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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코리안 캠프는 처음이지?
최지나 기자 | 승인 2020.10.10 20:34

한글이 반포된 지 574년이 흐른 지금, 한글은 대한민국과 세계를 잇는 연결고리다. 우리 문화가 ‘한류’를 타고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그 중심에 한글이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거나 우리말 노래를 따라 부르는 외국인을 만날 때면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19로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한글 캠프가 녹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글을 매개체로 삶에 활기를 되찾고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방역 모범국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한국도 코로나19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코로나19 까닭에 온라인 교육을 시행했지만,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다. 다른 나라는 상황이 어떨까?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학교는 문을 닫고, 수업도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나라가 많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콘텐츠와 환경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교육의 기회조차 일시 정지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굿뉴스코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몇몇 학생들이 자신들이 다녀온 나라의 상황을 눈여겨보았다. 3월부터 문을 닫은 학교, 생필품을 사러나가기도 어려운 상황, 가까운 지인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는 등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 등을 보며, 그들은 ‘조금이라도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해외봉사활동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인 ‘코리안 캠프’에서 현지인들이 한글과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즐거워했던 때를 추억하며 ‘온라인 코리안 캠프’를 기획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안에 있으면서 마음까지 닫힌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찾아가 함께하자고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전 세계 3만 명의 학생이 참가한 이 행사는 7월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 코리안 캠프’를 진행한 김요셉(프랑스어 담당), 김일신(포르투갈어 담당), 김동민(영어 담당)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요셉 (위)14살, 아버지를 따라 간 아프리카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매일 웃는 아프리카사람들의 미소를 보며 행복을 배웠다. 현재는 한국에서 외교관이 되기 위한 준비를하고 있다.
김일신 (가운데)울산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5년부터 2년 간 브라질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교훈을 얻은 그는 현재에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김동민 (아래)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재학중. 2017년 독일로 떠난 해외봉사에서 남을 위해사는 삶의 가치를 배웠다. 지금은 실업, 진로 등 청년들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찾고자 오늘도 노력중이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본인들도 예외는 아닐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 이 일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일신: 2015년부터 2년 동안 브라질에 해외봉사를 다녀왔는데, 현재 브라질은 코로나 감염자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여서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브라질 친구들에게 연락해 보니 방역 지침이 엄격해 격리되거나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고립을 택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와 한국을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때 ‘이런 팬데믹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봉사단원이었을 때 한국어 아카데미에 아주 많은 학생들이 참석해서 결국 분기별로 코리안 캠프를 열었습니다. ‘브라질 친구들에게 코리안 캠프를 열어 준다면 그때처럼 행복해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있으니 더더욱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죠.

요셉: 저는 아프리카에서 10년, 프랑스에서 6년을 살다가 1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 아프리카와 너무나 다른 환경이 낯설어 적응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다가와준 친구들 덕분에 학교와 일상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K-Pop을 좋아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친구들이 고마워서 학교 내에서 한국어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일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수업이었지만, 한국 음식, 싸이, 빅뱅 등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한국어가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 제1.2외국어로 포함되고, 유럽에 한류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때 한국 문화를 알리는 크레용Crayons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한국 문화의 날, 한국어 캠프, 국악 콘서트, 한국 역사 컨퍼런스 등을 개최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게, 행사를 할 때마다 10대 학생부터 70대 할머니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행복해하고 고마워하던지…. 그 모습을 보며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참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1년 전에 한국에 왔는데, 갑자기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덮치면서 모든 활동에 제약이 걸렸습니다.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상황은 한국보다 더 열악합니다.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서 다들 집에 갇혀 있으니까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힘들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했는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옆에 있어서 함께 코리안 캠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동민: 저는 2017년에 굿뉴스코해외봉사단원으로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담은 뮤지컬을 만들어 유럽을 돌며 공연했는데, 투어 중 루마니아에서 한 남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학생은 부모님과의 갈등이 너무 깊어서 가출한 상태였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뮤지컬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사랑이 마음에 전달되었던 거죠.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은 서로의 마음이 전달될 때 행복하구나!’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때 배운 것을 바탕으로 ‘코로나로 인해 단절된 사람 간의 마음을 이어보자!’에서 출발한 생각이 코리안 캠프까지 이어졌습니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시작하니 6개 언어로 ‘코리안 캠프’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다보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Q. 모두 해외에서 얻은 소중한 추억이 있다 보니, 코로나 시대에 자신이 다녀온 나라를 생각하셨네요. 그런 이유로 이번 캠프를 진행하면서 더 뜻깊고 즐거웠을 것 같습니다. 쉽지만은 않았을 것도 같고요.

