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순간

엥흐마는 몽골에서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17살 소녀다. 2년 전, 엥흐마는 배구선수로 활동하던 중 발에 이상한 궤양이 생겨 병원을 찾았는데 불치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운동화를 신을 수 없을 만큼 궤양이 심해져 결국 배구도 그만 두었다. 그 후 엥흐마는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지내다 몽골에도 코로나19 상황이 심해져 학교에도 가지 못하게 됐다.

집에만 있던 엥흐마는 페이스북에서 ‘코리안 캠프’ 소식을 접했다. K-POP 댄스 배우기, 한국어 교실, 그 외에도 여러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석했다. 캠프에 참석한 뒤 엥흐마가 달라졌다는 걸 제일 먼저 느낀 건 동생이었다.

“엄마, 요즘 누나가 걸으면서 이상한 말을 해요. ‘하나, 둘, 셋, … 열(수염 독수리)’ 자꾸 열(수염 독수리), 열(수염 독수리) 하면서….”

숫자 10을 나타내는 한국말 ‘열’이 몽골말로는 ‘수염 독수리’라는 뜻인데, 동생은 그 말을 알아듣질 못하니 누나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핸드폰으로 코리안캠프에 참석하고 있는 엥흐마.
핸드폰으로 코리안캠프에 참석하고 있는 엥흐마.

엥흐마의 엄마는 발의 궤양 때문에 배구를 그만둔 뒤 딸아이의 말수가 부쩍 없어져 무척 걱정스러웠는데, 언제부턴가 핸드폰을 보면서 댄스를 하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수업을 들으며 필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코리안 캠프’에 참석해야 한다며 전날 밤에 휴대폰을 100% 충전해 놓는 것은 물론, 수업 시간에 필요한 노트와 필기도구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들떠 있는 딸의 모습이 엄마는 신기했다. 그래서 엄마도 딸과 같이 코리안 캠프에 참석했다. 그리고 캠프가 끝나자마자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몽골의 학생들을 위해 개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내 딸이 코리안 캠프를 얼마나 기다리던지요. 웃음을 잃었던 얼굴에 언제부턴가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저는 다른 건 해줄 수 없지만 캠프에 잘 참석할 수 있도록 와이파이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겨우내 눈에 덮여 있던 몽골의 초원은 5월부터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그리고 8월이 되면 초원의 초록빛이 절정을 이룬다.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면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자연도 생명이 활기를 띠면 이토록 아름다운데, 사람이 이보다 못할까. 눈에 덮여 있던 엥흐마의 마음에 삶의 활기가 다시 돋아나는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글쓴이 김선자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답한다. 투머로우 잡지 콘텐츠로 독서토론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지에 기고를 하게 되었다. 지난해 몽골에서 새로운 삶의 둥우리를 튼 그는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그곳 삶의 색다른 맛을 정감어린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독서 외에 플루트 솜씨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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