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일수록 잘 걸린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주변에서 말려도 멈출 수 없다. 어딘가에 빠지면 그것을 멈춘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주위에서 말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나마 낫다. 그 순간은 행복하고, 좋은 결말을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삶을 뒤흔드는 ‘무서운’ 생각에 빠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생각에 빠지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미국에, 천사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찬사를 받은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피아노 영재였던 오빠와 듀엣을 결성해 가수가 되었고, 스무 살이던 1970년에 ‘Close to you’라는 노래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다. ‘카렌 카펜터Karen Carpenter’ 이야기다. 카렌과 오빠 리처드는 이후로도 ‘Superstar’, ‘Yesterday once more’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카렌은 자신이 뚱뚱하다는 생각에 빠져서 ‘신경성 식욕 부진증(거식증)’에 걸린다. 그녀는 살찌는 게 두려워 먹으면 곧바로 토해내거나 설사약을 복용해 몸 안에 있는 음식물을 비워냈다. 다이어트 약을 장기간 복용하여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카렌은 결국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카렌의 경우 외에도 생각에 빠져서 삶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많다. 외롭다는 생각에 빠지면, 부모님이나 연인이 아무리 사랑을 표현해도 불안해 하며 계속 확인하려 든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는 생각에 빠지면 끊임없이 의심을 쏟아낸다.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지면 우울하게 지내다가 결국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생각에 빠져서 고통 속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생각에 빠지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어떤 생각에 한번 빠지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웅덩이나 수렁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데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딘가에 빠진다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나타낸다. 생각에도 한번 빠지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엉뚱한 생각이나 이상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생각에 계속 끌려다니는 것이다.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 고흐

근대 미술사에서 유명 화가로 추앙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삶은 아주 불행했고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친 빈센트 반 고흐. 그는 동생 테오와 편지를 자주 주고 받았는데,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생각이야. 심지어 우리 사이에, 그리고 집에서 그토록 많은 불화와 불행, 슬픔이 나 때문에 빚어졌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참기 어려워. 정말로 그렇다면, 내가 더 살아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때로 이런 엄청난 생각에 파묻혀 너무나 침울해질 때면, 한참 뒤에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해.”(1879년 8월 15일 경, 반 고흐의 편지 중)

고흐는 정신병원에 스스로 장기간 입원하는 등 우울증 치료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다. 그는 동생에게 “슬픔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겼다. 고흐는 자신을 짓누르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생각에 모든 것이 잠겨 삶을 포기한 듯하다.

우울증이나 편집증은 결국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생기는 것이다. 똑똑하거나 사회적 기반이 탄탄한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쉽게 시달리는 이유는, 잘난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 바람직하고 믿음직하다고 여겨질 때 그것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반대로 자신의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생각을 쉽게 버린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생각을 지나치게 믿었다가 어려움을 크게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평범하게 보이는 생각도 그 생각이 맞는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되묻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확인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생각을 잘 정리한다.

어두운 생각에 먹이 주는 일을 멈추고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편집증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 약물 치료, 미술 치료 등을 받는다. 이런 치료들이 도움이 되지만, 언제든지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그대로 놔둔다면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날드 슈베페의 책 <하얀 늑대에게 먹이를>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다. 하얀 늑대와 검은 늑대다.

하얀 늑대는 담대하고 현명하며 사랑이 넘치고, 검은 늑대는 욕심과 두려움과 증오심이 강하고 탐욕스럽다. 우리 마음에서 두 늑대가 격렬히 싸운다면 어떤 늑대가 더 강할까? 어떤 늑대가 싸움에서 이길까? 자신이 먹이를 많이 준 늑대가 더 강하고, 싸움에서 이긴다.”

사람들이 괴로운 것은 ‘우울한 생각’에 먹이를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생각에 먹이를 준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떤 생각을 마음에 두고 그와 관련된 생각을 계속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자. 이 생각을 마음에 두면 그와 관련된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말할 때에는 반응이 시원찮은데 저 사람에게는 웃어 주네?’ ‘지금 수군거리고 있는 게 내 이야기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들이 계속 이어져 마음에서 그 힘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나중에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도, 먹이를 계속 준 탓에 강해진 ‘우울한 생각’에 잡아먹히고 마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을 써주면 써줄수록 커진다. 관심을 준 생각은 그냥 흘러가지 않고 마음에 남아 강한 힘을 갖는다.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데도 악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버둥 치면서도 쉼 없이 ‘우울한 생각’을 쓰다듬고, 그것을 들여다보아 먹이를 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생각이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생각에 끌려다니고 마는 것이다.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생각하는 한 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히 걸릴 수 있는 병일지 모른다. 우울증을 불치병으로 단정짓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겨내지 못할 병은 아니다. 우울한 생각들이 우리를 어떻게 집어삼키는지 알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당신은 우울하지 않은가? 주위에 우울증으로 고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어두운 생각에 먹이를 주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서 키워나가야 하는 하얀 늑대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쓰는 동안 어느덧 활기찬 생활을 되찾을 수 있다.

글=임진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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