동민: 네, 맞습니다. 정말 즐거웠지만 쉽지만은 않았어요. 코리안 캠프가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중국어 6개 언어로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댄스 아카데미를 해도 6개 언어로 순차 통역해야 했고, 자막도 언어별로 편집해야 했습니다. 급하게 하느라 중국어권 영상에 러시아어가 나오는 실수를 했을 땐 학생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시차 때문에 송출 시간이 각기 다르다 보니 새벽 4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종일 방송을 송출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맞추느라 하루에 2시간도 자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몰려서 서버가 다운될 때도 있고, 중간에 노트북이 방전되는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해서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캠프를 다 마친 후 학생들이 보낸 소감을 듣다보니, 그 정도 고생쯤은 더 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 다른 나라는 코로나 상황이 매우 심각해서 생각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캠프를 준비해준 저희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걸 넘어 절망 가운데서 발견한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캠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신: 저는 브라질에 다녀온 지 4년이 흘러 포르투갈어를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쉬운 단어도 기억이 안 나고, 겨우 문장을 만들어도 말이 안 돼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현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더빙을 하고, 점점 기억이 되살아나 막바지엔 직접 포트투갈어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계속 하다 보니 포르투갈어가 조금씩 입에 붙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면 아무래도 영상 촬영, 편집, 송출까지 방송 기술이 필요한데, 우리 중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필요할 때마다 배우면서 진행했습니다. 방송에 필요한 장비들도 정말 많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후원을 받았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보람이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어 실력도 부족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실력도 부족한 제 수업에 매 시간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석했고, 한국노래와 댄스를 배우는 시간에는 모두 방안에서 무아지경으로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그 학생들을 보며 작은 행복이라도 가져다준 것 같아서 너무 기뻤습니다.

요셉: 제 경우엔 프랑스어를 혼자 통역하고 더빙하고 수업도 스스로 촬영하다 보니 시간적으로 너무 빠듯했습니다. 밤을 새워서 더빙을 해놓고 보면 한 문장씩 빼먹기도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할 때도 있었습니다(웃음). 다행히 학생들이 그런 실수와 부족한 부분들을 오히려 이해해주고 재밌게 봐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매번 수업이 끝날 때마다 메시지로 “선생님, 고뫕슴니돠”로 맞춤법이 틀린 글을 보내주는데, 그걸 볼 때마다 피로가 확 사라지더라고요.

Q. 여러분의 수고와 기쁨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캠프를 하는 동안 많은 학생들을 만났을텐데요. 기억에 남는 사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요셉: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캠프에 참석한 래티씨아Laetitia라는 학생이 수업 때마다 카메라를 끄고 있길래 카메라 켜줄 수 있냐고 요청했더니, “제가 점심 식사비로 데이터를 사서 수업에 참석하고 있는데, 카메라를 켜면 데이터가 금방 소진돼서 수업을 끝까지 들을 수 없어요, 선생님.”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때 누군가에게는 이 수업이 점심식사와 바꿀 만큼 소중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이야기에 너무 고맙고 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일신: 제 수업에 50대 아주머니가 참석하셨는데, 직장에 출근해서도 핸드폰으로 몰래 수업을 들으셨습니다. 직장 상사분들이 지나갈 때는 손으로 핸드폰을 가렸다가 지나가면 다시 수업을 들으시는 거죠. K-pop이 나올 때는 흥이 나셨는지 고개를 조심스럽게 흔드는 모습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날까지 수업을 몰래 듣는 데 성공하셨어요(웃음).

동민: 멕시코에서 참석한 안나Anna 학생이 “코로나는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세상을 하나로 잇는 기회다”라고 이야기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 친구는 “지금까지 한국어를 너무 배우고 싶었지만 도전할 엄두가 안 났는데, 선생님들이 준비해준 강의를 보면서 그토록 꿈꿨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가 됐다며 감사함을 전했죠.

Q. 재미있고 감동적이네요. 이야기를 들으니 코리안 캠프가 단순히 한글을 배우거나 문화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더 큰 가치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신: 맞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쳤을 뿐인데,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은 저희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수업 피드백을 해주고, 배운 내용을 토대로 수업 자료를 만들어주고, 심지어 코리안 캠프 홍보 영상을 만들어 다른 학생들을 초청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은 일방적일 거라는 제 우려를 완전히 깨뜨렸지요. ‘좋은 학교는 학생이 좋은 학교’라는 말이 있는데, 코리안 캠프가 좋은 학생들 덕분에 좋은 캠프가 된 것 같습니다.

요셉: 캠프 기간에 학생들에게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었더니,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한국전쟁을 거친 가난한 나라였는데 어떻게 경제적, 문화적 강국이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캠프 마지막 날 한국 엑스포EXPO 프로그램을 만들어 역사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저 또한 놀랐던 것이, 한국이 발전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희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시절, 부모님 세대는 덜 먹고 고생하더라도 자녀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시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나가 외화를 벌어 오셨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죠. 자녀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 내가 고생하더라도 누군가는 행복하길 바라는 그 마음들이 아마 글과 영상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을겁니다. 캠프가 끝난 후, 우리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캠프에 참석하지 못한 주위 친구들의 선생님이 되어 한글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보이진 않지만, 그 안에 숨겨진 마음들이 전달된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여러분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동민: 이번 캠프는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려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어 수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장기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현재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시간씩 ‘기초 한국어 수업’과 ‘마인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시간들을 발판 삼아 ‘한국어 말하기 대회’와 ‘K-Pop 댄스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학생들이 코리안 캠프에 참여해 전 세계를 잇는 슈퍼커넥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누구나 삶을 돌아보면 특별히 고마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온라인 코리안 캠프를 진행한 이들이 해외봉사활동을 하며 받은 사랑과 환대, 그리고 현지인들과 공유한 시간 속에서 그 고마움은 쌓여갔고,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을 코리안 캠프에 가득 담아 보냈다. 캠프로 쏘아 올린 고마움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달했으니, 이것만큼 성공적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앞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슈퍼커넥터가 될 코리안 캠프를 기대한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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