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무엇일까? 인생에 친구는 꼭 필요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며 답을 찾았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는 힘은 강력하다. 때론 이끌어주고, 변화를 만들고, 각자의 삶을 탐험하며, 따뜻한 요람도 된다. ‘친구’라는 단어가 살아 있다면, 이 둘이 아닐까? 같은 사고를 당하며 ‘소울메이트’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문혜진 씨와 이선미 씨를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서로의 첫인상이 기억나시나요?

혜진: 가나로 해외봉사를 간 50명의 단원 중 저와 동갑이 선미뿐이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선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유쾌하고 즐거웠어요. 저는 외로움이 많아서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데, 선미는 무엇이든 혼자 척척 알아서 해내는 독립적인 친구였어요. 저에겐 없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어른스럽다. 멋있다!’ 생각하며 선미를 동경할 때가 많았어요. 우리는 성격도 정반대에 생각하는 것 하나하나도 너무나 달랐지만, 함께 있으면 늘 즐거웠어요.

선미: 혜진이는 웃을 때 볼에 사탕을 물고 있는 것처럼 아주 동그랗고 귀여운 볼을 가진 친구였어요. 저를 보면 항상 그렇게 웃어줬어요. 가나에서 해외봉사를하며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의지하고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고, 남들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가족 이야기나 지난 시절을 공유하다 보니 더 돈독해졌죠.

가나에서 같이 2층에서 떨어지는 낙상사고를 당했습니다. 두 분 모두 이 사고를 계기로 우정이 더 단단해졌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그 때 일을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혜진: 그때 가나에선 청소년 센터를 짓는 건축 봉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공사 현장으로 갔고, 2층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가 났어요. 2층 난간에 세워둔 선반이 무너지면서 선반에 서 있던 저와 선미는 땅에 떨어지고, 다른 한 명은 줄을 잡고 겨우 매달려 있었어요. 그 이후론 온몸이 바스러질 듯한 극심한 통증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통증이 너무 심해 정신을 잃었고, 독일로 이송될 때까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선미: 2층에서 떨어지자마자 우리 둘 다 골반이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고, 가나 병원을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해 진통제만 받아서 숙소로 돌아왔어요. 처음엔 우리가 왜 그렇게 아픈지 몰랐어요. 그런데 사고가 난지 5시간 정도 흐르자, 저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혜진이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에게 “발가락에 감각이 없다.”라고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혜진이가 척추신경을 다쳐서 감각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듣고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제 걱정을 할 경황이 없었어요. 그때부터 혜진이 수술이 잘 되기만을, 다시 회복되기만을 기도했어요.

혜진: 저는 가나에서 독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어요. 검사해 보니 요추 1번 뼈가 완전히 부서졌고, 그 뼛조각이 신경을 눌러 하반신 마비가 진행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선미였어요. ‘선미도 다쳤는데, 괜찮을까? 선미는 어떻게 치료를 받고 있는 거지?’ 전화할 수도, 소식을 들을 수도 없었던 상황이라 정말 궁금했어요. 그때 아프리카는 우기雨期라 굉장히 습하고 더울 때여서 아픈 선미가 걱정이 많이 됐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선미도 척추뼈 2개와 오른쪽 발목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는데, 저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못 받은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선미: 저도 아파서 누워 있는 그 시간이 무섭고 슬퍼야 하는데,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왜 나만 멀쩡하지?’라는 이상한 죄책감이 들어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혜진이가 그렇게 된 게 너무 미안하고…. 나중에 혜진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대견하고 기뻤어요. 저와 따로 연락할 기회가 없었지만 재활훈련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에서 만날 날을 기다렸어요.

문혜진 씨가 독일로 간 후, 다시 만났을 때까지 꽤 오래 떨어져계셨는데요. 다시 만났을 때 어떠셨나요.

