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 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29살이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 없었기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게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준비했다. 그래서인지 내 머릿속엔 ‘이 시험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고, 하루하루가 항상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코로나19가 터졌다. 3월로 예정되었던 지방직 시험이 6월로 미뤄졌고, 올해 시험이 없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설상가상으로 다니던 학원마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다. 예정에 없던 일들은, 내려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계단을 끝없이 오르는 것처럼 버거웠다.

드디어 6월,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나는 턱걸이로 필기시험에 겨우 합격했다. 하지만 떨어지기 딱 좋은 애매한 점수였기에 희망 고문을 받는 기분이었다. 면접을 준비해야 할지 7월에 있는 국가직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시험공부를 틈틈이 도와준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다른 합격자들과 점수 차이가 많이 나서 어차피 떨어질게 뻔하다, 괜히 면접을 준비했다가 국가직 시험까지 못 보게 되면 어떡하냐’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무조건 면접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면접의 기회가 쉽게 오는 것도 아닐 뿐더러 괜히 겁을 먹고 뒷걸음치는 것보다 끝까지 해보는 게 더 도움이 될거라고 하셨다. 맞는 이야기였다. 시험을 준비하는 2년 동안, 면접 볼 기회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배웠는데, 막상 나에게 기회가 오니 ‘안 된다,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선생님을 만난 후 무작정 함께 면접을 준비할 사람들을 찾았다. 6명의 스터디원이 모였다. 상이한 점수대, 서로 다른 나이대였지만 합격에 대한 간절함과 불안감은 같았다. 특히 마흔 두 살의 스터디원이 그랬다. 나보다 20점은 높은 점수를 맞았지만, 모의 면접을 진행할 때마다 우황청심환을 먹었다. 계속 손이 떨린다며, 답을 못하겠다며 약한 모습을 보였다. 턱걸이 점수를 맞았든 최상위 점수를 맞았든, 보이지 않는 미래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 번은 스터디를 마치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점수대로 면접을 준비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 아닐까? 국가직까지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스터디를 시작하지 않았던 내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그분에게 선생님이 내게 해주신 이야기, 그리고 최근 뉴스에서 읽은 기사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미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프로듀서인 사람이 코로나19 때문에 더 이상 일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잡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힘들어하고 포기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

그 후로 그분은 더 이상 “난 안될 거야”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들에게 그분과 나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물론 그분도 합격했다. 원래의 나였다면, 어디에 에너지를 쏟을지 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갈등하고 걱정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내게, 내 마음에 쳐져 있던 ‘안 된다’는 커튼을 걷어 준 선생님이 감사하다.

글 이성재 (공시 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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