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왕자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행복한 왕자는 말한다. “만약 즐거움이 행복이라면 난 분명 행복했다”라고. 왕자는 생전에 궁전에서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가 죽은 뒤, 동상이 되어 도시의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세상은 궁전 안과 전혀 달랐다. 매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픈 광경들이 펼쳐졌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박힌 보석을 뽑고 몸에 입혀진 금박을 벗겨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빛나는 보석들이 떨어져 나가고 왕자의 모습은 점점 흉물스럽게 변해가지만, 왕자는 오히려 행복해한다.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어느 도시에, 높고 둥근 기둥 위에 온몸이 금박으로 된 찬란한 왕자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왕자의 모습을 보고 모두 찬탄을 쏟아냈다. 초겨울의 어느 날,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던 제비가 왕자의 동상 아래서 하룻밤을 묵는다. 잠을 청하던 제비는 왕자가 흘리는 눈물 때문에 잠에서 깬다.

왕자는 황금빛 볼에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슬픈 일들이 너무 많아. 내 심장은 납으로 만들어졌는데도 내가 본 것들 때문에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그리고 자신은 움직일 수 없으니 자신에게 있는 보석을 슬픈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제비는 왕자의 애절한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 심부름을 하며 따뜻한 나라로 가는 일을 잊은 채 하루, 이틀… 더 머문다. “참 이상한 일이에요. 이렇게 추운 밤인데 나는 지금 무척 따뜻한 느낌이에요.”

왕자는 매일 사람들에게 자신의 보석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가난한 재봉사 집에 앓아누워 있는 아이에게 칼자루에 달린 루비를 뽑아 주고, 지붕 밑 다락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청년에게 마지막 대본을 쓸 수 있도록 사파이어 눈을 뽑아 주며, 돈을 벌어 가지 못하면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하는 신발도 없는 성냥팔이 소녀에게 나머지 눈을 뽑아준다. 몸을 덮고 있던 금 조각들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하룻밤만, 하룻밤만 더 머물러 달라는 왕자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제비도 이제는 왕자의 곁을 떠날 수 없게 된다. “왕자님은 이제 아무것도 보지 못해요. 그러니 제가 왕자님 곁에 머물게요. 저는 왕자님 곁에 있을 거예요.” 왕자와 제비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사람들의 슬픔에 함께한다.

“사랑하는 제비야, 무엇보다 놀랄 만한 것은 인간들의 고통이란다. 슬픔만큼 큰 신비는 없어. 시내로 날아가 네가 본 것을 나에게 들려주겠니?” 제비는 굶주린 아이들의 창백한 얼굴, 다리 밑에서 어린 소년들이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 등을 왕자에게 모두 이야기 한다. 왕자는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금박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준다. 얼굴이 장밋빛으로 밝아지고 활짝 웃으며 거리로 나가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왕자는 한없이 행복해한다.

그 사이에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제비는 떠나야 했지만 결코 떠날 수 없었다. 제비는 날개를 퍼덕거려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애쓰지만 혹독한 추위에 왕자의 발치에서 얼어 죽고 만다. 흉물스러워진 왕자의 동상도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아름다움을 잃었다. 의회의 의원들은 동상이 쓸모없다고 판단하고 철거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려고 다툼을 벌인다. 철거된 왕자의 동상은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지만 납으로 된 왕자의 심장은 녹지않는다.

이 광경을 본 하나님이 천사에게 그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천사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행복한 왕자의 쪼개진 심장과 죽은 제비를 가져간다. 이에 제비는 천국의 정원에서 노래하고 행복한 왕자는 황금의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궁전 밖으로 나오기 전, 왕자는 즐거움과 쾌락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도시의 높은 곳에서 사람들의 불행한 삶을 보면서 납으로 된 그의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복만 알던 그가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을 그들에게 기꺼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놀랄 만한 것은 인간들의 고통이란다. 슬픔만큼 큰 신비는 없어.” 소설에서는 행복한 왕자가 “진짜 행복은 이런 거야” 하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슬픔만큼 큰 신비는 없다는 그의 고백에서, 그리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서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 행복한 삶이란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보며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이 너무 짙어서 그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면 자신의 것을 잃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제비는 다른 제비들이 그러했듯, 살기 위해 따뜻한 나라 이집트로 떠나야 했다. 그는 이집트의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했기에 얼마든지 왕자를 외면하고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자를 만난 후 그는 상상도 해본 적 없던 삶을 산다.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리는 왕자의 애틋한 마음에 동화되고, 왕자의 부탁으로 찾아간 사람들을 보며 자신 또한 슬픔을 느끼며, 그들이 왕자의 도움으로 기뻐할 때 그 또한 기뻤다. 제비는 기꺼이 왕자 곁에 머물며 왕자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다.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 몸은 고통스럽지만, 제비는 왕자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왕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가난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주고 난 후, 왕자의 모습은 볼품이 없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흉물스럽다’고 말하고, 시의원들은 행복한 왕자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겠다며 싸우기 시작한다. 왕자가 느꼈던 슬픔을 공감할 수 없는 그들에게는 흉물스러운 왕자의 겉모습만 보일 뿐 아름다운 마음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결국 왕자의 동상을 끌어 내렸고, 용광로에 녹였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준 왕자는 그렇게 사라지는 듯했지만,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슬퍼할 줄 아는 왕자의 마음, 납으로 된 심장은 용광로 속에서도 녹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한 왕자와 제비를 하늘나라에서는 ‘천국에서 영원히 노래 부를 수 있는 귀중한 존재’라며 그들을 알아본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행복한 왕자>가 세상에 나온 지 132년이 흘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겉모습이 화려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픔과 고통과 슬픔이 존재한다. 어쩌면 세상이 복잡해진 만큼 인간의 고통과 슬픔 또한 더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행복한 왕자처럼 타인의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슬픔이 짙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 그들은 어쩌면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공감하고, 슬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지금까지 온기를 지닌 채 이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슬픔만큼 큰 신비는 없어”라는 행복한 왕자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길 바란다.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행복한 왕자>는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1888년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으며, 2017년에는 루퍼트 에버렛과 콜린 퍼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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