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좋은 스승을 만난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다. 스승의 사랑과 책망을 통해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도 그런 마음의 스승이 있는가?

막힌 코를 입으로 빨아내 주셨던 아버지

삼 형제 중 둘째였던 아버지는 배우지 못한 한恨 때문에 자식 교육열이 특별하셨다. 못 배우고 가진 것도 없다 보니 어려움도 많고 무시당할 때도 많았기에 ‘나는 굶더라도 자식들은 가르쳐서 고생 시키지 않으리라.’는 아버지의 의지는 정말 대단하셨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을 읽고 구구단을 다 외우게 하셨다.

어쩌다 내가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낙서를 하고 있거나, 성적이 떨어지거나, 인사성이 부족하면 아주 호되게 야단을 치시고 매를 대셨다. 한번은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 성적이 떨어져서 그대로 보여드렸다가는 맞아죽을 것 같았다. 나는 성적표를 칼로 살살 긁어 점수를 몰래 고쳤다. 그런데 내 눈에도 어설픈 티가 보였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성적표 위에 잉크를 쏟아붓고 식별이 안 되게 만들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렇게 하셨노라고 궁색한 거짓말을 했다.

나는 무서운 아버지와 한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한번은 아버지와 한상에서 밥을 먹다가 아버지 잔기침 소리에 내가 경기를 하듯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나는 마음이 더 불안하고 두려웠다. 나는 장남을 잘 키우고 싶어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에 차지 않는 아들이었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몸도 허약했던 나는 아버지 앞에 자연스럽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젊으셨을 때의 아버지는 성격이 불 같으셔서, 내가 성적이 떨어지거나 잘못을 할 때 종종 매를 드셨다. 그러다 보니 잘할 때는 문제가 안 되었지만, 실수를 하거나 허물이 드러나면 ‘이제 맞아죽겠구나.’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나는 항상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께 의사 전달을 했고, 속으로는 아버지를 피하고 두려워했다. 아버지 앞에서 나는 자유가 조금도 없었다. 실수를 할까봐 조바심을 하고, 잘못이 드러나면 안절부절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아버지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놈아, 범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 네가 아버지 마음을 몰라서 그렇지, 네가 하도 자주 아파서 애를 먹이니까 아버지가 온갖 것을 다 구해다 먹이고, 심지어 굼벵이, 지렁이까지 몸에 좋다는 건 안 구해다 먹인 게 없었다. 한번은 네가 감기에 걸려 코로 숨을 못 쉬니까 아버지가 네 막힌 코를 입으로 빨아내 주셨다.”

그때 나는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속에 나를 향한 깊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나도 자식을 키우다 보니 아버지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만, 당시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셨던 게 아니라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셨던 것뿐이었다.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주신 선생님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하루는 열이 올라서 머리가 지끈지끈거리고 아팠다. 그 날은 하루 결석하고 정말 쉬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웬만해서 지각이나 결석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무서운 나는 학교에 가다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가야만 했다. 아버지는 날씨가 춥다고 어머니 스웨터를 내게 입혀 보내셨는데, 키가 작은 내가 거의 발밑까지 닿는 어머니 스웨터를 입고 학교에 가려니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러나 무서운 아버지 때문에 입고 가기 싫다는 말도 못 하고 학교에 갔고, 머리가 욱신거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오셔서 내 이마를 짚어 주시면서 “한규야, 어디 아프니? 아이고 열이 많구나. 몹시 힘들겠구나.” 하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쯤으로 기억되는데, 선생님의 손길이 따뜻했고 고마웠다. 선생님의 손가락을 타고 선생님의 사랑이 전류처럼 내 마음에 흘러들어왔다. 선생님이 천사같이 아름답고 거룩하게 느껴졌다. ‘나도 저 선생님처럼 따뜻하고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작은 꿈이 그때 생겼다. 그 선생님 성함은 이금봉 선생님이셨는데, 지금은 작고하셨겠지만 가끔씩 그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곤 한다.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던 진정한 어른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정말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아버님은 덕이 높으시고 인품도 훌륭하셨다. 한번씩 그 친구네 집에 가면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오시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고상한 인격의 향취가 그대로 전해졌다. 철도 공무원으로 근무하시다가 정년퇴직을 하신 친구의 아버님은 꿈이 교사였다. 그리고 집안이 전부 교육자 출신이었다. 내 친구는 지금도 밀양의 모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이따금 “한규, 자네는 교단에 서면 학생들을 이렇게 대하게. 나는 준동이를 키울 때 이렇게 키웠네.” 하시면서 어떤 마음으로 교단에 서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진실한 마음과 오랜 삶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로운 말씀을 들으면 마치 진하게 우려낸 사골국물을 먹는 것처럼 깊은 맛이 느껴져 나는 늘 친구의 아버님을 매우 존경했다.

