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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통하는 길, 한글Interview 이영란 작가
최지나 기자 | 승인 2020.10.10 20:34

말과 글에는 한 민족이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형성한 정서와 문화,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말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속에는 백성을 사랑한 따뜻한 마음과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습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로 평가받지만, 나라의 글로 정착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자 문화를 강조했던 사대부들은 한글을 무시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문화말살정책으로 한글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고난을 이기고 한글은 우리글로 자리 잡았고, 지난 해엔 37만 명의 외국인이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할 만큼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담긴 사랑, 한글로 전한 사랑,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집기사로 담아봅니다.

Interview 이영란 작가
세종대왕의 꿈, 백성의 눈을 밝히다

한글 창제는 백성들 누구나 책을 읽어서 바른 길을 익히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글로 나타내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밝게 살기를 바라는,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던 세종대왕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Q. 안녕하세요. 이영란 작가님은 한글의 창제 과정부터 한글 속에 담긴 과학성, 우수성, 문화적 가치까지 한글에 관한 전문가신데요. 올해로 574돌이 되는 한글날을 맞이하여, 먼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담긴 세종대왕의 마음을 알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아시다시피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학교에 다니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첫머리 글에서 한글 창제의 이유를 배웠습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백성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새로 글자를 만들었다’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이전부터 한자를 빌려 사용했지만 우리말과 다르고 배우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시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양반들도 20년은 공부해야 문장을 제대로 쓸 수 있었을 만큼, 한자는 문장이나 문맥에 따라 다른 소리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배움에 오랜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낮엔 농사 짓는 일반 백성들이 한자를 실생활에서 사용할 만큼 배우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당시에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좀 더 쉽게 표현한 이두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한자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조차도 잘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공문서에 이두가 주로 쓰였는데, 세종 때 곡산에서 ‘약노’라는 여인이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여인은 10년이나 갇혀 있으면서도 글을 읽을 줄 몰라 자신의 죄목을 따질 수 없었을 겁니다. 세종은 이 사건을 재수사해 누명을 벗겨주었지만, 이 여인 말고도 많은 백성들이 글자를 몰라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또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15년 전인 1428년에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유교를 지도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부모를 살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종은 이런 사건이 더는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적에서 삼강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아 <삼강행실도>를 펴냅니다. 이 책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그림을 넣었지만, 그림은 특정 장면만 다룰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세종의 마음에 우리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후에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든 뒤 백성들에게 “이 글을 쉽게 익혀서 책을 읽고 이치를 깨달아 죄가 죄인지 알아서 죄를 짓지 말아라. 만약 죄를 지었다면 이 글로써 억울함을 호소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설서> 서문에는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 만에 깨우치고, 비록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모두 이 글자로 적을 수 있다.”며, 누구나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글을 쉽게 배우고 익혀서 사용할 수 있음을 알렸습니다.

이렇듯 한글 창제는 백성들 누구나 책을 읽어서 바른 길을 익히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글로 나타내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밝게 살기를 바라는,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던 세종대왕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Q.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세종실록>에 “이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는데 (중략)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늘날 한글날인 10월 9일은 한글이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반포한 1446년 9월 상한을 음력 9월 10일로 잡고 양력으로 따져서 10월 9일로 정한 것입니다.

백성들을 위한 윤리·도덕 교과서인 삼강행실도. 그림이 들어가 있어 내용을 쉽게 알아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즉, 창제 일자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이달에’라고만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극비리에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기득권자인 양반들의 반발이었겠지요.

집현전의 수장이었던 최만리는 한글 창제에 대한 반대 상소를 올렸는데, 반대한 이유를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조선은 지성스럽게 중국을 대국으로 섬겨 중국의 제도를 따랐는데, 언문을 만든 것을 중국에서 알면 자칫 위험을 불러오는 것이다.

두 번째, 몽골, 서하西夏, 여진, 일본 등은 각기 글자가 있지만 오랑캐니, 결국 조선도 오랑캐가 되려는 것이다. 세 번째, 한글로 출세를 할 수 있게 되면 성리학을 공부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는 최만리뿐 아니라 대다수 양반들이 한글을 반대한 이유였습니다. 특별히 조선의 학문이자 문화였던 성리학은 한자를 통해 전래되었기 때문에, 한자를 공부하지 않으면 성리학을 배우기 어려웠습니다. 성리학 외에도 중국의 여러 문화가 한자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를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한반도는 중국의 침입을 줄기차게 받았습니다. 이에 조선은 이득을 얻고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정책을 썼는데, 한글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중국이 침략할 수 있는 명분이 될 것을 걱정한 것입니다.

도화원에서는 각종 매를 그려 전국에 보내 매를 잡도록 했고, 잡힌 매는 중국에 공물로 보내졌다. 아래 그림은 매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김홍도의 호귀응렵도.

