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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소중한 선물
정명철 | 승인 2020.06.19 14:30

나는 2019년을 에티오피아에서 보내고 올 초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1년 동안 나는 하얀 피부를 잃고 행복한 웃음을 얻었고, 편리한 생활을 잃고 검소한 생활을 얻었으며, 자존심을 잃고 감사를 얻었다. 피부가 검게 탄 것만큼 내면도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내 스스로를 100점 만점에 90점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40점도 안되는 것 같다. 나 자신을 알고 나니까 감사할 일이 많고, 배울 것도 많았다. 이처럼 많은 것을 선물해준 해외봉사 1년. 그 시간이 나에게 가져다준 정말 소중한 선물을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의 좌우명은 ‘중간만 가도 된다’

어려서부터 나는 야망이나 포부 따위는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적당히 돈을 벌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가 그린 행복한 인생이었다. 대기업에 다니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머니와 5살 많은 형과 함께 유년시절을 평범하고 순탄하게 보냈다. 어느덧 ‘중간만 가면 된다’는 것이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방의 어느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태풍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대규모 구조 조정으로 퇴직하셨고,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화장품 매장은 적자가 이어져 큰 빚을 지고 가게 문을 닫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퇴직금으로 제주도에 땅을 샀는데 사기를 당했다.

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대학을 1년 휴학하고 서울에 있는 영상 회사에 취직했다. 촌놈의 서울살이는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영상을 편집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고, 주말까지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고 나면 최소한의 생활비 외에 남는 것이 없었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하루에 두 끼씩 먹으며,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서울에서 외롭고 힘든 삶에 지쳐갔다. 내가 원하는 일을 했지만, 인생이 내 생각처럼 결코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회사의 재정 악화로 월급마저 받지 못할 상황이 되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학교로 돌아갔지만 행복한 인생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혀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몇 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거의 폐인처럼 집에서만 지냈다.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해외봉사를 가라고 권하셨고, 새로운 힘이 필요했던 나는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우리나라를 도운 에티오피아를 향해

6.25전쟁 때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황실 근위대 6천여 명을 한국으로 보내면서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하였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한 ‘강뉴부대’는 253번 전투를 치러 황제의 말대로 한번도 패하지 않고 다 승리했다. 북한군들이 에티오피아 병사만 봐도 떨었을 정도로 강뉴부대는 용맹하고 강했다. 그처럼 유엔군의 도움으로 우리나라는 평화를 찾았고 빠른 발전을 이뤄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다. 나는 우리나라를 도운 에티오피아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작지만, 어떤 활동이든지 열심히 했다.

그런데 함께 있던 봉사단원들과 지내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몇 개 나라에서 에티오피아로 봉사하러 오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나 외에 모두 중국에서 온 단원들이었다. 짧은 영어는 가능했기에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고 서로 돕고 배려하며 잘 지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중국 단원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편한 쪽으로 행동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그런 감정이 하나둘 쌓이면서 짧은 영어 대화마저 끊어졌다. 밖에서는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즐겁게 봉사활동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센터로 돌아와서는 답답한 마음으로 지냈다.

아동보호센터에서 만난 아이들. 인형극을 보여준 뒤 퀴즈 게임을 했다. 상품으로 줄 수 있는 것이 풍선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기준이 무너졌다

하루는 지부장님이 단원들을 모은 뒤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하셨다. 중국 단원들이 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그들에게 마음을 닫고 지내면서 한 행동들이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그들의 행동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옳고 중국 단원들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피차일반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항상 ‘내 기준’이 있었다. 그 기준에 맞으면 좋은 것, 맞지 않으면 나쁜 것이라고 구분했다.

중국 단원들이 말한 내가 잘못한 행동들도 내 기준에는 맞으니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보면 나는 다 옳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듣고 나니 내가 잘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좋고 옳다고 가지고 있었던 기준이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기준이 무너졌다. 나 보기에 안 좋은 것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내 마음이 바뀌니까 모든 것이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중국 단원들에게 그 동안 불편하게 했던 내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마음을 여니까 우리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서로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돌아보니, 나는 한국에서도 내 기준 때문에 불행하게 지냈다. 회사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내 의견과 다르거나 내가 보기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의견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에게는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있’ 어서 내가 보기에 나쁜 것은 배척하며 지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집에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나는 부모님을 원망했다. 부모님이 만든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내 기준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화를 내며 따져서 마음에 상처를 드렸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다른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동안 마음에 상처를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다.

나에게 새 삶을 가져다준 해외봉사

에티오피아에는 ‘에티오피아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날짜나 시간이 국제 시간과 전혀 다르다. 2020년 5월 1일은 에티오피아 타임으로는 2012년 8월 23일이다. 시간도 6시가 12시, 12시가 6시다. 한번은 어느 초등학교에 교육 봉사를 하러 가기로 했는데 2시에 오라고 했다. 당연히 오후 2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8시에, 가기로 했던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오더니 ‘왜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처럼 시간 개념이 다르다 보니, 시간 약속을 잡을 때마다 “Is it Ethiopian time or international time?” 하고 묻는 습관이 생겼다.

이처럼 사람도 각기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옳다고 하는 바가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얼마든지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내 기준을 내려놓기로 했다. 기준을 버리고 나니 삶이 이만 저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즐겁게 봉사했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이 감사하고 행복했다. 특별히 에티오피아 지부에는 현지 아이들을 모아 결성한 축구팀 ‘꼬레아FC’가 있는데, 굿뉴스코 단원들이 아이들을 직접 훈련하기도 하고, 대회를 주최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면서 함께 운동장을 뛰다 보면 아이들과 더 친밀해지고, 친밀해지는 만큼 행복도 커진다. 전기나 물이 끊기거나 음식이 부족해 불편할 때도 있었고, 역사적인 장소 ‘랄리벨라’나 경관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게랄타’를 방문해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던 에티오피아.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와 행복! 나에게 해외봉사는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었다.


글쓴이 정명철
영상 촬영을 전공한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행복했던 순간과 아름다운 광경들을 마음뿐 아니라 카메라에도 담아왔다. 에티오피아 해외봉사가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에티오피아로 해외봉사 가야 하는 이유’라고 검색해보자. 이번호 표지를 장식한 그는 ‘아부나 예마타’라는 에티오피아의 유명 관광지에 간 적이 있었다. 이곳은 1600년 전, 고대 기독교인들이 험준한 절벽 속에 만든 교회다. 입구에 서서 밖을 바라보면, 가슴이 벅찰 만한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정명철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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