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

지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올렌카. 습관처럼 또 사랑을 찾아가지만, 그 끝은 늘 허탈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이왕이면 1등이 되고 싶고,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런데 여기 조금 특별한 여인이 있다. 잘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소설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 올렌카는 누구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도 흉허물이 되지 않는다. 같은 여자들조차도 얘기를 나누다가 “참 귀엽기도 하지.” 하며 마음을 열고 손을 잡는다는 올렌카. 그녀라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것 같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린 그녀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다.

퇴직한 하급 관리의 딸인 올렌카는 건강하고 통통하며 성격이 밝은 여자다. 어느 날, 그녀는 건넌방에 세 들어 사는 마르고 체구가 작은 야외극단의 단장 꾸우낀의 불행에 마음이 흔들린다. 계속 내려는 비로 공연을 하지 못해 배우들 출연료와 임대료 걱정에 한숨짓는 꾸우낀이 하늘을 보며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꾸우낀에게 미소를 지어준다. 그후 그와 결혼한 올렌카는 연극이나 배우에 대해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같은 마음으로 지내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당신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그런데 극단의 출연 교섭을 위해 모스크바로 갔던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고, 올렌카는 절망에 사로잡혀 몸이 망가질 정도로 슬퍼한다.

석 달 후, 미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올렌카는 목재상 푸스토발로프의 위로를 받는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은 주님의 뜻이라고 위로하는 그와 올렌카는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목재상의 아내가 된 올렌카, 이미 오래 전부터 목재상을 경영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이 목재라고 생각한다. 각재, 통나무, 관자, 기둥, 톱밥 같은 말들이 다정스럽게 들린다. 남편이 생각하는 것은 곧 올렌카의 생각이 되고, 그녀의 성격 또한 침착하고 올바른 남편을 따라 그렇게 변한다. 첫 남편 꾸우낀과 함께하면서 가졌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찾아볼 수 없고, 저녁이면 기도회에 가고 미사에 참석한다. 그런데 남편과 말다툼 한 번 없이 6년이 지난 어느 겨울, 푸스토발로프 역시 감기로 세상을 떠나버린다.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가란 거예요?’ 슬퍼하며 남편의 묘지와 교회에만 다니던 올렌카. 어느 날 그녀는 건넌방에 세 들어 살던 스미르닌과 가까워진다. 수의관 스미르닌은 아들이 하나 있으며, 부인의 외도로 이혼한 남자였다. 올렌카는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면서 “부인과 화해하세요. 아드님을 위해서라도 부인을 용서해야 해요. 아이의 마음을 어둡게 해서는 안 돼요.”라고 말한다. 그후 올렌카는 ‘부대에서 가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질병이 많다’는 스미르닌의 의견에 공감을 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 행복도 그가 속한 부대가 먼 곳으로 이동하면서 오래 가지 못한다.

자기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올렌카의 머릿속도 그녀의 집 정원같이 텅 비고, 쑥을 씹는 것같이 씁쓸함을 느낀다. 외톨이가 된 올렌카는 먹고 마시는 것조차 귀찮아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닌 늙고 추한 모습이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스미르닌이 이혼한 부인을 다시 데리고 아들 샤샤와 함께 찾아온다.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샤샤로 가득 찬다. 샤샤에게 애정을 느낀 올렌카는 온 마음으로 아이를 돌본다.

올렌카는 성격이 밝아 누구하고나 친해질 수 있는 귀여운 여인이었다. 그녀가 첫 남편과 사별한 후 많은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3개월 만에 목재상과 다시 사랑에 빠져도 동네 사람들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공감하며 사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첫 남편이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그녀는 좋은 아내로 인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해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만다.

소설 <귀여운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외로운 여인이 된 올렌카가 돌아온 스미르닌의 아들 샤샤에게 사랑을 쏟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올렌카에게 사랑은, 그녀의 영혼과 이성 그 모든 것을 사로잡으며 생활에 방향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샤샤를 사랑한 건 그녀가 살아갈 이유와 행복을 필사적으로 찾은 것이었다. 집세는 한 푼도 필요 없다며 스미르닌 가족에게 안채를 내주고 자신은 건넌방으로 옮겨간 올렌카, 그녀는 긴 잠에서 깨어난 듯 행복해한다. 하지만 결말이 어쩐지 쓸쓸하다. 귀엽고 상냥한 아이 샤샤는 벌써 중학생이 되었고, 조금만 더 성장하면 그녀의 곁을 떠날 것 같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올렌카. 그녀와 사랑했던 사람들은 떠나가고 혼자가 된 그녀의 얼굴은 보기 싫을 만큼 주름이 졌다. 현관 층계에 적적하게 앉아 있거나 문득 옛날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공허로 가득한 그녀는 더 이상 귀여운 여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한다.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행복하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은 탐욕스럽게 자신만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며 지내기를 바란다. 나 또한 행복을 얻기 위해 공부도 하고 사회적 위치를 얻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남편을 만나 사랑하기도 하고 아이를 낳아 마음을 쏟아 기르기도 했다. 그런데 살다 보면 행복하기 위해 잡았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나의 모습들을 잃기도 한다. 모든 것이 다르게 흘러가도, 젊을 때나 혹은 나이가 들어서나 변하지 않는 건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에 슬픔을 느끼고, 자신 또한 사라져가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도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가지만, 우리 속에 사랑하고픈 마음만은 언제나 자리하고 있어서 마음을 쏟을 누군가를 찾으려는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그 애달픈 목마름의 여정은 변하지 않는 사랑을 만날 때 해갈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서 영원한 사랑Endless Love을 그리워한다.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찾아 마른 목을 축이려 이곳저곳 여행하며, 때론 지쳐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사랑이 아무리 안타깝고 슬퍼도 다시 사랑할 이를 찾아 마음의 발걸음을 옮긴다.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든지 드러나지 않든지 말이다. 다시 헤어지지 않는 사랑을 만나기까지.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귀여운 여인>은 1899년 러시아 잡지<가정>에 게재된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올렌카의 세 번의 사랑과 실패, 그리고 샤샤에 대한 모성애를 그렸으며, 복잡한 인간 삶을 간결한 필치로 표현한 작품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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