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제1기 온라인 해외봉사단원 7인방

2020년 한 해, 온라인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제1기 온라인 해외봉사단원’. 2020년 3월만 해도 이들은 여느 봉사단원들처럼 1년간 해외에서 지낼 채비를 차곡차곡 마치고 비행기 뜰 날만 기다리던 대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출국 하루 전날 하늘길이 막혔고, ‘왜 우린 못 가는 거야?’라는 실망감과 억울함에 힘이 쭉 빠졌다.

그때 이들은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포기할 것이냐, 맞서 싸울 것이냐’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남들이 미련하다고 하든지 말든지 하늘길이 열릴 때까지, 아니, 열리든 말든 한국에서 어떻게든 스리랑카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 후 8개월여 동안 그들은 온라인으로 43회가 넘는 캠프를 개최했고, 5,000명이 넘는 스리랑카 사람들을 만났다. 온라인으로 해외봉사를 펼쳐온 7명의 대학생을 만났다.

전유진, 전다영, 오재열, 정은영, 김대인, 김효정, 김인호.(왼쪽부터)
전유진, 전다영, 오재열, 정은영, 김대인, 김효정, 김인호.(왼쪽부터)

“안녕하세요!”

7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는 서울의 한 봉사센터를 찾아갔다. 먼저 도착해 의상을 갈아입고 일렬로 서서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 나이가 제일 많은 형이 22살, 나머지 6명은 모두 21살로 동갑내기 친구다.

“카메라에 네 얼굴 엄청 크게 나와.”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단원들의 모습이 풋풋한 이십대다웠다.

그들을 만나러 가기 전, 기자는 ‘해외에 못 나갔으니 그래도 좀 서글프진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들을 보고 있을수록 ‘어떻게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들과 약 두 시간 동안 한바탕 웃으며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주저앉을 것인가?’ vs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인도 옆에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는 과감한 도전과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 까닭에 해외봉사 파견국가 중 인기 국가에 속했다. 그래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회를 얻은 7명의 대학생들. 그들은 1년간 봉사단 워크숍에 몇 차례 참석하고, 한 달을 기다려 비자를 받았다. 스리랑카에서 필요한 물건도 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도 했다. 그런데 출국 하루 전날 비행기가 결항됐다. 처음이 아니었다. 두 번째 결항이었다.

정은영: 저희가 공항에 전화하고 알아보고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다른 비행기도 하나씩 취소되더니, 나중에는 스리랑카 공항 문이 아예 닫혀버리더라고요.

전다영: 기대한 만큼 실망도 무척 컸어요. ‘이제 끝이구나’ ‘왜 우리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생각하기도 싫다’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등 부정적인 생각만 올라왔어요. 그때 스리랑카에 있는 봉사단의 한국 지부장님이 줌으로 모임을 하자고 했어요. 하루에 두세 시간씩 모임을 했는데, 지부장님은 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오재열: 집에서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지부장님이 “여러분이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어디로든지 갈 수 있어. 마음을 스리랑카로 옮기면 이곳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어.”라고 하셨어요.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았는데 그날 그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 내가 스리랑카에 가도 내 마음이 한국에 있다면 늘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 텐데 내가 마음을 스리랑카로 옮기면 스리랑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겠구나.’

김인호: 저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자’는 말이 마음에 가장 와 닿았어요. 처음 해외 봉사활동을 지원할 때 ‘1년간 해외에서 살며 봉사하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자 스펙이지!’ 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온라인으로 봉사활동을 하자고 했을 때 ‘그걸 과연 누가 알아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때 지부장님이 ‘초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그렇게 해보자’ 하고 마음을 바꿨어요.

전유진: 그래서 3월에 각자 집에 있으면서 우리가 처음 시작한 활동이 스리랑카 유튜브 채널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 하는 것이었어요. 서울의 명소를 소개하는 영상, 태권도부터 댄스 챌린지, 먹방 등의 영상을 올렸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가족들이랑 댄스 영상을 찍었던 거예요.

