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브리스의 덫

도전을 극복하고 이룩한 문명도 자신들의 성공을 절대적 진리처럼 우상화하는 오만에 빠지면 내부 분열에 의하여 소멸한다.

토인비가 말하는 휴브리스

그리스 신화에 휴브리스Hubris가 나온다. 탁월했지만 그 탁월함에 도취되어 자신을 과신하고 교만해진 휴브리스는 제우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리스어語로 휴브리스는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오만’을 뜻한다.

영국의 유명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휴브리스’를 역사 해석에 도입하여,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과거의 성공에 빠져 교만해지고, 추종자들을 무시하며,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올바른 균형감과 판단력을 잃어버린 채 결국 몰락해버리는 현상을 ‘휴브리스’라고 명명했다.

이는 그리스 비극의 일반적 테마를 이루고 있는 코로스koros, 휴브리스hubris,아테ate의 전개 과정을 빌려온 개념으로서, 코로스는 과거의 승리에 도취된 교만의 심리 상태를 일컫고, 휴브리스는 거기에서 비롯한 지성과 도덕의 불균형 상태를, 아테는 이들이 가져올 맹목적인 충동을 뜻한다.

토인비가 말하는 휴브리스는 역사를 바꾸는 데 한번 성공한 창조적 소수들이 자신들의 성공 방법이 모든 곳에 다 통하는 절대적 진리인 양 우상화하다가 마침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휴브리스는 ‘과거의 성공에만 집착해 그 동안 변화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고집하다가 커다란 실패를 맞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의 흥망성쇠를 자세히 분석하여 <역사의 연구>라는 12권의 저서를 집필한 토인비는 문명을 일으킨 자연환경이 대부분 가혹한 환경이었다고 말한다. 문명 발전 과정을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해석한 그는, 어떤 국가나 집단이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 구성원들이 지혜와 응집력을 발휘하여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문명과 민족은 살아남아 번성했지만,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해내지 못한 민족과 문명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 도전이 없는 민족이나 문명도 무사안일에 빠져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 고대 문명과 세계종교지의 발상지는 모두 척박한 땅이었다. 예를 들면,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인 나일강변은 수량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해서 농사짓기에 적합하였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이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이에 범람 시기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천문학과 태양력이 발달했고, 경지 측정을 위해서는 기하학이 발달했으며, 제방 공사를 위한 도르래와 수레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원리’가 문명 발전의 법칙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전을 극복하고 이룩한 문명도 자신의 성공을 절대적 진리처럼 우상화하는 오만에 빠지면 내부 분열에 의해 소멸하고 만다고 설명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원리가 문명 발전의 법칙이라고 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원리가 문명 발전의 법칙이라고 했다.

청어와 메기 이론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토인비는 ‘청어와 메기 이론’을 자주 언급했다. 자신의 역사 이론인 ‘도전과 응전’의 법칙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에 아주 적절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 영국인들에게 청어는 가장 사랑받는 생선이다. 이 청어를 북해나 베링 해협 같은 먼바다에 가서 잡는데, 배에 싣고 오는 동안 대부분 죽었다. 따라서 겨우 살아남은 싱싱한 청어를 먹으려면 죽은 청어보다 몇 배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몫은 늘 죽은 청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살아 있는 싱싱한 청어가 런던 수산시장에 대량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 비결은 청어를 운반해 오는 수조에 메기 몇 마리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수조 안에 청어의 천적인 메기를 몇 마리 넣어 두면 청어들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헤엄쳐 다니고, 그러는 사이에 운반 수조는 런던 수산시장에 도착한다. 이렇게 사투의 과정을 거쳐서 청어가 싱싱하게 살아남는 역설적 아이러니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토인비는 청어와 메기 이론을 예로 들면서, 가혹한 환경이 찬란한 문명을 만들어내고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토인비는 청어와 메기 이론을 통해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하였다.
토인비는 청어와 메기 이론을 통해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하였다.