나는 사범대학에서 교육학 개론, 교육 철학, 교육 과정, 교육 심리 등 여러 과목을 배웠지만, 그 교육 이론들은 내가 실제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그다지 실제적인 도움이 안 되었다. 그런 이론보다는 이금봉 선생님이나 친구의 아버님께 들었던 말씀들이 내 마음에 훨씬 큰 울림이 되었다.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거칠었던 내 아들

내 아들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방황을 시작하더니,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걷잡을 수 없이 빗나갔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 같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아서 나로서는 그 마음을 잡아줄 도리가 없었다. 공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 사춘기에 방황하고 반항하는 아들에게 나는 여러 번 알아듣도록 설득했다. 특히 아들 주변에는 불량한 친구들이 많아 문제가 더 컸다. 참을 만큼 참았고, 타이를 만큼 타일렀는데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자 나도 화가 폭발하여 아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가슴에 쌓였던 것들이 화산처럼 폭발해 내 정신이 아닐 만큼 사정없이 때렸다. 화가 나서 때리지만 맞고 있는 아들을 보면 한편으로 안쓰럽고 불쌍하고 애잔한 마음에 내가 더 고통스러웠다.

몇 년 전,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아들한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 내가 너한테 지나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아들은 “아뇨, 아버지. 그러면서 사람 되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예전에 나는 아들을 보면 “저 녀석이 저렇게 살다가는 결국 정신병원이나 교도소밖에는 갈 데가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어렵고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 아들이 지금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가장 열악한 나라인 중미의 아이티에서 선교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며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많은 위험과 어려움도 만나지만 항상 감사하며 행복하게 산다. 내 아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아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주신 스승

어느 날 아들은 우연히 명마를 길들이는 훌륭한 조련사 같은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 스승님은 제멋대로 살고, 불만과 반항기가 가득한 우리 아들을 명마로 만들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셨다. 내가 볼 때 아들은 아무도 제어할 수 없고, 조금만 건드리면 길길이 날뛰는 야생마였다. 아들을 아는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이 불한당 같은 놈! 네놈 때문에 네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지 알기나 하냐?

너는 인간 안 돼!” 하며 야단을 쳤다. 나와 가까운 한 동료는 내 아들을 보고 “야, 네가 변하면 내가 손가락에 장을 지질게, 이놈아.”라고 말했다. 아들도 내심 괴로웠는지 청소년 캠프에 참석했다가 교사에게 자기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안 된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담했다. 그 교사는 아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기 위해 “너는 대화나 상담이 필요 없고,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망해서 갑자기 죽을 것 같다.”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그 훌륭한 조련사는 내 아들이 야생마가 아니라 훌륭한 명마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거친 야생마가 길들여지면 훌륭한 명마가 되는 법이라며, 아들의 스승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문제투성이, 말썽꾸러기, 사고뭉치인 내 아들에게 “너는 앞으로 한 나라를 바꾸는 위대한 일꾼이 될 거야. 너도 변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바라보지 마.”라고 하시며 마음에 소망을 심어주셨다. 아들은 스승과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그 마음 안에 있는 깊은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분에게 내 인생을 맡기면 되겠다.

저분의 말씀을 들어야겠다.’라는 마음이 싹트고 자라갔다. 그분은 계속 소망을 심고 사랑을 부어주시며 “너는 정말 명마야.”라고 하셨다.

한번은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제 마음에서 절망을 쫓아내고 소망을 주셨고, 그분은 나 같은 사람도 변한다는 믿음을 갖고 계셨어요. 그분의 마음을 만나면서 제 마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이제는 아들이 안다. 그분을 만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를,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그래서 스승에게 꾸중을 들어도 행복해 한다. 몇 년 전 아들의 교만하고 태만한 부분들에 대해 스승께서 책망하셨다면서, 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스승님께 아무리 책망을 들어도 제 마음이 안 닫히고 자꾸 사랑이 느껴져요. 나를 향한 사랑 때문에, 나 잘 되라고 책망해 주시는 것을 확실히 아니까요.”

어제 아들이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는데,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인 전형하라는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고등학교 때의 한솔이가 이렇게 변한 것은 몇 년째 보고 있어도 못 믿을 일이네.” 고등학교 때 영어와 담을 쌓고 지냈던 아들이 지금은 유창한 불어를 구사하며 아이티를 살리는 명마가 되었다. 눈물겹게 감사하다. 아들을 믿음으로 기다려 주고, 절망할 때 격려해 주며, 낙심할 때 위로해 주고, 지금도 자식처럼 온 마음으로 보살펴 주는 스승이 계시기에 내 아들은 행복하다. 나는 어떤가? 나도 그지없이 행복하다.
 

글쓴이 이한규
현재 링컨하우스원주스쿨 교장이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들을 토대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철학에 대해 집필하고 있다. 전국 대안학교 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고,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녀교육 특강을 온라인으로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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