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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시작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민화
김용기 | 승인 2020.09.15 16:22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민화 작품들이 드라마와 일상생활에 대거 등장하면서 민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의 전통 그림인 민화는 어떻게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행복을 읽는 해피니스 페인팅

조선시대에 활발하게 그려졌던 민화는 그림 속에 삶의 희로애락과 염원들이 담겨 있어서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한 그림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에 따라서 의미가 결정되기에, 그림을 보면 계층과 상관없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즉, 그림 속 꽃이나 동물 등이 의미하거나 상징하는 바를 알고 보면 그림이 더욱 재미있다. 그림에 담긴 행복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한 민화는 영어로는 ‘해피니스 페인팅’Happiness Painting이라 불리며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기쁨을 나누거나 희망을 찾으려고 그렸던 그림

우리 조상들은 민화를 그리면서 그림에 자신의 소원을 담았다. 또 그렇게 그린 민화를 선물해 받는 이의 행복을 기원했다. 자신이나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좋은 일은 축하하고 어려운 일은 잘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 이를 통해서 기쁨을 나누거나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했다.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는 원앙과 물고기 한 쌍은 부부 금실과 부부의 화합을 나타내고, 나비는 평안과 장수를 나타낸다. 파초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뜻을 상징하고 있다.

현대민화 ‘호랑이 타고 노는 아이들’

민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로는 까치와 호랑이를 꼽을 수 있다. 기쁜소식을 전한다는 까치와 나쁜 귀신을 막고 착한 사람을 돕는다는 호랑이를 함께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 둘은 만화영화의 주인공 ‘톰과 제리’처럼 친한 친구이자 선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종종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호랑이는 부패한 관리를 표현한 것으로, 그림으로 사회를 풍자하고자 했던 서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크게 출세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을 ‘등용문’이라 하였는데, 이는 옛날 중국에서 잉어가 황하 중류에 있는 급류인 용문龍門을 오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내용을 담아 잉어가 공중으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을 ‘약리도’라고 하는데, 어려운 고비를 잘 극복하면 성공할 수 있음을 뜻하는 약리도는 과거시험을 보는 선비가 있는 집에서 장원 급제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집안에 걸어두었다. 혹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네 집에 선물하였다. 공부하는 학생들 방에는 책장에 놓인 책들과 장식품이 어우러진 ‘책가도’를 걸어두어 학구열을 높이기도 하였다.

집안의 화목과 풍요를 상징하는 ‘화조도’

코로나로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민화

코로나19로 인해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기 점점 어려워지고, 누굴 만나도 불안한 때이다. 게다가 불황이 계속 이어져 내일이 희뿌옇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요즘, 민화는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을 주고 행복을 찾아가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로부터 집안의 화목과 풍요를 기원하는,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를 그려서 집안에 걸어두거나 지인에게 선물한다면 입가에 미소를 되찾고 잃어버린 여유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민화에 해학과 풍자로 담아 봄으로써 현실의 이면을 표현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려운 고비를 잘 넘어 성공하라는 의미를 담은 ‘약리도’

누구나 쉽게 시작을 할 수 있고, 행복해지는 민화 그리기

민화는 섬세하고 색채가 화려한 그림이다. 그래서 시작하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밑그림이 있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다. 밑그림 위에 한지를 대고 외곽선을 그린 후 거기에 색을 입히는 것이다. 채색하는 기법은 다양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만 있으면 채색도 스스로 완성할 수 있다. 민화는 8살 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으로 시작하는 문턱이 높지 않다. 실제로 그림을 전혀 배운 적이 없는 주부들 가운데 민화를 꾸준히 배워서 전문 작가가 되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중국에서 들여온 멋진 도자기, 특이한 종이들, 귀한 책들을 그린 ‘책가도’

나는 민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45년 정도 되었으며, 20년 남짓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나도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구나. 나는 그림에 소질이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민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다른 분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에 어느 80대 할머니가 수업을 받으면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걸려. 그림 하나를 완성하려면 몇 달이 걸리기도 하지만, 잘은 못 해도 그림을 직접 그리고 완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어떤 아주머니는 자녀와 함께 민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생겨서 사이가 좋아졌다고 기뻐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기술도 필요하지만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해야 하는 과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화는 밑그림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고민 없이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창의성 없이 크고 작은 꿈이나 갖기 원하는 것들을 그림에 담지만, 쉽게 배우는 만큼 실력이 빠르게 향상될 수 있다. 나중에는 그림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깊어져서 인간의 내면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화려한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등으로 왕의 권위와 존엄을 나타내는 ‘일월오봉도’

여가 시간을 알차게 보낼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민화를 그려보면 어떨까? 작은 기쁨과 행복을 얻기도 하고, 마음을 담아서 그린 그림을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해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 안에 숨겨져 있는 예술적 본능이 깨어날지도 모른다.

글쓴이 김용기

사단법인 한국민화진흥협회 고문이며 한국민화국제교류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김용기민화연구소를 운영하며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숙명여자대학교 미래교육원, 양천실버대학에서 민화 수업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민화를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외에도 전국민화공모대전에서 심사위원으로 다수 참가했다.

김용기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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