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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네요.”NGO 굿뉴스월드 경영지원팀 홍석영
고은비 기자 | 승인 2020.09.14 16:44

‘굿뉴스월드’ 사무실에서 홍석영 씨를 만났다. 서울시 양재동에 위치한 사무실은 정답고 아담했다. 평범한 회사원을 꿈꿨던 그가 필리핀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택한 직장은 ‘국제 개발 협력 NGO’였다. 특별한 사명감을 가져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면 자신도 행복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실제로는 어땠을까? 행복했을까? 신입사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분투했던 그녀의 4년 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홍석영
굿뉴스월드 입사 4년차. 필리핀 유학시절, 봉사활동을 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기쁨을 느꼈고, 누군가에게 소망을 주는 일을 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입사 초기엔 고민도 많았지만 이젠 주변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누구보다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NGO(비정부기구) 활동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에 대해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취약 계층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제약이 생기니 고민이 됩니다. 처음에는 코로나로 무척 당황했어요. 베트남 산간지역 소수민족을 위한 전통 구들(온돌) 설치 및 기술교육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올해에도 의료봉사단이 아프리카를 찾아갈 예정이었거든요. 지금은 이런 행사들이 연기된 상황이에요.

대신 국내에서 활동하거나 우리가 해외로 직접 가지 않고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냈죠. 특히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심각한데도 의료 장비가 낙후된 나라가 많습니다. 지난 4월에는 볼리비아에 방역 물품을 지원했습니다. 볼리비아 외에도 온두라스, 베냉, 카자흐스탄 등 최대한 많은 나라에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생긴 ‘잠시 멈춤’ 상태를 활용해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 가려고 해요. 간단히 말하자면, 해외 파트너십 구축인데요. 원래 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한국에서 프로젝트 매니저가 정해지면 현지를 오가며 사업을 관리했어요. 그때에도 절실히 느꼈던 것이, 해외에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담당자의 필요성이었죠.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이런 필요성이 더 커졌고, 이를 기회로 삼아 현지 파트너십 구축에 좀 더 집중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들이 정리되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겁니다.

의료봉사가 굿뉴스월드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알고 있어요.

저희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기도 하고 굿뉴스월드의 뿌리이기도 해요. 2008년 6월에 가나, 토고, 베냉, 케냐, 말라위 등 아프리카 현지인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고 싶었던 일곱 명의 의사 선생님이 ‘굿뉴스의료봉사회’를 결성했어요.

2008년 이후 함께하는 의료진이 늘어갔고, 매년 아프리카뿐 아니라 중남미와 남태평양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나라의 국민들에게 찾아가 지금까지 20개국에서 모두 15만 명에게 무료 진료를 해왔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12년간 매해 의료봉사를 다녀왔는데요, 국내에선 유일하다고 할 수 있어요. ‘굿뉴스의료봉사회’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정부와의 협력 관계가 다대多大해지면서 단체명을 바꾼 것이 오늘의 ‘굿뉴스월드’입니다.

제가 굿뉴스월드의 역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병원 문을 닫고 어려운 이들을 찾아갔던 의사 선생님들이 무척 존경스러웠어요. 굿뉴스월드는 그분들의 희생정신과 열정을 기반으로 보건의료 외에 교육지원, 지역 개발 등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유학 시절, 한국어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집해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다.

현재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저는 경영지원팀에 속해 있어요. 자원 관리, 회계 등 전반적인 사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 업무만 처리하는 것은 아니고, 매년 진행되는 의료봉사단 파견 사업도 함께 담당하고 있어요. 해마다 국가를 선정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의료진을 모집하고, 물품 후원을 받죠. 이어 출국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현지에 나가서는 봉사 일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환자들의 귀가까지 돕습니다.

의료봉사단 파견 사업은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을 비롯해 다양한 나라에서 진행되는데, 의료봉사를 할 경우 진행하는 팀이 별도로 구성돼 해외로 갈 때도 있지만 혼자 가는 경우도 꽤 많아요. 저는 1년에 평균 3~4번 정도 해외 프로젝트 출장을 다녔어요.

해외 담당자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일을 하려면 외국어 실력이 좋아야겠네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어, 특히 영어를 잘 할수록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일을 할수록 느끼는 건, 언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현지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협업하는 능력, 내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특별히 작년에 태국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행사를 진행하면서 마음에 깊이 새겨진 뼈아픈 교훈이죠.

언제부터 NGO 분야에 관심을 갖고 준비를 하셨나요?

19살 때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어요. 거기서 약 5년간 남다른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주말이면 수업을 마치자마자 버스를 타고 마닐라로 가서 봉사활동을 했거든요. 밤을 새워서 공연을 준비했고, 마닐라를 비롯해 필리핀 곳곳을 다녔어요. 저와 같은 한국 유학생들도 있었고 현지인들도 많았는데, 다들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고 함께 활동하는 게 즐거웠어요.

