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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부부’에서 따뜻한 ‘가족’으로유재하, 신미라 귀농 부부의 전원일기
고은비 기자 | 승인 2020.07.15 21:17

현대 사회는 가족 구성원이 단출해지고 있다. 1인 가족도 늘고 있다. ‘유재하·신미라’ 부부도 1년 전엔 도시에 사는 전형적인 핵가족이었다. 그런데 남편 유재하씨가 귀농을 결심하면서 지금은 충주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처음 귀농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사람들이 유재하 씨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어떻게 아내를 설득했어?”였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신미라 씨 또한 처음부터 귀농이 반갑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귀농을 택했고, 지금은 남편이 무척 고맙다고 말한다. 그들의 시골 생활은 어떨까? 신미라 씨의 시점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귀농, 남편에게 내가 져준다!

“우리도 귀농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

“귀농? 좋긴 하겠지?”

결혼하고 2년이 흘렀을 즈음 남편이 종종 나에게 귀농 이야기를 했다. 결혼할 때부터 시댁이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는 줄은 알았고, 나도 언젠가 아이들이 다 크고 나이가 들면 과수원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해왔던 터였다. 그래서 남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꽤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이 흘러,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에 깊은 진심이 담겨 있으며 그 시기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과수원 일을 하는 것보다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 더 서글펐다. 특히 교사로 일하던 나는 내 직업을 천직이라 여길 만큼 좋아했기에 선뜻 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 두 사람의 의견이 양립할 수는 없었다. 하나로 마음을 합해야 끝나는 문제였다. 남편도 나를 채근하진 않았다. 10여 년 넘게 떨어져 살았던 부모님과 가까이 지내며 사과 농사를 짓고 싶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찬찬히 생각하다가, 어느 날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남편, 내가 져준다! 남편이 행복하게 일하면 우리 가정도 행복하니까.”

물론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주 어려운 결정도 아니었다. 평소 까탈스런 나를 늘 이해해주고 양보해주는 세심하고 고마운 남편이었기에 큰 결정 앞에서 남편의 말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함께 살아봐야 느낄 수 있는 것들

“시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요?”

귀농 전, 학교에 사직서를 내자 직장 동료들이 하나같이 물었다. 현재 우리는 시부모님과 한지붕 아래 살지는 않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 나는 매일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둘째와 함께 셋이서 곧장 과수원으로 향한다. 아이들과 과수원에서 놀다 저녁 시간이 되면 다 같이 시댁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제는 꽤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시’자가 붙으면 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나도 명절 때나 뵈었던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대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도와드려야 하는지 아는 것이 없다 보니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 뵙고 가까이 지내다 보니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무엇을 필요로 하시는지’, ‘무엇 때문에 속상하셨는지’, ‘내가 무엇을 함께 하면 좋은지’ 등을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예전에 가끔 뵐 때에는 짙은 화장에 예쁜 원피스 차림으로만 만나다가 지금은 맨 얼굴에 편한 옷차림으로 만나도 무척 편한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주 보고, 사랑을 받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랑해요!” “할머니가 안아줘서 좋아!” 하고 마음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남편도 떨어져 지내던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남편은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묻고 배운다. 이 나이에도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갈 수 있다는 건 좀 특별한 것 같다. 귀농을 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가족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 사과 과수원

“남편, 남편이 제일 잘한 게 귀농이야.”

요즘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어디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과수원에 가서 맘껏 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이들은 나무가 자라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또 지고, 열매가 맺혀 파랗던 사과가 빨갛게 변하는 모습을 직접 본다.

충주시에 있는 약 2000여 곳의 사과농가 중 저희사과가 지난해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제초제를 전혀 쓰지 않으며, 지하 암반수에서 나오는 물을 줘서 품질이 우수한 사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남편, 유재하 씨는 아버지가 졸업한 충북 농업마이스터 대학에 재학 중이며, ‘귀농의 맛’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드론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청년 농부로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한테 적과하는 법을 배웠다. 한 가지에 다섯 개의 사과 열매가 열리면 가장 튼튼한 열매만 두고 나머지는 다 따주는 작업인데, 첫째 한선이가 그걸 금세 배웠다. 그리고 얼마나 신기한지, 남겨둬야 할 열매를 정확히 골라냈다.