파나마 운하 건설에 실패한 레셉스

휴브리스의 대표적 사례로 파나마 운하 건설의 실패를 들 수 있다.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하여 세계의 항로를 바꾼 대역사大役事인 수에즈 운하 공사는 프랑스의 젊은 토목 기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가 총괄했다.

자신만의 기술과 불굴의 의지로 10년 동안 수로를 파서 완성한 수에즈 운하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12년 후 파나마 운하 건설의 총책임자로 기용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하려는 공명심에 부풀었던 레셉스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1881년에 착공을 시작했다. 그러나 8년간의 악전고투 끝에 파나마 운하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수에즈는 사막형 기후로 해발 15m의 평원 지역인데 비해, 파나마는 해발 150m의 열대 밀림 지역으로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새로운 갑문식 공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레셉스는 과거 자신이 수에즈 운하 건설에서 해면과 같은 높이의 건설 방식으로 성공했던 경험만을 고집하며 무작정 수로를 팠고, 그런 무모함에서 비롯된 대실패는 레셉스의 ‘휴브리스’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8년간 동원된 55,000명의 근로자 가운데 40퍼센트에 달하는 22,000여 명이 공사중에 사고와 말라리아로 희생됐고, 10조 원에 이르는 공사비만 쏟아붓고 말았다. 당시에 그 액수는 천문학적인 손실이었고, 이런 참담한 결과를 견디지 못한 레셉스는 정신병에 걸려 사망한다.

15년 후인 1904년에 미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갑문식으로 공법을 변경하고, 10년간 43,000명의 인원과 400조 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투입하여 6천여 명의 희생을 치르면서 드디어 운하가 완성되었다. 어이없는 사실은 계단식 수문과 부력으로 선박의 상하, 수평 이동을 병행하는 갑문식 공법은 레셉스가 파나마 운하 건설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던 것이었고, 누가 봐도 그 지형에 가장 적합한 공법이었지만 레셉스는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며 채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을 고집해 휴브리스의 대표적 사례를 낳은 레셉스.
자신의 경험을 고집해 휴브리스의 대표적 사례를 낳은 레셉스.
갑문식 공법을 써서 미국 공병대가 완성시킨 파나마 운하. 사진은 1913년 당시의 모습.
갑문식 공법을 써서 미국 공병대가 완성시킨 파나마 운하. 사진은 1913년 당시의 모습.

삼국지의 읍참마속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일반적으로 우리에게는 삼국지로 알려진 소설)에 보면 촉나라의 제갈량은 위나라 정벌을 위해 총 7차례에 걸쳐 북벌을 시도하지만 결국 위나라 정벌에 실패한다. 그중에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고 평가받는 1차 북벌은 마속의 실수가 패전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삼국시대 초, 촉나라 제갈량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를 출발했다. 곧 한중을 석권하고 기산으로 진출하여 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부채꼴로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그 진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지략이 매우 뛰어난 사마의여서 군량 수송로인 가정을 잘 방어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위나라 정벌에 실패한 제갈량.
위나라 정벌에 실패한 제갈량.

가정은 전략적 요충지로 위나라 군사가 반드시 거쳐 나오는 곳으로 만약 가정을 잃으면 중원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그런데 그 중책을 맡길 만한 장수가 없어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때 마속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마속은 제갈량과 같은 동향 출신으로, 실전 경험은 없었지만 이론에 밝아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장수 중 한 사람이었다.

