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시절부터 성격이 무척 소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선생님, 반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특히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국제적인 무대에서 영어로 연설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입학 후 다양한 대외활동에 참여했다.

1학년을 마친 후, 아프리카 가나로 해외봉사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워크숍에 참석하며 바쁘게 지냈다. 내틀에서 벗어나 나는 나름대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철저히 내게 익숙한 ‘안전지대comfort zone’ 안에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해.’ ‘나는 리더는 못해.’ 대외활동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게 부담스러워 늘 조용히 지내고, 소심한 내가 리더를 하면 다른 사람들 고생만 시킬 것이라고 확신하며 다른 친구들이 시키는 일만 했다. 그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나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나의 안전지대에 ‘경고음’이 울릴 때가 많았다. 나는 한계 밖의 일들을 수없이 만났다.

# 생애 첫 ‘리더’가 되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 온라인으로 정기 행사를 했다. 그때마다 행사 순서를 계획하고 영상을 송출하는 일을 한국 해외봉사자가 해야 했다. 규모로 보면 작은 일이긴 하지만 리더로서 미리 생각하고 현지인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내 일이 아니었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일을 맡는 사람마다 중간에 그만두었고, 계속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 결국 내게 차례가 돌아왔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일을 인수받고 첫행사를 겨우 마치던 날, 봉사단의 지부장님이 나를 불러 잘못한 점을 지적하셨다. 다음 번에는 잘해보려고 했지만 행사를 할 때마다 실수가 이어졌고, 지적은 계속되었다.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과도 마음이 맞지 않아 점점 힘이 들었다. ‘역시 나는 리더로서 능력이 부족해’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런데도 다른 친구들처럼 힘들다고 그만두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에는 ‘내가 방송하러 여기 왔나!’ 하며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일요일, 지부장님이 여느 때처럼 나를 부르셨다. 그런데 그날은 내게 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영균아, 너 잘못해도 돼. 실수해도 돼. 못하면 잠시 혼나면 되지. 잘하지 않아도 되니까 모르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봐. 그러면서 배울 수 있어.” 나는 지부장님이 깐깐하고, 나를 혼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대화하면서 지부장님은 이미 내 마음도 나의 모자란 실력도 알고 있었으며, 그런 나에게 무엇인가 가르쳐주려 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턴 잘못하든 말든 일을 끝까지 해냈다. 물론 실수가 단번에 없어지진 않았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들이 보였고,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리더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으로 아카데미, 어린이 캠프 등 크고 작은 행사에서 리더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팀원들의 마음을 모으는 법부터 일을 실제로 진행하는 법까지 아무것도 몰라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저함 없이 팀원들이나 지부장님에게 물었고,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어 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 무슬림 도시 타말레, 인사 걸기 챌린지

봉사활동을 대부분 가나의 수도인 ‘아크라’에서 했다. 그런데 귀국을 두 달 앞두고 우리는 가나의 지방으로 각기 흩어졌다. 나는 북부지방에 있는 도시 ‘타말레’로 갔다. 타말레에 있는 봉사센터에 처음 도착한 날, 무더운 날씨에 깜짝 놀랐다. 아크라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더위였다. 슬리퍼를 밖에 두면 슬리퍼가 쪼그라들 정도로 햇볕이 강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의 종교가 대부분 기독교인데 타말레는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를 믿었다.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이슬람 사원 모스크도 있었다. 히잡을 두른 타말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과 표정이 무척 낯설어 무섭기까지 했다.

타말레에서 처음 사귄 나의 친구, 아이샤.
타말레에서 처음 사귄 나의 친구, 아이샤.

소심한 나로서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타말레 지역에서 몇 달 동안 지내며 활동해야 하기에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었다. 하루는 눈을 딱 감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하이”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나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처음 사귄 친구가 ‘아이샤’다. 나는 무슬림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이 친구는 나를 대하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나를 마주칠 때마다 늘 반갑게 인사해주었고, 내가 배탈이 났을 때 진심으로 걱정하며 날 보살펴주었다. 타말레사람들은 무서운 사람일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나와 아이샤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타말레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내가 얼마나 고정관념이 많은 사람인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이럴 거야’ 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도 있었지만, ‘나는 이건 못해’ 하며 어떤 틀 안에 나를 가둘 때도 많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고, ‘나를 싫어할지도 몰라’라는 생각 때문에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데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부담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일은 몇 번을 해도 여전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내 틀을 깨고 나와 나를 표현할 때 소중한 친구들이 생기는 건 확실했다.

# 작다고 생각하면 작은 곳, 크다고 생각하면 큰 곳이야

단원들이 아크라에서 각기 지방으로 흩어지기 전 지부장님이 우리에게 미션을 주었다. 내 가 받은 미션은 ‘어린이들을 위한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타말레 지역 대학의 총장님을 찾아뵙고 ‘대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월드캠프’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월드캠프는 상당수의 한국 단원들이 한 달 가량 준비해야 겨우 할 수 있는 행사였기에 ‘에이,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현장에 도착해보니 타말레 지부는 아크라에 있는 센터에 비해 크기가 아담하고, 현지인 지부장님 가족이 단란히 살고 있었다. 그 상황을 보니 캠프를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신 어린이 댄스 팀을 만들어서 온라인 댄스 대회 출전 준비에 집중했다. 그런데 며칠 뒤 단원들이 영상으로 모임을 갖는데, 지부장님이 캠프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타말레 지부가 너무 작아서 준비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며 불가능한 조건들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래? 어쩔 수 없구나.”라는 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지부장님은 “네가 그곳을 작은 센터라고 여기면 일을 작게 하고, 그곳이 큰 센터라고 생각하면 일을 크게 하게 돼.”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나는 그곳이 작다고 생각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할 만한 일만 하고 부담스러운 일은 피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보였다.

초등학생들을 모집해서 방과 후 댄스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댄스 대회도 출전했다.
초등학생들을 모집해서 방과 후 댄스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댄스 대회도 출전했다.

어떻게든 안 하려고 했던 생각을 접고 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자 가능한 방향이 하나 둘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짜는 것부터 대학 총장님을 찾아뵙고 학생들을 캠프에 초청하는 일 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물론 어려움이 정말 많았다. 오프라인 캠프가 아닌 온라인 캠프인데도 참석을 꺼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대학 총장님을 만날 약속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크라에서 리더로 활동하며 배웠던 마음을 떠올렸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귀국을 약 2주 앞두고, 캠프를 해냈다. 약 30명의 타말레 지역 학생들이 참가했는데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고 먼저 말을 거는 일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가나에서 나는 낯선 내 모습을 보았다. 지부장님과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면서도 말 한마디 못했던 내가 자유롭게 내 마음을 표현했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던 내가 대학 총장님을 만나 행사 초청을 했다. 이전에 나는 간절히 변하고 싶었지만 늘 제자리걸음을 했다. 하지만 가나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내가 정해둔 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때마다 나는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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