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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자폐아가 아닙니다민섭아빠 이야기
김주원 기자 | 승인 2020.05.18 11:17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로 인해 우리가 겪는 좌절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서가 아니라, 생각에서 이미 불가능한 문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절망에서 행복으로 변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보통 사람들처럼 문제 앞에서는 나약한 사람이지만, 먼 곳이 아닌 마음 안에서 해결의 열쇠를 찾았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우리는 오늘도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각자가 가진 마음의 세계 안에서는 기쁨을 만들고, 행복을 만들고, 슬픔을 만들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소망을 키워 나가고…. 그렇게 쉼 없이 인생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신기한 것 중에 하나가 ‘부모의 마음’이다.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되는 순간에 받는 선물이라서 ‘부모의 마음’은 십여 년의 저축으로 장만한 아파트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진다. ‘부모의 마음’이 생기면 짓이기는 피곤함에서도 ‘자녀의 입에 무엇을 넣어줄까’ 할 때마다 지친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운다는 건 가슴을 후벼 파는, 바람 잘날 없는 여정 길을 가는 것이 아닐까.

자폐아의 부모로 산다는 것

“민섭아! 안 돼!”

“아아악…아악…”

아이들이 버린 막대사탕에는 이미 까맣게 개미들이 달라붙어 있었고 아랑곳하지 않는 민섭이는 땅에서 그 사탕을 주워 입에 물었다. 민섭이 아빠는 5살 아들의 손에서 막대사탕을 빼앗았다.

“이리 내! 뱉어내.”

“아아아아…, 엉어어…아아악…”

“이 녀석아, 이건 먹는 게 아니야, 다시 사줄게.”

그래도 민섭이는 그 막대사탕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결국 아버지는 개미들을 다 털어내고 다시 민섭이 입에 사탕을 물려주었다. 고함을 멈춘 민섭이를 쳐다보는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내어 쉴 한숨도 없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보이기 싫은 눈물쯤은 참아보지만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은 참아지지 않았다.

민섭이는 아이큐 50에 자폐성 발달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아이다. 집안에서는 잘 지내다가도 밖에 나가기만 하면 갑자기 길바닥에 뒹굴고 소리를 지르고 아무거나 만지고 잡히는 대로 던지곤 했다.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 싶으면 “자폐아입니다. 장애인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고 미리 말하면서 이해를 구하기란 당연한 일상이었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찻길로 그냥 뛰어들어서 부모님은 놀란 운전자에게 허리를 굽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는 아들이 그냥 차에 치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그 생각만으로도 하루 종일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처음에는 좋은 병원을 찾아가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병원을 여러 곳 찾아다녔다.

“민섭이는 최대로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공부는 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완치된 사례가 없습니다.”

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부모님의 마음에 절망만 커질 뿐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절망 안에서도 실낱같은 기대를 찾아야 하기에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다 받아야 했다. 당시 살고 있던 강원도 양구에서 서울의 병원으로, 아침 7시에 출발하면 밤 10시나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 길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고, 온 힘을 다해보지만 몸과 마음은 심하게 지쳐갔다. 그래도 어느 병원에서 아이가 좋아졌더라 하는 말만 들리면 찾아갔다. 진료를 대기하면서 다른 아이의 부모에게 물었다.

“여기 얼마나 다니셨어요?”

“오래됐죠. 한… 8년….”

“아이가 많이 좋아지던가요?”

“우리 아이는 엄청 좋아진 편이죠. 아, 지금 나오는 애가 우리 아이예요.”

조금은 흥분되어 진찰실에서 나오는 아이를 주시하지만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낱 기대일 뿐이었다.

‘호전이 되었다는 게 저 정도라는 말인가!…’

병원을 다니다 보면 어떤 아이가 치료를 받고 호전이 되었다는 정보를 얻을 때가 있다. 하지만 확인해보면 호전의 기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런 아이들뿐이었고, 그런 아이들을 만날때마다 치료가 될 거라는 희망은 다 새어나가고 칠흑 같은 절망이 너무나 싫어 몸부림을 쳤다. 병원 오고 가기가 계속되었지만, 치료에 대한 희망은 멈추어버린 게 분명했다.

