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나라 필리핀 편 ④

필리핀으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다녀온 학생들은 필리핀을 ‘기회의 땅’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2,000여 명이 참석하는 규모의 행사를 기획하고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지만 봉사단원들과 함께 했기에 ‘끝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그들은 1년간 필리핀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필리핀의 진짜 매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다섯 명의 필리핀 봉사단원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무전여행을 앞두고 떨리진 않았나요?

떨리긴 했죠. 하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좀 더 컸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에서 20년 간 제 고향인 ‘인천’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어요. 저는 안정적이고 편하고 익숙한 걸 무척 좋아하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니 제 좁은 틀 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해외봉사를 택했는데, 잘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곳에서 계속 머물며 봉사활동을 하기보단 다양한 지방을 다니며 활동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면 제 마음에 쏙 드는 곳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죠. 필리핀 수도부터 타굼, 바기오, 앙헬레스, 카바나투안, 산 페르난도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늘 만나는 사람만 만나던 제가 스스럼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큰 변화죠. 그 덕분에 무전여행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릴까?’ ‘언제 내가 무전여행을 해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라유니온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버스를 타면 몇 시간 안에 도착할 거리이지만 교통, 식사, 숙소 등을 위한 돈 없이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라유니온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어요. 걷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고 중간 중간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라유니온에 도착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가자마자 라유니온을 보여줄 수 있는 거라면 무조건 다 찍었습니다. 라유니온 첫인상은 생각보다 이국적이라 놀랐어요! 그래서 배고픈 것도 잊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아, 사실 라유니온은 서핑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관광지인데요, 저희에겐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느껴졌어요. 저희가 다녔던 학교들이 다 산에 있었거든요(하하).

'아떼'는 타갈로그어로 언니라는 뜻이다. 매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나 영어, 댄스 등을 가르치는 ‘키즈 스쿨’을 진행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웃으며 “헬로 아떼 주희”하고 인사를 했다.
'아떼'는 타갈로그어로 언니라는 뜻이다. 매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나 영어, 댄스 등을 가르치는 ‘키즈 스쿨’을 진행했는데, 그때부터 내가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웃으며 “헬로 아떼 주희”하고 인사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언제인가요?

사실 모든 순간이 다 기억에 남는데 가장 기억 남는 것 하나를 꼽자면, 오토바이를 타며 비를 맞았던 때를 꼽고 싶어요. 저희가 처음 라유니온에 도착하자마자 시청을 찾아갔어요. 학교나 기관 등에 마인드교육 프로그램 소개하는 것에 도움을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신기해 할 뿐, 선뜻 도와주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직접 한 곳 한 곳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가서 저희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시간을 줄 수 있는지 물어봤죠. 솔직히 처음엔 ‘누가 허락해주겠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제 걱정처럼 저희의 제안을 거절하는 곳도 있었지만 흔쾌히 허락해주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스케줄이 밀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했죠.

하루는 오전에 초등학교에서 행사를 하고, 오후 1시에 시청에서 행사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행사가 생각보다 늦게 마쳤어요. 뒷정리를 하고나니 이미 12시 30분이었죠.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오토바이를 불러주셨어요. 우리나라 택시처럼 운송수단 중 하나였죠.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달려가는데 갑자기 비가 세게 쏟아졌어요. 저도 흠뻑 젖었습니다. 오토바이는 속도를 줄이며 달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한 상황이었는데 이상하게 그 순간이 즐거웠어요.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볼까?’ 하고 생각했죠. 그렇게 저희는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어 행사장에 도착했어요. 무척 죄송했는데, 감사하게도 저희가 행사장에 들어가자 모두가 큰 박수로 환호해주었습니다. 행복한 하루였어요.

무전여행을 마치며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저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서툴렀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단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사는 것을 좋아했죠. 그런데 무전여행에서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어요. 학교에 찾아가 프로그램을 진행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No money’ 원칙이 있었기에 밥을 먹는 것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일들에 도전할 때면 예상치 못했던 기쁨도 함께 찾아왔어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을 얻을 때 기뻤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좋은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무척 행복했습니다.

저희는 ‘라유니온’에서 7일간 머무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첫날 버스를 알아봐줬던 경찰관부터 마지막 강연을 했던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모두가 소중하고 그립습니다. 무전여행은 1년간의 해외봉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며, 1년간 해외봉사를 떠나 느꼈던 것의 총 집합이기도 합니다. 필리핀에서 어려운 일,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늘 시작은 두렵고 힘들었지만 그 일에 뛰어들었을 땐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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