선미: 혜진이가 독일에서 수술을 마치고 한국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가나 지부장님과 짧게 통화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도 혜진이 목소리를 잠깐 들을 수 있었죠. 혜진이에게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는지 물었고, 11월이 되어서 혜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귀국하자마자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는 요양병원을 찾아가는데, 솔직히 혜진이 소식을 간간이 듣긴 했지만 사고 이후로 처음 보는 거라 혜진이 마음이 짐작이 안돼서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걱정일 뿐이었죠. 혜진이는 여전히 저를 보며 환하게 웃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처럼요. 눈물이 났습니다. 모르겠어요. 힘든 일을 같이 겪은 동지애 같은 마음이랄까? 혜진이를 안고 서로 한참을 말없이 울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지.... 서로의 마음을 안고 달래주는 시간을 가진 후 장시간의 수다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하하).

혜진: 선미가 입국하는 날짜를 달력에 적어놓고 매일 ‘이제 며칠 안 남았네…’ 하며 잠들었어요. 그리고 선미 입국 날엔 잠을 설쳤어요. ‘선미 집이 예산이니까 집에 가서 쉬고 다음날 보러 오겠지? 비행 여정이 꽤 힘들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선미를 기다렸어요. 병원에서 재활운동을 하며 틈틈이 병원 입구를 쳐다보고 있는데, 택시에서 긴 레게머리를 한 여자와 그녀의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큼지막한 이민 가방과 캐리어를 내리더라고요. 선미였어요! 반가운 마음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휠체어를 밀면서 선미를 불렀고, 저를 발견한 선미는 가지고 있던 짐을 내팽개치고 제게 달려와 안아줬어요. 얼마나 울컥했는지…. 서로 아무 말 없이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구경하러 올 정도였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수두룩해서 꽤 늦은 시간까지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 후로도 선미가 자주 병원을 찾아왔어요. 그때부터인 거 같아요. 누구도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자매애가 생긴게요.

듣기만 해도 그때의 장면이 눈에 선하고, 반가운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거 같아요. 이후 함께 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두 분의 여행은 추억이 많을 것 같아요.

선미: 혜진이가 재활훈련을 하며 병원 생활을 한 지 4년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날도 주말에 병원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혜진이가 “아, 뜨끈한 탕에 들어가서 몸 좀 담그고 싶다.”라고 하는 거예요. 며칠이 지나도 그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어요. ‘사고 이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생각했죠.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경기도 포천에 있는 온천을 찾았어요. 혜진이가 편하게 목욕할 수 있겠다 싶어 얼른 예약했습니다. 그땐 대학원생이라 돈도 많지 않았지만 혜진이가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기쁘던지요. 그렇게 두 어머니를 모시고 1박 2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도착해서 수영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가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거예요. 첫 번째 난관이었죠. 제가 혜진이를 업고 입구를 통과하고, 또 혜진이를 업어서 수영장에 넣어주었습니다. ‘어떻게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하니까 되더라고요. 혹시 제 실수로 혜진이가 미끄러지거나 다칠까봐 속으로 얼마나 빌면서 업었는지 몰라요. 겉으론 “괜찮아! 할 수 있어, 해보자!” 하면서요. 그리고 마침 수영장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자유롭게 놀다 왔답니다. 혜진이 소원대로 목욕탕에 가서 뜨끈하게 몸도 담그고, 숙소에서 밤새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죠. 다음날엔 근처에 있는 허브 아일랜드라는 곳도 들렀어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를 땐 저와 두 엄마들까지 힘을 합쳐 휠체어를 밀었는데, 힘든 순간들까지 즐거워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혜진이가 “정말 오랜만에 콧구멍에 바람 좀 쐬었다.” 하며 행복해하는데, 누군가를 기쁘게 해준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지 몰랐습니다.

혜진: 선미와 떠나는 여행은 항상 이벤트와 감동이 가득해요. 사실 저와 여행을 한다는 건 고생길이 훤해요. 일단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식당, 화장실 등을 일일이 알아본 뒤 갈 곳을 미리 정해야 하니, 저는 함께 여행하기엔 힘든 파트너거든요. 그런데 이 모든 고생을 함께하겠다는 선미가 참 고마워요.

