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햄블린처럼 주저앉기도 하고, 때로는 디아고스티노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코로나19,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하루 종일 앉아 과제를 하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닌 날들이 그립다.

올해 초, 고등학생 때 절친했던 친구와 몇 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친구는 폭식증으로, 나는 교내 따돌림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사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자고 바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날, 우리 지역에서 다수의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다는 재난 문자를 받았다. 평소 건강에 대해 워낙 신경을 쓰는 친구였기에 약속을 미루었다. 그렇게 미뤘던 약속이, 어느덧 일곱 달이 흘렀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현실에 속이 상했다.

주변에서 나와 같은 일들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식당을 하는 사장님은 손님이 없어서 상한 식재료로 음식물 쓰레기만 늘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던 후배는 일하던 가게가 휴업해 일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강남역 주변도 나가 보면 한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상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가슴에 큰 바위를 얹어 놓은 것처럼 이렇게 답답할 줄 몰랐다.

종일 답답한 생각들만 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 날은 신경질이 났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한 생각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하지?’ 그런데 짜증을 낸다고 나에게 좋을 일도 없고 상황이 당장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기에, 그런 생각을 그만하고 싶었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우울증에 걸리고 말 거야.’ 무의식중에 쏟아내는 짜증과 불만이 마음에 쌓여가는 것을 느끼면서, 더 이상 그렇게 생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을 펼치고 과거에 지금과 같은 힘든 일들이 없었는지,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한 어려움은 존재했고, 그 중심에서 어려움과 마주하며 사람들의 생각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처럼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울림을 남기는 일화가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두 선수가 있었다. 뉴질랜드의 ‘니키 햄블린’과 미국의 ‘애비 디아고스티노’가 그 주인공이다. 두 선수는 육상 여자 5000m 예선에 참가했다. 경기가 있던 날, 3000m 가량을 달렸을 때 햄블린의 발이 꼬이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디아고스티노도 넘어진 햄블린에게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관중석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햄블린은 자신을 추월해 달려가는 선수들의 발을 바라보았다. 지난 올림픽에서 다른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진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넘어진 곳에서 앞서가는 선수들의 발을 쳐다보았었다. 안타까운 실패를 맛본 뒤 4년 동안 이를 악물고 뛰고 또 뛰었는데,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4년 전 상황을 다시 겪은 햄블린은 아이처럼 주저앉아 울었다.

“일어나. 완주해야지.”

그때 디아고스티노가 햄블린을 붙들어 일으켰다. 햄블린은 눈물을 훔치며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악!” 하고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디아고스티노가 다리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무릎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이번에는 햄블린이 다가가서, 디아고스티노를 부축해 일으키고 속도를 맞춰 뛰기 시작했다. 디아고스티노는 절뚝거리면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다른 선수들은 경기를 완료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달렸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두 선수에게 집중했다. 조금 먼저 도착한 햄블린이 디아고스티노를 기다렸다. 드디어 디아고스티노가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 햄블린은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와아!!” 6만여 관중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햄블린이 말했다.

“갑자기 넘어져서 정신이 없었는데 디아고스티노가 다가왔어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사이지만 정말 훌륭한 친구를 얻었어요. 20년 후에 누군가가 나에게 리우올림픽에 대해 물어본다면 저는 꼭 이 일을 말해줄 겁니다.”

기자가 디아고스티노에게 ‘어떻게 햄블린에게 다가갔는지’를 물었다.

“제 행동은 그 순간 본능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제 마음을 신께서 이끄셨어요.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레이스의 기록보다 훨씬 더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두 선수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1964년에 제정해 17명에게만 수여했던 쿠베르탱 메달을 두 선수에게 수여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짧은 시간의 경기를 위해 피나는 훈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 순간을 위해 인내하며 노력한다.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햄블린은 절망에 휩싸여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디아고스티노는 다시 뛰기 위해 일어섰고, 넘어져 있는 경쟁자까지 일으켜 세웠다.

우리에게도 주저앉아 우는 마음이 있고, 다시 달리게 하는 마음이 있다. 살면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실망하며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주저앉아 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짜증을 내거나 주저앉기 시작하면 마음은 거기에 멈추어 있지 않는다. 초점이 그쪽으로 맞춰지면 계속해서 거칠고 어두운 생각, 절망적인 생각들로 마음이 채워진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하는 밝은 이야기나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껄끄럽다. ‘네가 안당해봤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하며 거부하고 싶어진다.

마음을 닫으면 행복한 것들을 볼 틈도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몸이 넘어질 때 마음도 같이 넘어진 햄블린처럼 반응할 것이다. 그러나 “일어나. 완주해야지.”라는 디아고스티노의 말에 햄블린의 마음이 일어났고, 뒤따라 몸이 일어났다. 몸이 넘어져도 마음은 넘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마음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이 절망에서 벗어나면 쓰러진 몸을 일으켜 세워 달려가게 만든다. 그것이 마음이 가진 능력이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햄블린처럼 주저앉기도 하고, 때로는 디아고스티노처럼 주저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마음에 소망이 채워지면 목표를 향해 자신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함께 달려갈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의 마음에 소망을 흘려준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답답한 일상을 어두운 눈으로 보니 마냥 힘들기만 했는데, 불만을 내려놓고 보니 오히려 나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다. 만남이 많아서 늘 실패했던 다이어트에도 성공하고, 꼭 요리하고 싶었던 음식들도 만들어보았다. 바깥 공기가 그리울 때는 새벽에 산책하며 삶의 이런 면 저런 면들을 생각해보고, 보고 싶은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영상통화를 했다. 작은 일들이지만 마음을 소망과 즐거움으로 채워 나가니 잊고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생각났다.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의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연락이 끊겼던 동창들과도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그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평과 짜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였는데 정말 신기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많은 것을 넘어뜨렸다. 그러나 마음까지 넘어져서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햄블린과 디아고스티노가 다시 일어나 완주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겠지만 운동장을 채운 관중들과 세계인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남긴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런 이야기들을 남길 수 있다면 이 시간 또한 감사하고 행복한 날들로 기억될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