“보따리를 싸서 이민을 가야하나…. 지금이야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이 아이를 돌보나?…’

절망 안에 갇혀 버린 민섭이 아버지가 아이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민섭아, 제발 부탁인데 아빠보다 하루만 먼저 죽어다오!”

민섭이, 너 다 나았어

모든 곳을 찾아다녔지만 더 이상 기대를 둘 곳 없었던 민섭이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교회를 찾아갔다. 아이들 돌보기도 벅찬데 쓸데없는 짓 한다며 민섭이 아버지는 교회를 나가지 말라고 했다. 한동안 그 일로 민섭이네 가정은 소란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평생을 져야 하는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일 년 뒤 민섭이 아버지도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 중에 ‘열 두 해 동안 혈루증 걸린 여자가 예수님 옷 가에 손을 대니 즉시 혈루증이 그치니라.’ 하는 구절에 민섭이 아버지의 마음이 머물렀다. 불현 듯 민섭이가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유아보호실에 가서 민섭이를 데리고 목사님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얘가 민섭이입니다. 기도를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네, 기도해야지요.”

목사님이 민섭이 머리에 손을 올려 안수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자 목사님이 민섭이에게 말을 건넸다.

“민섭아, 너 다 나았어. 이거 좀 먹어봐.”

아이에게 먹을 것을 건넨 목사님은 흐뭇하게 민섭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집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민섭이 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목사님은 어떻게 민섭이가 다 나았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지? 나아질 겁니다. 괜찮아질 겁니다. 그런 말이 아니었어….’

‘다 나았다’는 이야기가 귓전에서 떠나지 않았다. ‘듣기 좋으라고 그러시네.’ 하고 지나쳐 버리거나 ‘에이, 잘못 말을 하셨나 보다.’ 하고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이야기가 어둠속에 한 가닥 빛줄기 같았을까? 생각조차 못했던 생소한 그 이야기가 마음에 떠나지 않아 아버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 나았다고 그러시는 목사님은 도대체 어떤분이시지?’

‘내가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기도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단 말이야….’

‘야…, 이 분 하나님의 종이잖아. 그럼 그 이야기는 하나님의 뜻이지 않아?’

‘말씀에도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하셨잖아…’

‘야, 하나님이 다 나았다고 하신 거네. 지금 내 눈에 장애아로 보여도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셨다면 다 나은 거 아니야?’

생각할수록 민섭이가 다 나았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새겨졌고 감사의 전율을 느꼈다.

그래, 우리 민섭이는 정상이야!

한 번은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민섭이 부모님은 실종 신고를 하고 사방팔방으로 찾다가 5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이르렀다. 어느 아파트 경비실에서 경비 아저씨와 맛있게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는 민섭이를 발견했다.

“이 녀석아! 이렇게 다니면 안 돼.”

경비 아저씨와 잘 놀고 있는 아들을 확인하면서 놀란 가슴은 쓸어내렸지만 항상 이런 소동에 대한 무거운 근심은 아버지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런다고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정상 아이처럼 키울 수 있을까?’

다 나았다고, 정상이라고 민섭이 아버지는 말은 했지만 ‘나가면 위험해. 조심시켜야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마음 안에서의 민섭이는 그대로 자폐아였다. 목사님이 ‘다 나았다’고 했을 때엔 금방이라도 정상아처럼 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전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민섭이를 정상적인 아이로 받아들여질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바로 생각에 갇혀 있는 자폐아구나! 이렇게 아이를 잘 지킬 수도 없으면서…’.

‘민섭이가 정상으로 낫길 원하는 마음과 정상이라고 믿는 건 다른 거구나.’

그동안 가득히 자리하고 있던 ‘민섭이는 자폐성 장애아’라는 생각을 뽑아내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는 민섭이를 정상적인 아이로 대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소동이 있던 그날, 민섭이 아버지는 마음에 정확한 선을 긋기로 했다.

‘하나님이 오늘도 지켜주고 있잖아. 그러면 나는 빠져야지. 민섭이가 다 나았다고 믿자! 민섭이는 정상아다. 정상아!’

그 후로 아버지는 장애아라고도, 자폐아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민섭이에게 집안일도 시키고, 심부름도 내보내고, 공부도 첫째 딸과 똑같이 시켰다. 점점 주변에서 민섭이를 정상 아이로 대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쩌다 자폐아라고 이해해 주고 배려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오히려 단호하게 선을 긋고, 민섭이에게 책임질 일을 더 주기도 했다.