한선이의 그런 모습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사랑스러운 둘째 한슬이는 그냥 과수원을 걷고, 넘어지기도 하고, 흙을 만지고 던지는 게 놀이다.

이곳에 살면서 첫째가 많이 변했다. 부끄러움도 많고 무척 소심한 아이인데, 귀농하기 전에는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어린이집에 맡겨놓기 바빴다. 늘 미안하고 걱정되었는데 이곳에 와서 매일같이 과수원에서 놀다 보니 이젠 과수원을 씩씩하게 활보하고 다닌다.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고, 올챙이도 보고 개구리도 대범하게 잡는다.

종종 맘카페에 “개구리 실제로 볼 수 있는 곳 없나요?”라는 글이 올라오곤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정말 원 없이 그런 자연을 흠뻑 체험하며 산다. 그 때문에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히는 게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커가는 것이 기쁘다.

새로운 길을 걸으며 발견하는 기쁨

“남편, 유재하~!”

“미라 신!”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부른다. 남편은 나보다 세 살 어리지만 수준이 꼭 맞아서 아주 어릴 적부터 알아온 친구처럼 편안하고, 재미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장난이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사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도 나이지만 인상도 사납고 약해 보이는 나를 남편이 마음에 들어 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나 그대로를 좋아하고 사랑해주었다. 아이를 낳고 함께하는 지금까지도 남편은 나에게 가장 편한 사람이기도 하다. 귀농한 뒤 가장 아쉬웠던 점 하나는 수다를 떨 또래 친구들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친구 같은 남편이 있었기에 그나마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전에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길을 가고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그 길을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나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느끼는 행복이 있듯이, 어쩌면 도시에서 살며 시부모님과 서먹서먹하게 지냈을지도 모르는데 이곳에 온 후 나는 예상치 못했던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한선이는 이곳에 와서야 흙을 만지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것이 100%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내가 그린 적 없던 이 길을 계속 가보고 싶다. 아이들이 다 자라면 몸뻬 바지에 장화를 신고 과수원에 들어가 일도 맘껏 해보고 싶다. 그리고 과수원 일을 하면서 배우는 자연의 가르침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언젠가는 도시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일도 해보려고 한다.

며느리가 물었습니다.

‘귀농’ 이후 무엇이 가장 좋았나요?

“재하가 스무 살이 되면서 유학을 가고, 또 도시에서 직장을 잡고 살다 보니 10여년간 떨어져서 지냈는데, 이렇게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 게 좋아. 농사일이 정말 힘들기 때문에 내가 권할 생각도 없었거든. 아들이 먼저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하니까 고맙고, 함께 같은 일을 하니까 든든하고 힘이 되는 것 같아.”

(유왕열, 66살, 시아버지)

“나이가 들수록 외롭더라고. 그럴수록 우리 손자 손녀들이 늘 그리웠지. 이렇게 한선이랑 한슬이를 자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아주 행복해. 애들이 건강하게 지내니까 너무 예쁘고. 우리 며느리 미라도 너무 고맙다.”(정용애, 64살, 시어머니)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저를 안아주셔서 좋아요. 그리고 맛있는 사과를 먹어서 정말 좋아요!” (유한선, 4살, 첫째)

“어머니 아버지가 한선이와 한슬이를 보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장 뿌듯해. 그리고 내 성향이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는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어. 매일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연구 대상이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요리도 맛있게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아이들도 돌봐주니까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 살면서 불편한 게 많을 텐데 이곳까지 믿고 따라와줘서 고마워. 내 마음은 늘 당신에게 뭐든지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어.” (유재하, 34살, 남편)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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