김대인: 저는 처음에 유튜브로 뭘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참가를 안 했거든요 (하하). 그땐 ‘이게 얼마나 가겠어?’ 생각했어요. 그러다 4월에 지부장님이 유튜브 업로드 하는 것만 하지 말고 온라인으로 캠프를 하자고 했고, 이를 진행하기 위해 서울의 한 봉사센터에 며칠간 모이기로 했어요. 그때부터 그곳에 쭉 머물면서 온라인으로 캠프를 진행하며 활동했어요.

전다영: 처음에 대인이 표정이 정말 안 좋았어요. 어차피 안 보게 될 사이라고 생각해서 우리랑 정들 생각을 안했대요. 그러고 있길래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시키고 마음을 열어주었죠(웃음).

김대인: 솔직히 처음에 제가 다른 단원들 힘 빠지게 할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끝까지 먼저 다가와주고 이끌어준 단원들, 지부장님 모두 감사해요.

그렇게 시작한 온라인 캠프, 어느덧 43회가 되었다. 토요일마다 아카데미를 진행했고, 그 외에도 북 콘서트, 한국 문화 캠프, 청소년 캠프, 크리스마스 캠프 등 컨셉을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캠프를 진행했다. 그렇게 많이 하다 보니 지금은 기획, 홍보, 영상 편집 등이 조금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노트북 하나를 가지고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어가며 진행했던 첫 온라인 캠프는 ‘이게 과연 될까?’라는 의문의 연속, 그리고 그 부담을 뛰어넘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김효정: 4월에 캠프를 처음 진행할 때 홍보가 가장 문제였어요. 현지 사람들에게 캠프 소식을 알릴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때 한 친구가 외국인과 채팅할 수 있는 어플이 있는데, 국가 설정이 가능하다며 그 어플을 활용해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홍보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이게 되겠나?’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일단 해봤어요. 모두 그 어플을 깔아 친구도 사귀고, 캠프도 홍보했는데, 우리 예상과 달리 효과가 만점이었죠.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온라인 캠프를 마치고 단체 스크린샷을 찍었다. 화면 오른쪽 맨 아래가 7명을 온라인으로 1년간 지도해준 최현용 지부장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온라인 캠프를 마치고 단체 스크린샷을 찍었다. 화면 오른쪽 맨 아래가 7명을 온라인으로 1년간 지도해준 최현용 지부장이다.

김대인: 맞다, 그때 우리가 줌 모임에 받을 수 있는 인원이 100명밖에 안 돼서 사람들이 더 들어오고 싶어했지만 못 들어왔잖아.

전유진: 너무 신기했어요. 스리랑카 사람들이 캠프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우리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주변 친구들에게 홍보를 해주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어요. 첫 캠프 때 사귄 스리랑카 친구 ‘오찬티아’와 ‘딜카’가 있는데, 지금도 우리와 연락을 주고받는 가까운 사이예요.

김효정: 캠프를 온라인으로 할 때의 장점이 있어요. 스리랑카 지부장님도 가본 적 없는 지방이나 작은 도시의 사람들도 캠프에 참석하고 우리와 소통할 수 있다는거예요.

김인호: 하지만 시골로 갈수록 인터넷 데이터가 부족해 참석하고 싶어도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점들을 고려해 행사 녹화본을 유튜브에 올려 나중에라도 시청할 수 있게 하거나 행사 시간을 조절했어요.

안 되는 거 빼고 다 되는 온라인 세상

5,772km를 넘어 전해진 스리랑카 사람들의 마음

온라인으로 캠프를 진행할 때 가장 많이 준비한 콘텐츠는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프로그램이었다. 한방향으로 콘텐츠를 송출하고 보여주는 순서도 있지만, 줌 Zoom을 활용해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캠프를 하며 만난 스리랑카 친구들이 한국 해외봉사단원들을 위해 캠프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스리랑카에 직접 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스리랑카의 관광지, 음식, 댄스 등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단원들을 위한 ‘깜짝 선물’이었다.

 

오재열: 우리가 하는 활동을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연락을 받으니 스리랑카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우리 마음이 전달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우리만 보는 게 아까워서 한국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연락해 100명 가량 함께했던 것 같아요.

