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코 해외봉사단_키리바시

키리바시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써야 하고, 빗물을 받아쓰며 손빨래를 해야할 만큼 환경이 열악하지만,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다희야, 동생들 밥 좀 챙겨줘.”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나는 장녀로 태어나 아래로 세 명의 동생이 있다. 부모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희야, 이번 달도 집이 많이 어렵다. 네가 장녀니까 많이 도와줘야 해.” 하며 나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일터로 가셨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동생들도 잘 돌보고 나중에 커서 꼭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다.

알지만 안 되는 것들

고등학생 때 미술대학에 진학하려고 미술학원에 다녔다. 정말 원했던 것이지만 내 학원비 때문에 우리 가족이 피해를 본다는 죄책감을 내려놓지 못했다. 부모님도 동생들도 날 원망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였다.

입시 전 마지막 방학 때, 여러 특강으로 학원비가 두 배로 올랐다. 아빠가 “이번엔 아빠가 좀 힘들다. 학원 가서 특강은 못 듣는다고 해라.” 하셨다. 우리 집 형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과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아버지가 이해됐지만 ‘나는 왜 이래야 해? 다른 애들은 돈 걱정 없이 잘 다니잖아. 진짜 힘들다.’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어려운 형편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것이라서 더 잘하고 싶어 열심히 노력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시험을 보면 항상 하위 그룹에 속했다. 선생님은 나보다 미술 공부를 늦게 시작한 친구들과 나를 비교했고, 그런 말들에 상처를 받으면 다 그만두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힘든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울었다. 마음이 우울하다 보니 집에 가면 핸드폰만 하고 있고, 아무것도 아닌 걸로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참 이상했다.

분명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내 마음과 다르게 상처를 주었다. 생각과 행동이 다른 나,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는 내가 싫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멀리 떠나면 이런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해외봉사를 신청했다. 그리고 지구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인 ‘키리바시’를 향해 비행기를 탔다.

여기서는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바닷가와 따뜻한 날씨. 순수하고 평화로운 키리바시 사람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키리바시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감옥 속에 갇혀서 답답한 갈증을 느꼈다. 같이 간 단원들부터 현지 꼬마에게조차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곤란한 부탁을 할 때도 ‘내가 거절하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거절하지 못하고 알겠다는 대답부터 했다.

눈부신 하늘과 푸른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키리바시에서 만난 아이와 함께.
눈부신 하늘과 푸른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운 키리바시에서 만난 아이와 함께.

‘여기에 오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도 힘든 삶이 계속됐다. 그러니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덥고 습한 날씨와 밤이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모기와 파리 소리. 또 화장실 물을 내리고 손빨래를 하기 위해서 멀리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는 상황까지.

특히 실수를 할 때면 ‘또 실수했다. 이런 나를 누가 좋아할까? 쟤는 왜 저렇냐고 생각하겠지?’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주방에서 접시를 깼다. 팀장님께 접시를 깼다고 죄송하다고 하면 되는데 나는 혼날 걱정만 하고 말을 하지 못했다.

같이 해외봉사 온 단원들은 키리바시 학생들을 만날 때면 친구가 되어 행복하게 지내는데, 나만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먼 곳까지 와서도 사람들 눈치를 보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미워서 팀장님께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께서는 왜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사람들이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정말로 그게 사실이 될 것 같았다.

나는 형편없는 선생님

굿뉴스코 키리바시 지부는 ‘애벌레에서 나비로’라는 이름의 대안학교를 운영한다. 그곳에서 봉사단원들은 스스로 보잘 것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너희는 나비야’라는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마인드교육과 음악, 운동 등 여러 수업을 진행한다. 그중에 나는 댄스와 리코더 교실을 맡았다.

1년 동안 댄스수업을 가르친 학생들이 드디어 댄스공연을 하는 날, 마지막 수업을 기념하며 찰칵.
1년 동안 댄스수업을 가르친 학생들이 드디어 댄스공연을 하는 날, 마지막 수업을 기념하며 찰칵.

비록 한국에서는 대학생이지만 그들에게는 선생님이기에, 학생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댄스 수업에서 동작을 까먹어 그 동작을 못 가르쳐 주기도 하고, 리코더 수업에서는 박자를 잘못 세어 학생들을 헷갈리게 했다. 크고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많이 실수하는데, 나를 선생님으로 생각할까?’ 하는 생각과 형편없는 내 모습이 날 더욱 힘들게 했다.

아름다운 나비가 되다

“선생님, 저 할 말 있어요!”

“응. 뭔데?”

어느 날, 리코더 수업을 마치자마자 붸따가 찾아와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선생님, 오늘 마인드교육 시간에 마음의 이야기를 하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꼭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 해보렴.”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고 찾아온 붸따가 너무 순수하고 예뻐 보였다.

“저는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어요.

항상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에 외로워하고 방황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누구보다 저를 사랑해주셔서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저를 사랑해 주셨는데, 저는 이제야 그 사랑을 알았어요!”

“우와. 붸따, 너의 이야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워. 너 정말 대단한 걸 알았구나!”

붸따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너무 비슷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도 마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날 바로 팀장님을 찾아갔다.

“팀장님, 저는 사람들이 저를 싫어할까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면 감추기 바빴어요. 모자란 모습을 사람들이 알까봐, 아예 사람들을 만나는 것까지 피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더 싫어할까 싶어서요…. 그래서 전에 접시를 깬 것도 도저히 말씀을 못 드렸어요.”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팀장님은 내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다.

“너는 사랑받는 행복한 사람이야!”

“제가 사랑받는 사람이라고요?”

“내가 너를 싫어할 이유가 뭐가 있니? 좋아했으면 좋아했지. 나의 행복은 너희가 여기서 배운 것으로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거야. 너희가 1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행복을 발견했으면 좋겠어.”

키리바시에서 함께 살던 가족들과 바다에서 잡은 참치로 바비큐 파티를 하던 날,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키리바시에서 함께 살던 가족들과 바다에서 잡은 참치로 바비큐 파티를 하던 날,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팀장님의 그 한마디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옥죄던 생각의 감옥에서 해방시켰다.

‘아, 팀장님은 나의 실수를 발견해도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럼 우리 부모님도, 내 주변 단원들도 나를 사랑하겠구나!’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은 늘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다만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없었다. 그런 내가 이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며 애벌레라는 내 생각에 갇혀 항상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애벌레라면 언젠가 나비가 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선생님이라서 가르쳐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나도 학생들과 함께 아름다운 나비로 함께 자랐다.

리코더 아카데미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연습한 곡을 연주해보고 있다. 간단한 곡도 함께 하다 보면 멋진 공연이 된다.
리코더 아카데미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연습한 곡을 연주해보고 있다. 간단한 곡도 함께 하다 보면 멋진 공연이 된다.

키리바시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화장실 물을 써야 하고, 빗물을 받아쓰며 손빨래를 해야할 만큼 환경이 열악하지만,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지내니 그런 불편함도 어느새 행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사랑받는 행복한 사람이다. 1년의 시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우리가 탄 비행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뙤약볕에서 우리를 배웅해준 키리바시 사람들이 무척 그립다.

글쓴이 정다희
조선대 디자인공학과에 재학중인 그녀는 전세계 곳곳에 최고의 미술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다. 해외봉사를 떠나기 전에는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키리바시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면서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키리바시가 준 가장 큰 선물인 사랑을 생각하면서 꿈을 향해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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