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나라 미얀마 ①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을 알게 됐고, 필리핀으로 봉사를 다녀왔다. 1년 동안 필리핀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처음 배운 ‘마음의 세계’는 신선했다. 지금은 내가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는 굿뉴스코 미얀마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얀마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오토바이를 타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토바이를 갓 배워 운전이 많이 서툴고 날까지 저물어가고 있어서 겁이 덜컥 났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에 속도를 내서 부지런히 가는데, 신호가 바뀐 것을 보지 못해 앞차와 부딪히고 말았다. 미얀마 말도 서툴고 해외에서 겪는 첫 번째 교통사고여서 몹시 당황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멍하니 있는데 상대 운전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속으로 ‘욕을 크게 먹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더니 윙크를 하며 씽긋 웃는 것이 아닌가? “야레, 야레.”라고 하며 내 상태부터 살폈다. 야레는 ‘괜찮아’라는 말이다. 사고를 낸 건 나인데,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나를 살피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한국 같았으면 분명히 큰소리가 오갔을 상황에서 그는 계속 밝게 웃으며 연신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드리며 손을 흔들고 자리를 떠났다. 사고를 낸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걱정하는 그는, 항상 서로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함께 고민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교통사고 이후 나는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는 가난하고 발전이 더딘 미얀마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한 것이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넉넉하지 않지만 서로 음식을 나눠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가 겪은 어려움을 이웃이 경험하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민다.

한국에서 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았다. 그래야 남에게 무시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에게 너무 관대하거나 쉽게 믿으면 ‘호갱’이란 소리를 듣고, 나의 일도 아닌데 도와주려고 하면 ‘오지랖을 부린다’며 핀잔을 받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미얀마에 와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을 배려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바보 같은 일이 아니라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미얀마에도 슬픈 면은 존재한다. 미얀마는 세계 2위 마약 생산국으로, 누구나 마약을 쉽게 접한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를 마약으로 잊고, 많은 학생들이 마약 때문에 범죄에 가담한다. 미얀마 정부는 마약을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속을 비웃듯 최근 불교 사원과 작은 마을에서 대량의 마약이 발견되었다. 또한, 가난하다 보니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유년시절을 보낸다.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도 취업할 곳이 없어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이처럼 미래가 불분명한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마약에 손을 댄다.

나는 미얀마로 해외봉사를 온 학생들과 함께 미얀마 청소년들에게 한국어, 영어 등 다양한 수업을 한다. 그 중 특별히 비중을 두는 것이 음악 교육이다. 미얀마는 오랫동안 음악 교육이 없었다. 독재정권 50년 동안 국민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막기 위해 예술교육을 철저히 차단했고, 그래서인지 계이름을 아는 사람이나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미얀마 거리에 나가보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들이 많다. 악보를 볼 수 없어도 들을 수 있는 귀를 이용해 연주하는 것이다. 듣는 귀가 발달한 그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함으로 전문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미얀마는 요즘 떠오르는 여행지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수백 개의 금빛 파고다(Pagoda, 탑)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화려하지만, 넓게 펼쳐진 초원과 수많은 소수 민족이 조화를 이루어 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미얀마의 매력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 하지만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50년 넘게 이어진 군부독재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만들었으며 정부를 불신하게 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깊은 슬픔이 공존하는 곳, 나는 여행만으로는 만날 수 없는 ‘진짜’ 미얀마를 많은 대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곳에서 1년간 해외봉사를 마치고 나면, 황금 파고다의 장엄함보다 마음으로 만난 미얀마 사람들이 더 감동적일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어 인생이 변한 학생들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About Myanmar...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중국.태국.라오스.방글라데시와 접하고 있어서 여러 나라의 문화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국토 면적은 676,590㎢로 남한의 6.7배, 인구는 5,440만 명으로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많다.

미얀마는 135개 소수 민족이 형성한 전혀 다른 언어, 문화가 인상적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선 공용어인 미얀마어(버마민족어)를 사용해야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88%가 불교신자다. 어딜 가나 황금색 불탑을 볼 수 있으며, 남자는 일생에 한 번은 승려가 되어야 한다. 어린 소년들이 단기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이 미얀마의 성인식 ‘신쀼의식’이다. 이 의식을 치러야 사회적으로 남자로 인정받는다.

쉐다곤 파고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파고다로, 높이가 112미터에 이르며 겉면 전체가 황금으로 덮여 있다. 미얀마의 상징물이자 세계적인 성지순례지로, 탑 안에는 석가모니의 머리카락 8가닥이 보관되어 있다. 1990년대부터 일반인들에게 금판을 기증받아 붙이기 시작한 후, 미얀마 역대 왕들과 불교신자들이 기증한 금판으로 외벽을 장식하면서, 지금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덮인 세계적인 불교 유적지로 통한다. 탑 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영국 식민지 시절에 영국군이 신발을 신고 탑에 들어간 일로 미얀마 사람들이 격렬하게 항쟁을 일으켰을 만큼 이 의례는 중요하다.

전통 의상 ‘론지’

남녀 모두 치마 형태의 옷을 입으며, 남자가 입는 것은 ‘론지’, 여자가 입는 것은 ‘트메이’라 부른다. 론지는 치마 형태라고 하면 떠오르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인 ‘킬트’보다는 더 길다. 전통의상은 우리나라 한복처럼 특별한 날에만 입는다고 생각되지만 미얀마 사람들에게 론지는 일상복이다. 10명 중 5~6명은 론지를 입고 생활한다. 학생들이 입는 교복도 학교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얀 셔츠와 초록색 론지를 입게 되어 있다.

양곤대학교

양곤대학교는 1960년대까지 세계 100위 안에 들던 명문 대학이었다. 그런데 1962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민주화 요구를 미리 막기 위해 ‘우민화 정책’을 펼쳤고, 이는 대학의 기능을 퇴보시켰다. 또한 학생들이 주도한 8888항쟁(1988년 8월 8일에 열린 민주화운동) 이후로는 인문사회계열 학부생을 아예 뽑지 않았다가, 2013년이 되어서야 다시 뽑기 시작했다.

천연 선크림 ‘따나카’

미얀마 사람들은 남녀노소 없이 따나카를 바른다. 어디를 가든지 얼굴에 노란색 따나카를 바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미얀마 여자들은 2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미용을 위해 따나카를 사용해 왔다. 따나카를 발랐을 때 아름답다고 여겨, 공주부터 농사를 짓는 여자까지 모두 즐겨 발랐다. 이외에도 따나카의 기분 좋은 향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피부에는 쿨링 효과를 준다. 따나카는 납작한 돌판에 물을 붓고 따나카 나무를 올린 후 동그랗게 갈면 노란색 분말액이 나오는데, 그 액을 얼굴에 바른다.

글=이용찬 미얀마 IYF파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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