전다영: 저는 영상을 보면서 ‘시기리야’라는 관광지에 너~무 가보고 싶더라고요. 온라인을 통해 스리랑카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졌어요. 스리랑카는 늘 그립고, 가고 싶은 나라예요. 언제든 하늘길 열리면 스리랑카로 슝~ 가려고요.

김효정: 이외에도 캠프를 하면서 알게 된 스리랑카의 ‘Kandy Girls Highschool’에서도 우리를 위해 온라인 캠프를 열어주었어요. 한편 마음에선 ‘이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보고, 이야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지난 1년이 내게 가르쳐준 것

김대인: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주변에 있는 형이나 누나들이 해외봉사 다녀오는 걸 많이 봤어요. 저도 대학생이 되면 당연히 해외봉사를 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당연한 건 없더라고요. 그래도 온라인으로 캠프를 하면서 스리랑카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사실 우리가 아무리 준비해도 잘 안될 수도 있는데, 행사가 잘 진행되어 너무 감사했어요. 스리랑카로 가는 하늘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스리랑카 사람들 마음의 문은 활짝 열린 것 같아요.

오재열: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저는 무척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했어요. 그래서 해외봉사 가서 이런 성격도 좀 고치고 활동적으로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해외로 나가질 못하니 변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스리랑카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최근에 카메라 앞에서도 떨지 않고 즐겁게 사회를 보는 저를 보면서 소소하지만 ‘내가 이미 변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인호: “내 생에 가장 다이나믹했던 시간”

저는 인생을 최대한 제가 계획한 대로 살고 싶었어요. 봉사도 제 계획 중 하나였는데 내 삶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을 만난 거예요. 처음엔 스트레스가 컸지만, 마음의 시각을 바꾸니까 절대 안될 것 같던 일들이 되는 걸 봤어요. 오늘처럼 우리가 잡지에 실리는 것도 너무 신기해요. 지난해는 제 삶에서 가장 다이나믹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할 이야기가 정말 많은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정은영: “나를 알게 된 시간”

저는 제가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리랑카에 못 가게 되었을 때, 혹은 온라인 캠프에 도전해보자고 했을 때 저는 늘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었어요. 그때마다 힘이 되어주는 동기들이 옆에 있었고, 지부장님이 함께 계셔서 제가 끝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극한 상황 속에서 저의 약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으면서 성장한 시간이었어요!

한마디 말에도 마음이 전해지고 한바탕 웃음이 터지는 그들을 보며,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그들의 시간이 느껴졌다. ‘인생의 불청객’을 만나 슬퍼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시각을 옮기고 마침내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한 이들의 이야기, 그 희망의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스리랑카 지부장님과의 영상 인터뷰>

1. 비행기가 결항된 후 줌으로 자주 모임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단원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장 전해주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태양을 보면 그림자를 볼 수 없고, 그림자를 보면 태양을 볼 수 없습니다. 똑같은 형편에 있더라도 ‘절망할 조건을 볼 것이냐, 소망스런 조건을 볼 것이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값비싼 반도체는 전기가 통하는 도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와 섞여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스리랑카에 해외봉사를 지원했다가 오지 못하게 된 일은 큰 어려움이지만 그 어려움을 소망을 가지고 이겨낸다면, 그것이 앞으로 이 학생들의 인생을 보석처럼 빛나게 할 스토리가 될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2. 단원들이 온라인으로 열심히 활동했는데요,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단원들이 마음에 소망을 가지고 유튜브, 줌으로 캠프와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면서 스리랑카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스리랑카에 갈 수 없었다. 봉사활동을 중단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인드교육을 통해 마음을 먼저 소망으로 옮기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우린 마음을 먼저 스리랑카로 옮겼고, 활동을 시작했다.”

스리랑카는 아름다운 섬나라로, 관광과 숙박에 관련된 직업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코로나로 거의 1년 동안 국제공항이 폐쇄되어 외국인이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단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려움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더 크게 열고 우리를 신뢰하게 만드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올해 함께했던 단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단원들과 온라인으로 모임을 자주 가지면서 많은 메시지를 전했지만, 단원들이 중간에 ‘그만 두겠다’고 하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원들이 자주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마음을 하나로 합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스리랑카 사람들을 위해 1년간 활동을 훌륭하게 마친 것이 너무 대견스럽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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