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만 참으셔

글 이지민

레소토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다. 레소토의 겨울은 한국과는 반대로 6월부터 8월까지인데, 평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꽤나 춥다. 올해 7월에는 레소토에 5년 만에 눈이 내렸다. 아프리카에서 눈을 보는 아주 진귀한 경험을 했다. 그때 나는 롱패딩을 입고 눈을 맞았는데, 내가 있는 곳이 아프리카인지 남극인지 헷갈릴 정도로 눈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그랬다. 난방이 잘된 따뜻한 집에 누워서 귤을 까먹고 있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겨울은, 우선 난방시설이 없다. 전기장판은 꿈도 못 꿀 이야기다. 집 밖과 안의 온도가 거의 같아서, 집에서도 ‘하~’ 하면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방안에서도 옷을 다섯 겹씩 껴입고, 그 위에 롱패딩을 입고 수면양말까지 신고 있지만 그래도 춥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씻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겨울에 따뜻한 물로 씻는 게 당연했다. 겨울뿐만 아니라 사계절을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얼음장보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처음엔 물을 뿌리자마자 머리가 띵하니 얼어버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물을 맞은 피부가 어찌나 따갑던지, 정말 고통스러웠다.

만약 해외봉사를 오지 않았으면 평생 시도조차 안 해봤을 경험이었다. 그렇다고 샤워를 안 할 수는 없는 법, 어떻게든 나만의 샤워 비법을 찾아야 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로 그나마 덜 차갑게 샤워하는 ‘10초만 참으셔’, 이것이 나의 비법이다. 찬물로 몸을 다 적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 10초로 끝내는 것. 그것만 참으면 찬물로 샤워하는 데 문제가 없다.

나는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아프리카에서 단련했다. 전엔 조금만 바람이 차도 콜록거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어떤 추위가 와도 끄떡없다. 추운 레소토의 겨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초딩 입맛에서 만능 입맛으로

글 박효진

내 식성은 한마디로 초딩 입맛이었다. 회는 물론 생선, 곱창, 닭발 이런 건 당연히 못 먹고, 심지어 흰 우유나 계란 노른자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레소토에 와서 처음 본 닭머리 수프는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식탁에 앉으면 가장 먼저 밥그릇 안에 있는 닭과 눈이 마주친다. ‘오우…’ 매번 보는 닭이 익숙해질 때까진 꽤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닭머리가 익숙해질 때부턴 돼지머리부터 양머리까지 모든 부위를 손질해야 했다. 처음으로 돼지머리를 보았을 때, ‘굳이 이걸 손질해서 먹어야 되나?’라고 생각했다. 먹는 건 둘째 치고 만지는 것조차 꺼려졌다. 하지만 손질한 고기를 넣고 끓인 국 맛은 일품이었다. 특히 돼지 혀가 얼마나 쫄깃쫄깃하고 맛있는지! 어느새 나는 그 맛에 매료되어 재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재료가 도착하면 어느새 나는 돼지의 입을 벌려 이빨 사이사이를 닦아 주었다.

2020년 한 해를 함께 보낸 레소토 봉사단원들과. 모두들 이곳에서 '감사'라는 길을 찾았다.
2020년 한 해를 함께 보낸 레소토 봉사단원들과. 모두들 이곳에서 '감사'라는 길을 찾았다.

내가 해외봉사를 오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해볼 수 있었을까? 더욱이 내 초딩 입맛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새로운 맛을 알려준 레소토에게 감사할 뿐이다.

I’m a Fire Man

글 윤승민

나는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런 내가 레소토에 와서 밥을 짓기 위해 불을 피우는 일을 담당하게 됐다. 내가 귀찮다고 불을 안 피우면 모두 굶어야 하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었다. 끼니마다 시간에 맞춰 불을 피우고, 땔감도 미리 숲에서 구해와 톱으로 하나하나 잘라놓아야 했다. 나무를 구하러 가는 것부터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까지 쉽고 만만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한 번 두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나무를 구하러 가는 게 즐겁고 불을 피우는 것도 요령이 생겨 순조롭게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선 워낙 편하게 살아서 쉬운 일도 귀찮다는 핑계로 안 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보니 전보다 사는 게 훨씬 재밌다. 앞으로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 경험을 떠올리며 도전하고 싶다. 이 중요한 사실을 레소토에 와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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