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오목눈이의 사랑>

오목눈이, 뱁새는 머리에서 꽁지까지 합쳐 12센티미터, 무게도 10그램이 채 되지 않는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아주 작은 새다. 그가 막 태어났을 때, 사자자리와 뱀자리 사이에 있는 작고 희미한 ‘육분의’* 자리만 홀로 빛나서 그의 엄마가 이름을 ‘육분의(육분이)’라고 지어주었다. 비록 몸집은 작아도 곳곳을 잘 살피고, 자기가 앉고 날아갈 방향도 살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육분의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첫째 사자자리와 바다뱀자리 사이에 있는 작고 희미한 별자리. 둘째, 태양, 달, 별 따위를 수평선 상의 각도를 재어 관측 지점의 위도ㆍ경도를 간단하게 구하는 데에 쓰는 광학 기계.

그 이름 때문이었을까? 적자생존의 숲에서 새매와 누룩뱀 등 수많은 천적들에게 쫓겨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다른 오목눈이들과 달리 육분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인생에 대해 깊이 사고하는 새로 자란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품고, 키웠던 뻐꾸기 앵두가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갔을 때, 그는 원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앵두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야.’

육분이에게 이런 감각이 생긴 것은 큰 배 안에 붙어 있는 석궁 모양의 방향 측정 기구 ‘육분의’를 직접 본 이유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갈매기에게 ‘군함새’의 비극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적도 부근에 사는 군함새는 날개가 매보다 크고 몸이 가벼워서 세상에서 가장 빨리 나는 새라고 한다. 날치 떼를 먹고 새들이 잡은 물고기를 낚아챌 만큼 빠르며, 시속 200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구축함처럼 빠르다고 ‘군함새’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새는, 날쌔지만 거센 바람을 만나면 방향도 잃으며, 날개가 너무 커서 한 번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바다에 빠져 사람들에게 잡힌다고 한다. 아무리 빨라도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큰 깨달음 하나가 빛처럼 육분이의 마음에 들어왔다.

“우리처럼 많은 것들에게 쫓기며 사는 오목눈이에게 빠른 것이야말로 부러운 일이지. 그렇지만 빠른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아. 날아가는 속도보다 어디로 갈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와 방향을 아는 게 더 중요하지. 이제 머릿속에 들어온 육분의로 언제나 방향을 잡고 나는 거야.”

작은 몸으로 알을 부화시키고, 스무 날 넘게 덩치 큰 뻐꾸기 새끼에게 벌레를 잡아 먹이고, 누룩뱀이 찾아와 둥지를 습격할 때도 몸을 던져 지켰는데, 어느 날 그 뻐꾸기 앵두가 떠났다.

“그럴 리가 없어. 그 아이는 내 가슴으로 품어서 키운 나의 장한 아이야.”

“눈을 떠도 감아도 자꾸 앵두가 보여.”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앵두가 사라졌을 때 처음에는 원망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어지지만, 육분이는 마음속의 ‘육분의’를 꺼내 방향을 다시 잡는다. 앵두의 마음을 만나기 위해 먼 아프리카까지 길을 떠나기로 한다. 1만 9천 킬로미터, 100일 하고도 7일을 더 날아야 하는 거리. 텃새에게는 산 너머 바다까지 나가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육분이의의 용기가 대단하다. “그게 용기라면 상처가 만들어 낸 용기겠지요.” 그동안 앵두에게 쏟았던 마음이, 그 그리움이 두려움보다 컸기에 앵두가 갔던 길을 뒤따라가는 것이다.

러시아 국경을 이루는 커다란 우수리 물줄기를 건너, 티벳과 히말라야를 돌아, 아프리카 잠비아 탕가니아 호수까지 쉬지 않고 날아가야 한다. 설산, 모래돌풍, 샹그릴라의 독수리를 만나고 무서운 새떼에게 고역을 당하기도 한다. 낯선 땅에서 낯선 씨앗을 잘못 먹고 죽을 만큼 아팠던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날개를 퍼덕일 힘조차 없을 때도 있었다. 눈보라 돌풍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육분이는 앵두를 향해 끝까지 날아간다.

멀고 먼 아프리카까지 가면서 육분이는 인면조와 참새와 독수리,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새들을 만난다. 사연 없는 삶은 없다. 모두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각각의 방향을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간다. 서로 방향이 다르기에 그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앵두가 갔던 방향으로 계속 따라가보니 육분이는 알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육분이는 마침내 결심하게 된다. 앵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그들의 삶을 너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 거리를 날아보니 앵두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뻐꾸기는 철새지만 더위나 추위를 피하려고 자신의 둥지로 온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을 위해서 온 것도 아니었다. 단지 새끼를 낳아 기르려고 그 먼 길을 날아왔던 것이다. 두 달 반을 머물며 조금 자란 새끼를 데리고 다시 아프리카로 날아가야 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알을 키워줄지 아니면 보자마자 쪼아버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알을 맡겨야 했다. 그때 어미의 마음은 어땠을까? 열두 개의 알 가운데 한두 개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다시 아프리카까지 날아가야 하는 뻐꾸기, 기구한 인생이었다.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었다.

“앵두야, 다른 오목눈이 둥지로 가지 말고 꼭 엄마 둥지로 날아와. 엄마가 네가 낳은 알을 품어줄 테니까.”

육분이는 앵두에게 진심을 담아 말한다. 얼마든지 네 알을 품어주겠노라고.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날아서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온 뻐꾸기의 알을 품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말없이 떠나간다 해도 더 이상 배신감은 없을 것이다. 속아서도 아니고, 억지로도 아니고, 이젠 진심으로 품어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출처 위키피디아

살다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일,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난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일까? 평소에 잘 어울리던 사람, 좋은 선물을 많이 준 사람, 어떤 일이든 잘 해결해 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가족일까? 다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공감해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경우, 부모님에게는 혼나거나 걱정하실까봐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법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게 부모다. 힘든 줄도 모르고, 어렵거나 부끄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부모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걸까?

육분이가 앵두를 찾아갔던 것처럼 부모도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가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너무 당연하게 아이들의 마음은 살피지 않고 일방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가르치는 말이나 잘하라는 말만 쏟아낸 것은 아닐까?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만 하라고 야단만 칠 게 아니라, 왜 그렇게 게임에 빠져 지내는지 자녀의 마음을 따라가 보고, 그 이유를 알고 난 뒤 육분이가 앵두에게 마음을 담아 전했던 말처럼 사랑을 담아 이야기하면 어떨까? 간식도 먹으면서 쉬엄쉬엄 게임을 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조금만 더 하고 숙제할게요.” 미안해하며 엄마의 마음을 살핀다. 어긋나 있던 마음이 하나로 흐른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하며 산다. 가족끼리도 가는 방향이 다를 때가 많다. 이럴 때, 우리도 오목눈이 육분이처럼 마음의 ‘육분의’를 꺼내 어디로 날아갈지 잘 결정하면 좋겠다. 가족이 날아가는 길을 같이 날아가 그 마음을 알면 좋겠다.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알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그랬구나….’ 이런 혼잣말이 많아질수록 원망과 슬픔이 사랑으로 바뀌고, 살면서 겪는 갈등과 어려움이 감사와 행복으로 바뀔 것이다. 육분이와 앵두처럼.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목눈이의 사랑>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순원이 쓴 장편소설로 ‘어른들을 위한 감동 우화’라고 불린다. 세밀화 같은 일러스트는 방윤희 작가의 작품이다. 2019년 해냄출판사에서 초판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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