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슬픔을 만들어내는 뿌리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다면 모를까, 교도소에서 지내고 싶어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수원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서 10년 가까이 교화위원으로 활동했는데 그때 많은 재소자들을 만났습니다.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부터 사형수까지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자신만 아는 비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가는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입 다물고 지냅니다. 그러다가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면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냅니다. 제가 교화위원일 때, 수많은 재소자들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사연들을 접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 마음의 상태가 다 같더라는 겁니다. 즉, 범죄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잘만 하면 들키거나 잡히지 않으리라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잡혔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잡혀서 교도소에 수감되면 대부분 뉘우칩니다. 그런데 자신이 잘못했다고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잡혔지?’를 생각하며 뉘우칩니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캄캄한 밤에 가야 했는데 너무 밝을 때 일을 했어.’라고 하거나 ‘안 잡힐 수 있었는데 현장에 지문을 남겨서 그랬어. 그게 실수였어.’라고 후회를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때 장갑을 끼고 갔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러면 빨리 출소해서 장갑을 끼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하면 이번엔 절대로 안 잡힐 거야!’라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에서 희열이 솟아납니다. 재소자들은 교도소 안에서 이렇게 또 다시 완전 범죄를 꿈꾸는 것입니다.

교도소 수감자들 대부분은 죄를 지으려고 할 때 ‘이렇게 하면 안 잡힐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달리 잡혔습니다. 그렇다면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할 만도 한데, ‘내가 무얼 잘못해서 잡혔지?’ 하며 안 잡힐 방법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지문 때문에 잡혔다면 장갑을 끼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에 정말 장갑을 끼면 잡히지 않을까요? 얼마든지 다른 이유로 잡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안 잡힌다’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또 죄를 지으려고 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을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도 재소자들과 같은 생각의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을 잃고 있으면서도 돈을 딸 생각을 합니다. 기계에 코인을 넣고 손잡이를 당겨서 당첨이 되면 기계에서 코인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슬롯머신’이라는 도박이 있습니다. 코인들이 쏟아지는 그 소리가 짜릿한 기쁨을 주고 또 실제로 돈도 많이 딴다고 합니다. 그래서 슬롯머신을 하는 사람들은 코인이 와르르 쏟아질 것을 상상하면서 손잡이를 당깁니다. 그 아슬아슬한 순간은 기분이 아주 좋지만 대부분 허탕입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나중엔 가진 돈을 다 잃고 맙니다.

만약 슬롯머신을 하는 중간에, ‘지금까지 코인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그건 모두 내 기분이었고 실제로는 돈을 계속 잃고 있어. 이번에도 코인이 쏟아지길 바라면서 손잡이를 잡아당기겠지만 허탕일 수 있어. 그러면 지금 가진 돈까지 다 잃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하진 않습니다.

노름에 빠져 살던 어떤 사람은, 중병에 걸린 아내의 수술비를 겨우 마련해 병원으로 가지고 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바꿔 노름하는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 돈을 가지고 노름해서 돈을 더 딸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잃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돈을 잃어서 아내가 수술을 받지 못할 상황도 생각하게 되므로, 결코 그 돈으로 노름할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잃은 후에 생길 일과 겪을 고통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은 노름판으로 달려가는 겁니다.

나는 목사여서 매일 성경을 읽는데, 성경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도 그런 예입니다. 그 여자는 왜 간음을 했을까요? 이스라엘 법에 간음하다가 잡히면 돌에 맞아 죽는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간음을 했을까요? 대부분 음란한 마음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맞는 답은 아닙니다. 세상에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음란한 마음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 간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자가 간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몰래 하면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그런 생각을 믿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예상 못한 이유로 얼마든지 들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과신하면, ‘이렇게 하면 안 들킬 거야’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을 믿어버립니다.

오늘날도 사회적 지위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부도덕한 일을 저질러서 지탄을 받거나 교도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악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하다가 드러나면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위치가 무너지고, 가정이 흔들리고, 인격적으로 치명적인 오점이 남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는 들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안 들킨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은 안 들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렇다고 믿고 잘못된 길을 갑니다. 드러나서 잃을 것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데, 잃을 것들이 생각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은 죄를 지으면서 잡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도박을 해서 돈을 잃으면서도 딸 생각만 합니다.

다시 교도소에 가지 않게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죄를 지어 16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지만 여느 재소자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한 사람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출소를 몇 달 앞두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재소자들이 출소하면서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서 다른 재소자들을 위해 성자聖者처럼 살던 사람들도 다시 죄를 짓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출소할 때에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나는 손 씻었어. 여기 다시 오지 않아.”

“예, 형님. 제발 다시 오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를 왜 와? 나 정말 손 씻었다!”

그런데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다시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이 출소를 앞두고 자신도 지긋지긋한 교도소에 다시 들어올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출소하면 어떻게 지낼지 미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찾아와서 고생했다며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같이 마실 것이고, 그러면 휩쓸려 다시 어두운 길로 접어들어서 죄를 지을 것이 훤히 보였습니다.

‘잘못하면 내가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겠구나. 어떻게 해야 교도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내 힘으로는 안 되겠다. 나를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누가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자신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준 책 <나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났다>의 저자인 제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제가 대전에서 목회할 때인데, 하루는 그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곧 출소하는데 죄를 짓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 제발 자신을 이끌어 달라. 교도소에 다시 들어오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로 찾아오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얼마 후 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집에도 가지 않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바로 왔다고 했습니다. 교회 사무실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가 우리 교회에 1년 동안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다고 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화장실의 변기들을 다 닦고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그렇게 사는 게 뭐가 행복하냐?’고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교도소에 다시 들어갈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런 자신을 절대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지내는 동안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입니다.

‘야, 출소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내가 아직 교도소에 안 들어갔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는 1년 후 좋은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신학교에 들어갔고, 지금은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다니며 수많은 재소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재소자들의 마음에 행복을 심고 그들이 새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과신하는 마음을 바로잡아야

누구나 자신이 잘하면 기쁘고 만족스럽고, 잘못하면 마음이 무겁고 괴롭습니다. 자연히 잘한 일들은 마음에 간직하려고 하고, 잘못한 일들은 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에는 자신이 잘하거나 잘난 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머리가 좋아.’ ‘나는 운동을 잘해.’ ‘나는 착해.’ ‘나는 잘생겼어.’ 이처럼 좋은 것들만 기억하며 살기에 사람들은 다 자신을 믿습니다. 그런데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자신이 잘못한 것도 많고 실패한 적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이 느껴지면 ‘내가 나를 지나치게 믿고 살았구나’ 하고 자기를 과신過信하는 데에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들만 하다 보면 자신이 잘났고 옳다고 여겨 자신을 과신하게 됩니다.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박으로 돈을 잃으면서도 딸 거라는 생각에 빠지고,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잡히지 않을 거다’는 생각에 빠집니다. 그러는 동안 인생이 망가지고 가정이 깨지고 온갖 슬픈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람 마음에 음란한 마음이 든다고 간음하는 것이 아니고, 악한 생각이 올라온다고 잔인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크게 믿는 사람이 그 길을 갑니다. 우리가 살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과신하는 마음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과신에서 벗어나야 착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인생을 실패와 슬픔으로 채우는 길을 가지 않고, 밝고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글=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 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권위자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 곧 성경에서 찾은 마음의 세계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소명이라 생각한다. 마인드북 시리즈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를 비롯해 총 5권을 집필했으며, 최근엔 <마인드교육 교사를 위한 전문가 과정>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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