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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바다로 다이빙하다!
고은비 기자 | 승인 2020.05.18 11:18

난 언제쯤 평범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우리 집 거실에는 소파도, 탁자도 없었다. 놓을 공간이 없었으니까. 화장실 바닥에는 타일도 없이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씻을 때면 찬바람이 들어와서 너무 추웠다. 집은 아늑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더 싼 월세방이 있으면 또 옮겨야 하는 임시 거처였다. 가난이 싫었고 아빠가 미웠다. 가난한 우리집에 대한 원망의 화살을 모두 아빠에게 돌렸다. 아빠 때문에 나도 엄마도 고생하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졌다

‘난 행복해져야 해!’ 누구보다도 행복을 갈망했다. 성공으로 불행했던 지난날을 보상받고 싶었다. 친구 관계도 그리 좋지 않던 학창시절, ‘명문대에 진학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공부에 유일한 희망을 두었다. 수능 성적이 아쉬워 재수를 결심했는데 독학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공부하면서 불안과 초조함에 쫓겨 정신이 피폐해졌고, 4수 끝에 들어간 건 중위권 대학이었다.

‘내 삶은 왜 이렇게 고달플까?’ 대학에 입학해서도 자괴감과 좌절감으로 늘 스스로를 괴롭혔다. 재수를 준비하던 시절에 종종 찾아갔던 선배가 ‘지금 환경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 좋겠다’고 해외봉사를 권유해 주었다.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 그곳에 가면 내 인생도 크게 달라지리라고 기대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누아투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섬의 형상과 푸른 바다, 우뚝 솟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그 풍경을 담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큰 맘 먹고 온 해외봉사였기에 최대한 많은 일을 성취하고 싶었다. 그러면 내 인생이 행복해질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해외봉사단원으로서 나는 빵점이었다. 대학교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교육하는 자리에서 벌벌 떨며 사회를 보고,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진행하는 게임의 룰을 까먹어 애를 먹었다. 나 자신이 형편없게 느껴졌다. 게다가 봉사단원 중 남자는 나뿐이라 ‘난 혼자다’라며 외롭게 느꼈다. 점점 내가 생각한 행복과 멀어지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오면 박수를 치세요.”

하루는 공공기관에서 마인드교육을 진행하는데, 나도 자리에 앉아 지부장님의 강연을 듣고 있었다. 바누아투에는 일도 안 하고 술만 마시는 무책임한 남편들이 많다. 지부장님이 그런 남편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며 말씀하셨다. ‘더 심한 잔소리를 해야 하나? 아니면 집을 나가야 될까?’ 이런저런 정답을 생각하며, 강사님의 말에 집중했다.

“여러분, 남편에게 화내고 소리지르셨죠? 등판이나 뒤통수를 때린 분들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이제 그러지 마세요. 남편이 들어오면 박수를 쳐주세요. 그러면 남편이 변할 겁니다.”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랐다. 지부장님은 가정에서 가장이 참 외롭다고 말씀하셨다. 가족들에게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하니까 더 좌절하고, 면목이 없으니까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고. 그런 가장들을 무시하고 구박하면 더 설 곳이 없어서 비뚤어지고 가정이 결국 틀어진다고 하셨다. 남편이 들어오면 박수를 치라는 건 ‘난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최고의 남편입니다. 우리 집에서 당신은 없어선 안될 존재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박수를 받은 남편은 얼떨떨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될 텐데, 그러면 그 행복과 고마움이 남편을 변화시킨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저런 남편들에게도 박수를 치라고 하는데, 나는 아빠를 향해 박수를 친 적이 있었을까?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안아드린 적이 있었나? 늘 아빠를 원망하고, 아빠가 잘못했다며 엄마 편만 들었는데…. 아빠가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혼자서 외롭고 힘들진 않으셨을까? 내가 바누아투에서 실수하고 일을 망쳤을 때 느꼈던 좌절감, 혼자 있으면서 느꼈던 외로움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아빠는 더 힘드셨겠지?’ 먼 섬나라에 와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날 저녁, 아버지께 메신저로 연락을 드렸다.

“아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연락드려요. 이곳에서 저 빼고 다 여자 단원들인데다가, 제가 잘못한 게 많아 기도 못 펴겠고…. ‘여기에 내 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빠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동안 우리 가정에서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빠가 내 인생에 대해 잔소리처럼 하는 이야기들, 조언들을 마음속에서 무시하고 살았는데 그게 다 사랑에서 비롯된 걸 이젠 알겠어요….”

“승완아, 고맙다. 나도 너를 이해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빠, 죄송하고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처음으로 아빠의 마음이 내게 와 닿았다. 섬나라 바누아투에 있는 동안 아빠와 나는 아주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어느 때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행복의 조건

하루는 초등학교로 마인드 캠프를 하러 갔다. 바닷가 옆에 있는 작은 마을인 이곳은 유독 낙후지역이었다. 집이 좁아 한 가족이 한 집에서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밖에서 밤을 새고 낮잠으로 대신하곤 하는 곳이다.

우리가 준비한 마인드 캠프는 사실 소소한 것이었다. 간단한 레크리에이션과 공연, 강연, 노래 배우기. 그런데 참석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캠프는 3일 동안 했지만, 이후 우리가 그 마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줬다. 더 감동적인 것은 내가 가르쳐주었던 한국의 만화영화 주제곡을 외우고 있다가 내가 지나갈 때면 목이 터져라 열창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 있어요~ 다시 만나요~♬”

커다란 눈을 가진 바누아투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를 때면 행복에 겨워 코끝이 찡해질 지경이었다.

한 초등학교에서 마인드 캠프를 했을 때 빵 400개를 후원받았다. 빵 하나에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덩달아 기뻤다.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불행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싶었다.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외봉사를 하는 동안 알게 된 행복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바누아투의 어린이들은 가족이 함께 잘 집이 없어도, 빵 하나에 기뻐하고 우리가 가르쳐준 노래에 행복해했다. 얼굴은 늘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내가 바누아투에서 보낸 삶은 결코 한국보다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을 보는 눈이 생기자 행복의 조건이 여기저기 넘쳐났다. 힘들 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부장님이 함께 계셨고, 현지 친구들은 늘 부족하고 허점 많은 날 도와주었다. 또 무전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없는 형편에서 먹을 것들을 내주었다.

흐렸던 내 시야가 해외봉사 1년 동안 정화되었다. 마치 바누아투의 투명한 바다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이제는 알고 있다. 내 마음에서 감사와 행복을 느끼면 삶은 그대로 따라온다는 것을! 세상살이가 쉽지 않아 마음이 또다시 혼탁해질 수 있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시 바누아투의 푸른 바다를 기억할 것이다. 그럼 내 마음이 다시 행복의 바다에 풍덩 빠질 테니까.

글=강승완(굿뉴스코 바누아투 단원)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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