마음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민섭이는 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한 해 늦은 9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일반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서 굉장히 힘들어하면서도 부모님한테 혼날까 봐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잘 적응하는 듯 했지만 5학년이 되니까 “하기 싫어” “안 해” “가기 싫어”라는 말들을 입에 달고 지냈다. 민섭이는 주의를 주면 일부러 더 하려고 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꾸중하는 일은 아버지의 일과가 되었다. 사춘기 때문인가 하다가도, 좋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괜스레 가슴이 덜컥거렸다. 그래서 민섭이의 무엇이 문제인지 목사님께 다시 여쭤보고 싶었다.

“목사님, 민섭이가 요즘 누구의 말도 안 듣고 자기 멋대로 합니다.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아이들, 그 나이엔 다 그래요, 내가 보기엔 정상인데. 그건 고집을 안 꺾어 줘서 그래요. 고집을 꺾으면 삶이 쉬워져요.”

목사님의 말을 듣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민섭이 아버지는 아이가 싫다고 버티면 그냥 놔두었다. 한편으로 자기 의견을 좀 내세우는 모습이 대견해 보여서 지나쳐버릴 때도 있었다. 민섭이 어릴 적을 생각하면 ‘자기 의견을 말한다’는 게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에 부모에게 대들어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내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장난하다 사고를 좀 쳐도 정상적인 아이로 보여서 오히려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고집을 안 꺾어 줘서 그래요.”

민섭이 아버지는 목사님 말씀을 계속 생각했다. 아내가 민섭이의 고집을 꺾어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옆에서 방해만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정상아로 믿고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들을 자폐아처럼 위하고 있었다는 모습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휴…, 내가 또 속았구나! 여전히 장애아라는 생각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구나.’

‘이렇게 키우다가는 내가 민섭이를 다 망쳐 놓겠구나!’

목사님을 만난 뒤로 민섭이 아버지는 자기 마음과의 전쟁, 민섭이 고집과의 전쟁을 시작하기로 했다. 10년이나 자라난 고집 통을 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집이 안 잡힐 때마다 ‘고집을 안 꺾어 줘서 그렇다’는 말씀을 생각했다. 한동안 아버지와 민섭이 사이에 팽팽한고집 꺾기 전쟁으로 집안이 시끌시끌했다.

“누나는 학습지 다 하고 텔레비전 보는데 너도 다 하고 보는 거야?”

“아니오.”

“그럼 방에 들어가서 다 하고 나와.”

“싫어요. 이것만 보고 할게요.”

“안 돼. 다 하고 봐.”

“이것만 보고 한다니까요. 이거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나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그러면 방송 시작하기 전에 할 일을 미리 다 했어야지. 다음 주부터는 미리 다 하고 보렴. 하지만 오늘은 안 돼. 들어가서 다 하고 나와서 봐.”

“다 하고 나오면 끝난다고요. 왜 나를 못 살게 해요. 아이, 짜증 나!”

“짜증 나도 안 돼. 당장 들어가서 하고 나와!”

“에이, 들어가면 될 거 아니에요.”

작은 것부터 싸워나갔다. 고집을 꺾으면 삶이 쉬워질 거라는 생각으로 힘을 얻었다. 싸움을 계속해 나갈수록 민섭이뿐 아니라 온 가정에 변화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섭이 부모님이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집중하다 보니, 당연히 부모의 빈자리가 컸던 첫째와 셋째 아이에게 정돈되지 않는 생활 습관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민섭이 고집과 싸워 나가는 동안, 나머지 두 아이들에게도 할 일을 미리 챙기는 변화가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섭이도 할 일을 알아서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빨래 개기와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 같은 일에 담당을 주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해나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해진 과제를 먼저 하는 습관이 잡히고, 동생이 맡은 역할을 안하면 혼도 내고, 공부도 가르쳐 주는 멋진 형의 도리를 해주려고 했다.