제갈량이 남만 정벌에 나서 맹획을 일곱 번이나 놓아주고 일곱 번 사로잡은 ‘칠종칠금’ 전략으로 남만을 평정한 것은 마속이 제안한 것이었다. 남만 평정의 지략을 묻는 제갈량의 질문에 마속은 “무릇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며, 심전이 상책이고 병전이 하책입니다.”(攻心爲上 攻城爲下 心戰爲上 兵戰爲下)라고 하였다. 이 대답을 들은 제갈량은 “그대가 내 폐부를 꿰뚫어 보는구나.”라고 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련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엔 아직 어렸다.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 지켜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촉나라 군사軍師 제갈량은 조조군의 접근을 유리한 지형에서 조기에 차단하여 전투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하여 총애하는 장수 마속에게 군사를 주어 보내면서 단단히 당부를 한다. 가정 확보가 이번 전쟁의 관건이니 길목을 지키되 높은 곳은 피하라고 주의를 시켰다.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현장의 지형을 살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갈량이 일러준 병력 배치는 월등히 우세한 조조 군을 상대로 싸우는 데 전술상, 현장 여건상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속은 제갈량의 당부를 무시하고 산 위에 진을 치려 했다. 경험 많은 부하들이 위험하다고 말렸으나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그는 군사 이론을 들먹이며 두고 보라고 했다. 제갈량은 그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적을 유인해서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을 치려 했다. 부장 왕평이 끝까지 말렸지만 이도 무시해버렸다. 왕평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무장이었지만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었다. 결국 왕평은 1천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따로 떨어져 진채를 세운다.

마속을 처형한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마속을 처형한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위나라의 명장 장합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위군들은 재빨리 여러 겹으로 산을 에워싸고 산기슭을 포위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산 위의 마속군은 포위되어 식수와 보급로가 끊겼고, 대부분은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데, 위나라의 장수가 산 사방으로 돌아가며 불을 지르는 화공책火攻策을 쓰자 촉나라 군사는 거의 전멸한다. 마속은 몇몇 부관들과 함께 겨우 도망쳤다. 이로 인해 촉군은 가정을 잃고 한중으로 퇴각하였고, 촉나라의 1차 북벌은 실패로 끝났다.

제갈량은 마속의 책임을 물어 ‘참으로 아까운 장수지만 나라의 기강과 군령을 세우기 위해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눈물과 함께 마속을 처형했다.

휴브리스의 덫을 경계하라

인류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나라들이나 조직, 개인들이 많은 난관을 극복하거나 성공한 뒤에 몰락해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남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 괄목할 성과를 내면 인간은 쉽게 교만해지고 태만해진다. 탁월한 사람, 탁월한 성과를 낸 사람이 휴브리스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면 아주 위험해지고 패망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자기 과신과 교만’은 지속적인 행복의 파괴자들이다. 자기 과신과 교만의 반대편에는 ‘겸손과 나눔’이 있다. 이 세상에는 탁월한 능력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나태하고 미련해서 뒤처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탁월한 면이 있는데도 오만과 태만이라는 휴브리스의 덫에 걸려 불행과 몰락의 내리막길로 치닫는 국가들, 기업들,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기독교의 세속화와 부패는 의외로 기독교가 공인된 후 급속화되었다. 위 인물은 기독교를 박해에서 풀어준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독교의 세속화와 부패는 의외로 기독교가 공인된 후 급속화되었다. 위 인물은 기독교를 박해에서 풀어준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독교의 역사에도 이런 예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의 엄청난 박해를 받을 때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에 오히려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 안에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왔고, 교회가 부패하고 순수하고 뜨거웠던 신앙을 잃어버리면서 중세 암흑기로 접어들었던 사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 한다.”는 말이 있다. 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삼대 부자 없고, 삼대 거지 없다(富不三代 貧不三代)는 말이 있다. 부자도 휴브리스에 빠지면 거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을 멈춘 인생은 굴러가기를 포기한 수레바퀴와 같다. 멈춤은 몰락의 시작이다.

몇 년 전 MBC에서 슬로건을 새롭게 내세웠다.

“익숙함을 지나 두려움을 넘어 새로움을 향해”

신중하게 음미해보고 우리 삶에 적용해볼 만한 슬로건이다.

글쓴이 이한규

현재 링컨하우스원주스쿨 교장이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들을 토대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철학에 대해 본지에 연재하고 있다. 전국 대안학교 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고, 최근에는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을 온라인으로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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