이처럼 한글을 사용하려면 문화와 정책 등 많은 것이 변해야 하고, 그만큼 어려움도 감수해야 했기에 양반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과거시험은 기존 방식대로 한자로 치렀으며, 이두도 1894년 전까지 쓰였습니다. 그렇다고 한글을 아예 배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한자를 잘 배우려면 한글을 잘 알아야 했기 때문에, 양반가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외갓집에 보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밑에서 한글을 배우게 했습니다. 어린이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한 <훈몽자회>는 비슷한 뜻을 가진 글자들을 모아 놓은 책인데, 글자의 뜻을 한글로 적어놓았습니다. 한글을 모르면 반드시 한자의 음을 읽어주고 뜻을 풀이해주는 스승이 있어야 했으나 한글을 배운 후에는 스스로 한자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글은 백성들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Q.한글 창제가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힘에도 불구하고 창제된 후, 한글이 백성들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었다고 하셨는데, 한글 창제 이후 백성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한글을 창제한 후 세종은 한글이 정말로 배우기 쉬운지, 그 점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한글이 반포된 것이 창제 후 거의 3년 후인데, 그 사이에 한글이 얼마나 유용한지 시험하는 시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한문 서적을 한글로 번역해서 출간하기도 하고, 과거시험을 한글로 보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익히 들어서 잘 아는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이 그러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직후 한글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월인천강지곡>

실제로 세종은 둘째 딸 정의공주에게 한글을 창제할 때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을 묻고 풀도록 하였고, 세자인 문종은 성리학보다 한글 배우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상소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이 꾸준히 있었기에 한글이 백성들의 삶에 점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백성들의 삶에 일어난 변화라고 한다면, 성종 때 한글 투서 사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가뭄이 들면 시장을 옮기고 기우제를 올렸으며, 이러한 풍습은 조선 전기에도 계속 행해졌습니다. 가뭄에는 시장을 닫고 거리나 골목으로 시장을 옮겨 일상 생활용품만 거래하고, 가뭄이 해소되면 원래 시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시장 상인들이 시장 이전과 관련하여 한글로 불만을 적은 투서를 보냈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따른 것이 아니라 판서의 아들을 위한 것’이라느니, ‘참판이 뇌물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무뢰한 무리가 떼를 지어 일어나 투서하여 집정자執政者를 꾸짖어 욕하였으니, 그 부도不道함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추궁하고 자세히 캐물어서 형장刑章을 밝히고 그 간악함을 징계하여야 합니다.”라고 적혀 있고, 이 일로 150여 명이 수감되었습니다.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질 것을 염려해 성종은 범인으로 지목된 16명 외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석방하라고 명했습니다.

한글로 기록된 최고最古의 문헌인 <용비어천가>는 조선 왕조가 세워진 업적을 노래한 책이다. 한문으로 번역해 양반들도 볼 수 있게 했다.

이 사건이 대다수의 백성들이 한글을 익혔다는 자료가 될 수는 없지만, 상인들이 한글을 익혀서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백성들의 삶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의 기존 체제가 흔들리면서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한글 소설 등으로 나타나는 등, 한글이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한글이 공식 문자로 인정받은 것은 근대적 개혁 시기인 1894년으로, 그해 11월에 고종이 “법률과 칙령은 모두 한글로서 으뜸을 삼되”라고 하여 한글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것을 알렸습니다.

Q.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글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지요? 그리고 현대 젊은이들의 한글 사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세계의 문자가 발달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한글을 제외하고 모두 상형문자에서 시작됐습니다. 원시시대 동굴 벽의 그림 문자를 시작으로 이집트의 신성문자나 수메르인의 쐐기문자 등이 나타났고, 표기의 편의성을 위해 오늘날 알파벳과 유사한 간단한 표기법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표기된 글자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기도 합니다.

반면 한글은 소리가 나는 입안의 모양을 따라 자음을 만들었기 때문에,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차례 모양이 바뀌어온 알파벳과 달리 글자의 형태가 매우 단순합니다. 또한 알파벳은 자음과 모음이 뒤섞여 있지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구분이 확실하고 그 위치도 명확합니다. 정해진 위치에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자음과 하나의 모음이 합해져야 글자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조합 방식도 매우 쉽습니다.

한글은 세계의 수많은 문자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로 꼽힙니다. 또한 창제 원리와 만든 이, 그 쓰임을 밝힌 ‘사용 설명서’가 있는 유일한 문자이기도 합니다. 한글의 자음은 소리가 나는 곳에서 모양을 따오고, 모음은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과 문자로 표현되는 세계인 하늘과 땅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둘이 합해져 소리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거의 완벽한 문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한글은 자모 구분이 확실하고 획을 더하는 방식으로 글자를 만들 수 있어서 다양한 서체와 변용이 가능합니다. 자음만으로 단어를 유추해내는 퀴즈도 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게임은 한글이 유일할 것입니다. 갖가지 방식으로 줄임말도 만들어 쓸 수 있습니다. 그런 덕분에 한글은 많은 재미를 가져다줍니다. 물론 요즘 청소년들이 말을 너무 줄여 쓰거나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것 등이 한글을 파괴한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글을 더 자주 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처음 창제된 때와 다르게 발전해 왔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한글은 변화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변화를 막을 수 없고,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 400여 종의 문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사용하는 문자는 66종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27종은 종교나 장식용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전 세계 국가가 249개, 민족은 6000개, 언어는 5500종이나 되는데, 문자는 66종만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쓰이지 않는 문자는 사라질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한글이 사용되든지 꾸준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서 한글이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핍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한글이 타인을 욕하거나 비방하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마음처럼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데 사용되길 바랍니다.
 

이영란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기획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고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화학원소 아파트>, <세종대왕의 한글 연구소>, <사라진 우리말을 찾아라> 등이 있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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