힘든 줄도 몰랐죠. 봉사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친구들과 함께 의료봉사 활동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한국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이 아프리카로 가서 무료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이었어요. 그 중 의사 한 분이 아프리카 소외열대질환*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병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가 병에서 나아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된 이야기를 할 때 그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당시 졸업을 앞둔 터라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하며 살지?’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그 영상을 보며 ‘내가 의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국제 개발 협력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해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2016년, 국제 개발NGO인 굿뉴스월드 입사에 성공했습니다.

꿈을 이뤘네요. 실제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무척 기쁘고 행복했죠. 경영지원팀으로 입사해 서류 업무들을 처리하는 부분을 하나씩 배워 나갔어요. 그런데 업무 자체보다 제 소심한 성격이 저를 괴롭혔어요. 입사 초기에 실수를 몇 번 했는데, 그때 몇 번 야단을 맞은 후로 ‘나는 일을 못해’라는 생각이 커졌어요. 그래서 일을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어도 선배들에게 솔직하게 묻거나 이야기하질 못해 끙끙 앓곤 했어요. ‘이분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일을 못해서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거든요.

2018년, 코트디부아르에서. 진료장소 주변에 모인 아이들과 금세 친구가 되었다. 바쁜 일정 속에도 이런 작은 만 남들이 큰 힘이 된다.

그러다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나라 ‘에스와티니’로 의료봉사를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한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분이 제 고민을 듣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누구나 부족한 부분은 있어요. 하지만 ‘나는 일을 못 해,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발전할 수 없어요. 그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해요.”

짧은 대화였지만 제게 큰 가르침이 되었어요. 그때부터 순간순간 올라오는 ‘나는 못 해’ ‘안 될 거야’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과 싸우려 했죠. 그리고 일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부담스러워도 일단 일어나서 국장님이나 선배를 찾아갔어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들의 마음을 제가 알게 되었어요. 저 혼자서 일을 잘하니 못하니 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국장님은 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와 상관없이 우리가 함께 가야 할 ‘한 팀’이라고 생각하셨더라고요. 선배 언니도 제가 도움을 요청하러 갈 때마다 내가 못하는 부분, 실수한 것들을 지적하기보다 저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입사 4년차, 제일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1위는 단연 2018년에 코트디부아르로 의료봉사를 갔던 때예요. 전에 영상으로만 봤던 아프리카 소외열대질환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그때 저희는 ‘코난 크로’라는 시골 마을로 갔어요. 그곳에서 3일간 진료를 진행하는 일정이었죠. 소외열대질환 치료뿐만 아니라 치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다양한 분야의 진료를 받을 수 있었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치료를 받았어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걱정될 정도로 줄이 정말 길었는데,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의료봉사를 가면 진료 부스뿐만 아니라 약국, 환자들의 순환까지 전반적인 진행 상황을 확인하느라 몹시 바쁘다. 하지만 가장 보람찬 시간이다.

사람들이 치료받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의사 선생님을 통해 풍토병 환자들의 사진을 볼 때면 화면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할 정도로 환부가 너무 징그러웠고, 상처가 너무 심했어요. 그땐 돈이 없어서, 또 치료할 길이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며 죽음만 기다리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죠. 그런데 실제로 아이들을 비롯해 환자들이 치료받는 모습을 보는데 환부가 징그럽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나아가는 게 보였거든요.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이 사람들이 정말 고통스러웠을 텐데 여기서 치료를 받고 하루하루 나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 사람들에게 병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소망이 생긴 게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그 현장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기뻤죠.

자신의 인생에 ‘굿뉴스월드’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첫 번째는 ‘홍석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죠. 이전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굿뉴스월드에서 일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연령, 국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부딪힐 때도 있었고,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지금껏 제가 ‘홍석영’이라는 틀에 갇혀서 살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나는 소심해’ ‘나는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앞에 나가서 말하는 게 부담스럽다’ 등 제 생각을 고집할 때보다 ‘에잇 모르겠다!’ 하고 도전할 때가 더 좋더라고요.

두 번째는 시야가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전에는 내 것, 내 삶, 나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면, 이젠 세상을 바라볼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것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돼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젠가는 필리핀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이곳에서 일하면서 종종 필리핀에서 지내며 보았던 것들을 떠올렸어요. 필리핀은 빈부 격차가 굉장히 심해요. 정말 부자인 사람들도 있지만, 가난해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많아요. 제가 유학생이었을 때에는 그런 아이들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저와는 상관이 없는 아이들이었어요. 제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굿뉴스월드에서 일하면서부터 길거리에서 만났던 그 모든 사람들이 저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되었어요. 교육과 보건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죠. 언젠가 꼭 다시 돌아가서 필리핀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홍석영 씨에게 처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그는 ‘인터뷰를 할 만한 내용이 없다’며 걱정했다.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에게서 누구보다 진솔하고 따뜻하고 깊이 있는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4년간 굿뉴스월드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끼고 배운 하나하나가 그의 삶에 큰 가르침이 되어 있었다. 이젠 어려운 사람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며, 그들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홍석영 씨. 세상에 그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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