언제부터인지 민섭이는 ‘도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항상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학교에 영어체험센터에서 매일 영어공부를 시켜주었다. 민섭이는 영어를 아주 즐겁게 배우더니, EBS에서 주관하는 TOSEL영어 능력 시험에서 높은 등급을 받았다. 컴퓨터 수업도 받았는데, 민섭이의 놀라운 집중력을 알아 본 선생님의 권유로 EBS토셀 자격증과 컴퓨터 ITQ 자격증도 따게 되었다.

“민섭아 수영을 배워볼까?”

“네! 정말 신나요.”

민섭이는 물놀이를 좋아했다. 운동신경이 부족하고 기능을 이해하는 속도가 늦었지만, 민섭이 아버지는 ‘조금 늦을 뿐이지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수영을 시켰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니 민섭이는 각종 수영 대회에 나가 금·은·동 메달을 휩쓸어 왔다.

학생회장이 된 민섭이

“아빠, 여기 동의서에 사인을 좀 해주세요.”

“무슨 동의서인데?”

“전교 회장에 나갈 거예요.”

“야, 꿈은 커서 좋다만 전교회장은 쉬운 게 아니야.”

“그래도 도전해볼 거예요.”

“그래, 도전은 좋은 거야. 해봐”

민섭이의 말과 행동은 좀 어눌했고 그런 민섭이는 매번 학급회장 선거에 나가면서도 매번 떨어졌다. 이번에 민섭이가 전교 회장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민섭이 부모님은 떨어질 게 뻔한 걸 알았지만 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었다.

“민섭이 담임입니다. 민섭이 선거 연설문만 안 들어 왔어요.”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민섭이 아버지는 인터넷을 대충 검색해가며 민섭이의 연설문을 만들어 주었다.

“민섭아, 너 아이들 앞에 나가서 연설해야 돼.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어요.”

민섭이는 많은 것을 외운다. 영어 단어도 외우고, 일어 단어도 외우고, 심지어 전국의 고속도로 나들목과 졸음쉼터의 이름까지 외운다. 관심을 두는 분야는 민섭이 마음대로지만 외우려고 하면 모든 것을 외웠다. 그래서 이번에 아버지가 만들어 준 전교회장 연설문도 모두 외웠는데, 전교생 앞에서 연설문 한 번 보지 않고 유창하게 연설했다.

그러면서 놀라운 일이 생겼다. 동급생들이야 민섭이의 장애에 대해 알고 있지만, 저학년들은 민섭이의 장애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민섭이의 연설에 감동한 저학년한테서 몰표가 쏟아졌다. 그렇게 민섭이는 50% 이상의 득표로 당당히 전교 회장에 뽑혔다. 집에 돌아와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됐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아이의 장애 때문에 한때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긴 시간들을 보냈지만 이제 민섭이는 행복을 주는 아이로 변했다.

‘IQ 50인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이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되다니…’

‘민섭이를 장애아 보호소에 보내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면서 키웠다면 이 행복을 가질 수 있었을까?’

민섭이가 행복을 주는 아이로 자랄 수 있는 데는 아버지의 마음이 중요했다. 아버지의 마음에 절망만 가득했을 때,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가 빛줄기처럼 마음에 새어들었다.

“민섭이 다 나았어요. 민섭이는 정상입니다.”

‘저 의미가 뭐야? 말도 안 되지만 저 말이 사실이면 좋겠어. 저 말을 해주는 저분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이야기하는 걸까?’

민섭이 아버지는 이해되지 않고, 믿어지지도 않았던 목사님의 이야기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동안 마음에서 새로운 소망이 싹 트는 걸 느꼈다.

민섭이가 정상이라는 생각은 점점 커져 장애라는 생각을 덮어버렸다. 그 마음이 민섭이를 정상적인 아이와 똑같이 키울 수 있게 했다.

‘부모의 마음’만으로는 사랑하는 자녀의 고집을 이기기 쉽지가 않고, 안쓰러운 모습을 못 본체 하기에 너무 어렵다. 항상 훈계를 하면서도 결정적일 순간에는 자녀에게 지고 만다. 특히 자폐아의 부모들은 더욱 그렇다. 마음의 중심에는 ‘장애’가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 그 마음으로는 정상 아이처럼 키울 수가 없다. 하지만 정상이라 믿는 부모의 마음 안에서 자란 민섭이는 행복을 주는 아이가 되었다.