작년에 저희 어머니가 환갑이셨어요. 긴 세월 동안 저를 위해 희생과 사랑을 쏟아주신 엄마에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였죠.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선미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선미가 모녀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낭은 따뜻하고 황홀한 풍경도 있어서 마음이 절로 평온해지는 곳이었어요. 음식도 맛있고 휠체어로 가기 힘든 곳에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도와주는지 못 가본 곳 없이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건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해졌다는 거예요. 떠나기 전부터 감기몸살과 장염을 심하게 앓아서 여행을 미룰까도 고민했는데, 기침도 멎고 열도 내리고 구토도 안 하고 정말 잘 먹고 잘 잤어요. 전에는 집을 떠나면 오랜 시간을 긴장 상태로 앉아 있다보니 허리와 다리 통증 때문에 항상 병이 났거든요. 그런데 선미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진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여행을 했답니다. 엄마도 무척 행복해하셨어요. 사소하지만 누리기 힘든 기회를 만들어 준 선미에게 정말 고맙다고 하시고, 음식도 입에 잘 맞고 마음이 통하는 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참 편하고 좋다고 하시면서요.

베트남 다낭으로 모녀 여행을 갔을 때, 케이블카 안에서 찰칵.
베트남 다낭으로 모녀 여행을 갔을 때, 케이블카 안에서 찰칵.

여행을 하면서 선미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휠체어를 타면서 겪는 어려움을 백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행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요. 그러니 ‘나 때문에 이것도 할 수 없고, 저곳에도 못 가’ 이런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고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요? 자기와 함께 있는 동안 휠체어의 불편함을 가장 적게 느끼면 좋겠다는 친구가 앞으로도 동행해 줄 거라 생각하니 참 든든했어요.

뒤에서 나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다녀온 여행의 추억이 부럽기도 합니다. 여행 말고도 일상생활에서 서로가 ‘진짜 나를 많이 생각해주는구나.’를 느낄 때도 있나요.

혜진: 모든 일이 잘 흘러갈 때 있잖아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을 때면 주변의 모든 것이 시들해 보이고 무의미해져서 ‘나는 누구인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질문을 하며 방황하게 되더라고요. 잠을잘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 신기하게도 선미에게서 연락이 와요. “별일 없이 잘 지내? 힘든 것 없어?” 하며 아무렇지 않게 묻는 질문에, 아직 어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무거운 마음이 싹 가라앉아요.

그리곤 선미의 마음을 느끼죠. ‘언제나 나를 챙겨주고 있구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변치 않고 나를 돌아보며 생각해주고 있구나.’ 하면서요. 그저 내 생각이 나서 찾아주는 선미의 마음을 발견하면 다시 힘이 생겨요.

선미: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혜진이를 찾아요.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리거나 불만을 털어놓거든요. 그럴 때면 혜진이는 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일이 힘들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하면 어려운 일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 줘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제가 상처받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해주는 게 느껴져요. 너무 소중해서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혜진이의 마음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진한 감동을 받아요. 못난 모습까지 다 보여주어도 창피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는 게 좋고, 때론 언니 같은 혜진이가 든든해요.

두 분은 서로를 보며 배우고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친구의 이런 모습을 볼 때, 이런 걸 배운다.’ 하나씩 소개해주신다면요.

선미: 사고 이후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답답함을 겪는 혜진이를 옆에서 지켜봤어요. 물론 제가 느끼는 건 혜진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혜진이는 불편함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이겨내더라고요. 재활치료로 인해 오랫동안 멈춰두었던 학업을 계속해 대학을 졸업하고, 재택근무로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에도 진학했어요.

지금도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며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있고, 틈틈이 시간을 내 재활훈련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스케줄을 혜진이는 불편한 몸쯤은 상관없다는 듯이 다 이뤄내고 해냈죠. 이런 모습들은 성격이 급하고 일의 결과도 빨리 나오길 바라는 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혜진이를 보며 제 삶에도 순간순간 참고 인내하는 것들이 많이 생겼어요.

혜진: 선미는 꽤 멋있는 워킹맘이에요. 특히 매사에 사리분별이 정확해서 제가 동경한답니다.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는 달라지기 마련인데, 선미는 힘들고 넘어질 수 있는 순간에도 항상 씩씩하고 담대하게 어려움을 넘더라고요. 일이면 일, 육아면 육아,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모습이 친구로서 자랑스럽기도 하고, 가장 배우고 싶은 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챙기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어요. 이런 점들이 선미를 더 특별하게 하고 닮고 싶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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