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어야만 성공한 인생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우정을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첫번째는 ‘자기 이익을 위한 우정’, 두 번째는 ‘단순한 즐거움을 위한 우정’ 세 번째는 ‘완벽한 우정’이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완벽한 우정이란 즐거울 때든 슬플 때든 삶을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며,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에 근거한 ‘완벽한 우정’을 가진 두 사람, 세븐디그리 건축사무소 권혁천 대표와 오충환 과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주)세븐디그리 건축사무소 권혁천 대표(앞)와 오충환 과장.
(주)세븐디그리 건축사무소 권혁천 대표(앞)와 오충환 과장.

Scene #1 필요에 의해 만난 관계

두 사람의 첫 만남은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개인 건축사무소를 막 오픈한 권혁천 대표는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고, 다니던 건축회사를 그만둔 오충환 과장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권 대표가 기억하는 오 과장의 첫인상은 꽤 강렬했다.

“기름을 발라 머리를 뒤로 넘기고 검은 양복을 빼입고 들어오는데, 영화에서나 볼 법한 주먹 같았어요(하하).”

반면에 오 과장이 느낀 권 대표는 ‘곰돌이 푸’를 닮은 편안한 외모에 꽤 깐깐한 성격을 가진 건축가였다. 7살의 차이,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사람. 특히 건축 일은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한데, 서로를 잘 모르다보니 첫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권대표가 ‘이래라’라고 말하면 오 과장은 ‘저래라’라고 이해하고, 오 과장이 ‘요렇게’라고 말하면 권 대표는 ‘저렇게’라고 이해하는 격이었다.

Scene 2# 마음을 알게 된 날

함께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던 즈음, 권 대표는 오 과장을 큰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울산으로 보냈다. 오 과장은 건축 허가만 받고 다시 서울로 복귀하는 줄 알았으나, 몇 달이 지나도 서울로 올라오라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결국 프로젝트를 다 마칠 때까지 울산에 있으라는 전화를 받는다. 해고당했다고 오해한 오 과장은 권 대표에게 화도 나고 무척 섭섭했다고. 그렇게 몇 달이 흐르던 어느 날 권 대표로부터 전화가 온다.

“서울 안 올라오고 뭐 해? 얼른 와.”

그 전화를 받고 다음날 서울로 올라간 오 과장은 그제야 자신을 울산에 보냈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충환 씨와 일하면서, 일적으로 꼭 알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있었어요. 대부분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죠. 그래서 건축 허가 받는 것부터 준공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면서 많은 걸 배우길 바랐어요.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미안하긴 했지만, 앞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비로소 권 대표의 뜻을 알게 된 오 과장은 그날 닫았던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두 사람이 제대로 같이 일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1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사무실이 잘 돼서 더 큰 규모의 사무실로 이사하던 날도 있었고, 맡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중단되어 빚을 떠안는 일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서로를 탓하지 않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묵묵히 걸었다.

Scene 3# 같은 꿈을 그리다

그들이 오랜 세월 어려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같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면서 늘 ‘내 시간과 재능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대기업 건축설계 회사에 다니던 권 대표가 독립해 개인 사무소를 열었던 이유도 부동산 가치를 올려주는 건축만 하지 않고 언젠가는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건축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오 과장 역시 권 대표와 같은 마음이다.

“저는 20대 때 건축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누리며 살았어요. 그런데 30대 후반이 되니 내가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삶이 무척 허무하고 공허했어요. 그때 우연히 지인을 통해 권 대표님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도 함께 그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그들은 그 꿈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잠비아, 에스와티니, 케냐에 청소년들을 위한 센터를 설계하는 일을 돕고, 잠비아 현지인들을 위한 건축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다. 권 대표가 아프리카로 출장을 가는 동안에는 오 과장이 한국 사무실을 맡는다.

“오 과장이 한국에서 건축 설계나 허가뿐만 아니라 구청에서 들어오는 민원처리 등 궂은일을 다 맡아서 해결하느라 고생했죠. 서로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해주는 것이 참 고마웠어요.”

두 사람이 설계를 도왔던 아프리카 잠비아의 청소년 센터 건축 현장.
두 사람이 설계를 도왔던 아프리카 잠비아의 청소년 센터 건축 현장.

권 대표가 아프리카에 가 있는 동안 종종 오 과장에게 전화를 걸면 그는 늘 “여기는 괜찮습니다”라고 답을 한단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일의 상황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멀리서 한국 일로 신경쓰지 않게 하려고 늘 괜찮다고 말하던 오 과장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도 서로를 도우며 같은 꿈을 향해 가고 있다.

Scene 4# 서로를 알아보는 우리, 완벽한 친구

‘대표와 과장’으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호칭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인생의 고락을 함께하며 그들은 누구보다 서로의 진면목을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권 대표는 오 과장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안다.

“한번은 장기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는데, 어머니에게 오 과장이 종종 안부 전화도 걸어주고, 집에 들러 삐걱거리는 식탁도 고쳐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상 이렇게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오 과장은 권 대표가 얼마나 깊은 사람인 줄 안다.

“제가 일을 크게 잘못한 적이 있었어요. 회사에 손실이 크게 나는 일이었는데 그때 대표님이 저한테 ‘잘 좀 하지 그랬냐(웃음). 괜찮아! 같이 또 해보면 되지’ 그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대표님이랑 정말 열심히 일을 했어요. 저도 고마운 마음에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오 과장은 권 대표가 삶의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멘토와 같은 친구라고 말한다. 권 대표는 오 과장이 하늘이 준 파트너라며,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때도 옆에서 송장을 들어줄 그런 친구라고 말한다.

삶의 필요에 의해 잠시 만나려던 두 사람은 어느새 삶에서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완벽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며, 신뢰할 수 있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 그런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세상 금은보화를 가진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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