일반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

10여 년 전, ‘민섭이는 최대로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공부는 할 수 없습니다.’라는 진단을 받았었는데, 지금의 민섭이는 그 이상의 공부를 하고 있고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저도 아빠처럼 꿈과 소망이 없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도움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학습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질문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설명하고 도와주고 싶어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학교를 만들어 줄 거예요.”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민섭이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었다. 민섭이가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대학 진로를 결정한다는 건 부모님에게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민섭이가 잘 자라 준 것에 목사님의 인도가 매우 컸음을 알기에, 어느 날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어, 자네 왔는가?”

“예, 민섭이가 고3인데, 진학에 대해 상의하려고 왔습니다.”

목사님은 민섭이 얼굴을 바라보며 대뜸 말을 건넸다.

“너 영어 잘 해?”

“예. 영어 잘 해요.”

“허허허. 참 좋다. 그래, 너 대학 졸업하면 와.”

민섭이 아버지는 ‘대학 졸업하면 와’ 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에 민섭이가 정상적인 19살의 학생으로 서 있음을 보았다. 자신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민섭이를 바라볼 때, 목사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민섭이를 바라보았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아버지가 보는 것과 목사님이 보는 것은 달랐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자신의 손을 이끌어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자’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목사님이 보는 눈으로 민섭이의 대학 진로를 바라보니 크게 고민할 것이 없었다. 집과 가까운 대학 한곳을 정하고 지원했다. 그리고 민섭이는 일반 전형으로 당당하게 그 대학 영어학과에 합격하였다. 민섭이는 지금도 건강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마음 안에 있었던 행복의 열쇠

자폐성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들은 고집이 세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민섭이는 마음을 잘 바꾸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민섭이 아버지는 민섭이를 정상적인 아이처럼 대하고 키울 수 있어서 감사해한다. 요즘은 각 학급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민섭이 아버지는 그런 아이들을 만나면 “넌 이런 것을 잘하는구나! 선생님 아들은 너보다 더 심했단다.” 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민섭이 덕분에 아이들을 지도하는 특별한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또 다른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치기 불가능한 자폐성 발달장애 2급, 초등학교 4학년의 교육밖에 마칠 수 없다던 아이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민섭이의 일이 단지 기적적인 이슈로만 비치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마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이다. 암 환자의 마음은 이미 죽음에 빠져 있고, 자폐아를 둔 부모의 마음은 불치병에 빠져 있다. 그래서 암 환자는 죽음을 준비하고 자폐아의 부모님은 아이의 문제만 감싸기 바쁘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항상 절망적이고, 절망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나약한 현실이 다시 보인다. 똑같은 자리만 맴돌다가 어느 한구석에 자리를 정하고 앉아버린 듯, 그렇게 우리는 현실에 체념해 왔다.

민섭이 아버지에게 불치병이라는 생각이 온 마음을 장악해 버렸는데, ‘다 나았다’는 말이 받아들여지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나은 방법도 없었고 삶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라 그랬을까. ‘다 나았다. 정상이다’ 하는 그 이야기를 붙잡았더니 새로운 마음이 자라났다. 마음이 변하니까 민섭이를 바라보는 것도 달라지고, 정상인으로 교육을 받은 민섭이는 정상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아이로 자랐다.

민섭이 아버지는 마음의 세계 안에서 놀랍게 행복을 찾았다. 우리 모두에게도 마음의 세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라도 민섭이네처럼 마음을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마음의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든지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는 마음의 중요함을 발견해 보면 어떨까. 독자들이 이번의 계기를 통해 마음의 세계를 바라볼 눈을 가진다면 많은 문제 안에서도 행복한 삶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김주원 온마인드 단행본 팀장

김주원 기자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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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석 2020-05-19 18:17:06

    자주 민섭이 부모님의 이야기를 접합니다.
    저는 5명의 아이들(일명, 독수리5형제)을 키웁니다. 그중에 큰아들은 하나님 편으로 갔구요, 지금은 다운증후군 큰딸과 3명의 동생이 저와 제 아내의 꿈이자 소망이지요.
    일반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만난 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내 아이를 장애로 인정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고나면, 그 한계안에서 머물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요.
    저의 큰딸은 저희 부부에게는 삶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복음이 값없는 은혜이듯이, 장애를 가진 아이는 마음의 짐이 아니라 가장 큰 삶의 선물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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