리에서 지갑을 주웠는지 묻는다. 영감은 겁을 집어먹고 전혀 모른다고 하지만, 읍장은 지갑 줍는 것을 말랑땡 씨가 보았다고 말한다. 오슈꼬른 영감이 ‘나는 그저 노끈을 주웠을 뿐이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읍장은 ‘지갑을 줍고 나서 지갑에 있던 돈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나 한참 두리번거리며 찾은 것까지 다 알고 있다’며 사실대로 말하라고 종용한다.

그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사람들이 곧이 듣지 않아, 말랑땡 영감과 맞대면해 한 시간 동안 서로 옥신각신한다. 오슈꼬른 영감이 자진해서 몸수색까지 받지만 지갑은 나오지 않는다.

그 소문이 순식간에 마을에 퍼지고,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혹은 고소하다는 생각으로 영감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묻는다. 그때마다 오슈꼬른 영감은 절대 아니라고 펄쩍 뛰며 결백을 주장하지만, 사람들의 의심은 점점 심해진다. 결국,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한마디씩 차갑게 던진다.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저리 비켜요!”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으니 오슈꼬른 영감은 서글프고 괴롭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같은 말만 계속 되풀이한다. 사람들에게 ‘여기서 노끈을 주웠다’고 노끈 주운 자리를 말하고, 누명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행히 그때 지갑을 주운 농부가 나타나서 주인에게 되돌려주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지갑에 새겨진 이름을 읽을 줄 몰라서 농부가 일단 집에 가져갔다가 되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 소문 또한 즉각 퍼졌고,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오슈꼬른 영감도 너무 기뻐서 동네를 돌면서 말했다.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교활한 영감이 주운 지갑을 무식한 농부를 시켜서 돌려준 것’이라며 영감을 더 미워했다. 식당에 간 오슈꼬른 영감은 식사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사람들이 비웃는 가운데 밖으로 나와야 했다.

오슈꼬른 영감은 분하고 수치스러워 눈앞이 캄캄해졌다. 너무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더 엄숙하고 더 자세히 말하며, 노끈 이야기에 온 마음을 쏟았다. 하지만 영감이 더 힘을 주어 말할수록 사람들은 더 수군거렸다. 장난꾸러기 아이들도 심심풀이로 영감에게 노끈 이야기를 해보라고 시켰다. 오슈꼬른 영감이 결백을 주장할수록 그의 몸은 약해져 갔다. 그의 마음도 허약해져서 영감은 연말에 몸져누웠다가 이듬해 초에 죽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노끈 이야기로 결백을 주장하면서 말이다.

모파상의 이 단편소설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이렇게 끝이 난다. 진실이 덮이는 것도 답답하지만, 우리 마음을 더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오슈꼬른 영감의 죽음이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는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아주 깨끗하진 않지만 괜찮은 가치관을 가지고 나름 바르게 산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오슈꼬른 영감이 지갑을 주워놓고 발뺌하고 있었다. 잘못했다고 하면 될 것을 끝까지 결백을 우기는 영감이 늙은 여우처럼 보여, 비웃고 멸시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바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몰린 오슈꼬른 영감은 견딜 수 없어서 힘주어 상황을 설명하고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악화될 뿐이었다. 마치 두 물줄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오슈꼬른 영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날에는 오슈꼬른을 비웃던 사람이 그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해를 받고 미쳐버릴 것만 같을 때, 오슈꼬른 영감처럼 우리는 답답함과 소외감과 분노 속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야 하는걸까?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면 소용돌이치는 물처럼 생각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옳기 때문에 내 생각과 다른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오슈꼬른 영감과 마을 사람들은 같은 일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옳다고 주장할수록 서로 다른 쪽으로 도는 소용돌이가 더 강해졌으며, 결코 함께할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그 속에서 오슈꼬른 영감은 자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혼자였기에 마음을 나눌 길 없이 외로움 속에서 고통하다가 죽어갔다.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 해도, 그의 마음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내몰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그를 내몰았을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사실과 다른 판단이나 질책을 받으며 고통과 서글픔,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마음이 죽어갈 때가 있다. 나 역시 마을 사람들처럼 행동하거나 오슈꼬른 영감처럼 행동했던 적이 있다. 어느 쪽에 서든 ‘내가 옳다’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그 끝은 내가 죽거나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아야 했다. 우리가 살면서 크고 작은 오해는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늘 이런 결말을 맞아야 할까?

조금 떨어져서 인생 전체를 본다면 달라질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틀릴 때가 있고 실수할 때가 있었다. 그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면 생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가는 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내 판단이 옳아 보이지만 틀릴 수도 있어.’ 그러면 내 입장만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입장을 헤아릴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판단이 바른 것 같지만 틀릴 수도 있어.” 하고 오슈꼬른 영감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반대로 오슈꼬른 영감이 ‘나도 다른 사람들을 오해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내가 오해를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다면 ‘다른 길이 있을지 몰라’ 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오슈꼬른 영감이 나를 찾아왔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도 영감님처럼 오해를 받아서 억울할 때가 있었어요. 세상이 밉고, 가만히 있다가도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에 앓아눕고 싶더군요.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누군가를 오해한 적이 있었지.’ 그리고 좀 더 생각해 보니, 제 인생에 억울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생각지 않은 따뜻한 배려를 받기도 하고 어려울때 도움을 받기도 하고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감사한 순간도 많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생각되었어요.

화가 나고 억울한 일만 생각하면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고마웠던 순간들이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지요. 소박하지만 소중한 기억과 손을 잡으면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서 인생 전체를 바라볼 수 있더라고요. 인생이라는 그림에는 밝은 부분도 있지만 어두운 부분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 부분들이 모여서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요. 지금 너무 괴롭겠지만, 그게 영감님 인생의 전부는 아니에요.”

오슈꼬른 영감이 억울함과 외로움과 고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마음에서 인생의 따뜻한 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막을 내렸을 것이다. 한동안은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겠지만, 훗날 그가 지갑을 주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때 오슈꼬른 영감이 마을 사람들에게 “나도 사람을 오해한 적이 있었지.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그래도 우리에겐 감사할 일이 더 많지!”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을 것이다.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이다. 사실주의 작가인 기 드 모파상은 무감동적인 문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작품에 이상 성격 소유자, 염세주의적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장편소설<여자의 일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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