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가 1845년부터 구상하여 1862년에 완성한 소설로 이후에 영화, 뮤지컬,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진 명작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가브로슈’라는 소년을 기억할 것이다. 가브로슈는 허름한 옷차림의 가난한 사람들이 마차를 탄 부유한 사람들을 에워싸고 ‘Look down’이란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Look Down’은 ‘고개 숙여 가난한 이들을 보라’는 의미다. 노래 가사에는 ‘우린 자유를 얻기 위해 왕의 목을 쳤는데 지금은 빵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평등이란 게 있긴 하냐?’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보통 프랑스 하면 낭만의 도시 파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몇 세기 전만 해도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였고, 파리는 빈민의 도시였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프랑스 국민들은 굶주림과 신분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혁명으로 왕정 체제를 뒤엎고 왕이 없는 나라, 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런데 가브로슈가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혁명을 일으켰지만 과거보다 못한 삶을 살아간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노동 빈민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시대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지, 부랑자, 매춘, 알코올 중독의 시대였다.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나 심해, 사람들은 ‘이렇게 노동하며 고생할 바엔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게 낫다’는 구호를 외치며 또 다른 혁명을 꿈꾼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레미제라블>에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괴로움을 겪는 비참한 사람들이 행복을 찾기 위해 움직여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급진적인 정치 활동으로 20년 동안 망명해야 했는데, 망명지에서 본격적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그는 망명지에서 조국 프랑스를 바라볼 때, 자신이 그 안에서 살았던 때와는 조금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그는 비참한 사람들이 ‘혁명’을 통해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참한 사람들은 무엇을 통해 행복을 찾았을까?

레미제라블 초판(1862년)에 프랑스 화가 에밀 바야르가 그린 삽화가 실렸다
레미제라블 초판(1862년)에 프랑스 화가 에밀 바야르가 그린 삽화가 실렸다

장 발장과 포슐르방

<레미제라블>의 원작은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당시 프랑스의 풍습과 사회 문제를 다룬 시대적인 작품이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 가운데 시기와 분노, 억울함 속에서 살다가 새로운 삶을 찾은 두 사람을 특별히 소개하고 싶다. 바로 장 발장과 포슐르방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책의 주인공 장 발장은 굶주린 누이와 조카들을 위해 빵 하나를 훔친 죄로 5년 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감옥에서도 밖에 남은 가족들이 걱정되어 네 번이나 탈옥을 감행해 모두 19년 형을 감내해야 했다. 그는 19년 동안 노역을 하며 노예 같은 삶을 살았고, 형기가 끝나고도 ‘도형수’란 딱지가 어딜 가나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느 곳에서든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대뿐이었지만, 미리엘 주교가 있는 성당에서는 그를 따뜻하게 받아준다.

그러나 장 발장은 주교의 환대를 저버리고 모두 잠든 새벽에 주교의 식기를 훔쳐 달아난다. 다음 날 아침, 경찰에 붙잡혀 주교 앞에 다시 서게 된 장 발장.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노역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교는 “그 식기들은 내가 그에게 선물로 주었소. 그런데 장 발장, 은촛대는 왜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하며 그를 끌어안는다. 주교의 크나큰 용서와 사랑은 장 발장으로 하여금 새로운 마음을 품게 했고, 장 발장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살다가 어느 도시의 시장까지 된다.

포슐르방은 마들렌(장 발장이 사용한 가명) 시장을 욕하는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감은 하급 재판소의 서기로 일했으며 촌사람 중 꽤나 유식한 노인인데 사업이 파산해 짐마차꾼이 되었다. 그는 똑같은 노동자로 시작했는데 누구는 시장이 되고 누구는 짐마차꾼이 된 것을 억울해하며 장 발장을 시기하고 미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이 쓰러지는 바람에 포슐르방은 마차 밑에 깔리는 사고를 당한다. 설상가상으로 그 장소는 진흙탕이라 마차와 말의 무게로 그는 점점 흙탕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위험한 상황에서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장 발장이 나타나 영감을 살린다. 사실 장 발장은 19년 동안의 강제 노역으로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엄청난 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난 과거가 드러나지 않도록 그 힘을 숨겨왔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단숨에 마차를 들어올려 영감을 구한다. 또한, 사고로 전 재산인 마차와 말을 잃고 다리마저 불편해진 포슐르방에게 어느 수도원의 정원사로 일자리까지 얻어 준다.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

빵 한 덩이를 훔치다가 잡혀서 19년 동안 벌을 받아야 했던 장 발장, 그는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차가운 현실을 또 마주해야 했다. 살아갈 길이 막막했던 그는 세상에 분노와 증오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의 용서와 사랑이 어둡던 그의 마음을 감사로 채웠으며, 약한 자를 품고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 수 있도록 했다.

포슐르방 영감 또한 장 발장과 같은 변화를 경험한다. 장 발장을 무너트릴 구멍만 보이면 나서서 흠집을 내던 그의 마음 역시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장 발장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자신을 구해주자 영감은 죄책감과 감사한 마음으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 그는 감사를 잊지 않고 자베르 경감에게 쫓기던 장 발장과 코제트를 숨겨주고 정원사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레미제라블>은 빈곤과 불평등으로 가득 찬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중심에는 ‘감사’가 잔잔하게 흐른다. 장 발장과 포슐르방뿐 아니라 팡틴이라는 여인도 자신의 딸을 거두어준 장 발장에게 죽는 순간에도 고마워하며, 고아가 된 팡틴의 딸 코제트 또한 자신을 깊은 사랑으로 키워준 장 발장에게 고마워한다.

가난하고 가련해 보이지만 마음에 감사를 품은 사람들은 아름답다. 작은 빛을 내어 주위를 잠잠히 밝힌다. 오늘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미리엘 주교처럼 혹은 장 발장처럼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을 받아 감사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마음을 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런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사회를 ‘살 만한 따뜻한 곳’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글쓴이 이영선
학부 시절 <투머로우> 잡지에서 캠퍼스 기자로 글쓰기 역량을 키워왔다. 프랑스 문학을 특히나 사랑하는 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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