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을 시대 배경으로 한 <리디아의 정원>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도 일부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 그림책이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디아 그레이스 핀치’. 아버지가 오랫동안 실직 상태이고 엄마도 옷을 만드는 일거리가 없어서, 경제사정이 좋아질 때까지 리디아는 도시에서 빵집을 하는 외삼촌 집에 맡겨져야 한다. 가족들은 헤어져 살아야 할 생각에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젖는다.

하지만 리디아의 가족은 뭔가 다르다. 슬픔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리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절망의 순간에도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리디아의 엄마가 갑자기 어린 시절 외삼촌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다 같이 웃음으로 슬픈 상황을 벗어난다. 리디아에게도 집 떠나는 것이 두렵고 슬픈 일이지만 가족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리디아는 외삼촌에게 편지를 쓴다.

“저는 작아도 힘은 세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거들어 드릴게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을 살피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리디아는 외삼촌 집으로 가서 일 년 정도 함께 지내면서 한 번도 웃지 않던 외삼촌 마음에 결국 행복의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이야기 전체가 편지글로 되어 있어서 리디아의 진솔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집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리디아는 조금 전 헤어진 가족에게 편지를 쓴다. 아빠나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엄마가 입던 옷을 고쳐 만든 것이라 무척 예쁘다고 하면서 엄마가 자기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마침내 외삼촌 집에 도착한 리디아는 웃을 줄 모르는 외삼촌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조금씩 전달한다. 한 번도 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외삼촌에게 긴 자작시를 적어주고 외삼촌은 큰 소리로 그 시를 읽는다. 미간에 주름까지 잡으며 진지하게 읽는 외삼촌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외삼촌은 그 시를 적은 종이를 주머니에 넣어둔다. 리디아는 빵집에서 함께 일하는 에드 아저씨와 엠마 아주머니에게 빵 만들기를 배우고 그 대신에 라틴어 꽃 이름을 가르쳐드린다. 이제 리디아에게 외삼촌 집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마음에 따라 달라 보인다. 어두침침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무표정한 외삼촌과 살게 되었지만 리디아의 눈은 남다르다. 금방 꽃씨를 뿌릴 화분부터 찾아낸다. 마치 그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떨린다며 부모님과 할머니께 편지를 쓴다.

“이 동네에는 집집마다 창 밖에 화분이 있어요!

마치 화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제 봄이 오기만 기다릴 거예요.

할머니, 앞으로 제가 지내며 일할 이 골목에 빛이 내리비치고 있습니다.”

깨진 컵, 낡은 케이크팬도 리디아를 만나면 꽃씨 심을 화분이 되고, 폐허처럼 쓸모없던 옥상은 삼촌이 함박웃음을 지을 비밀 장소로 변해간다. 무채색 도시에 할머니가 보내준 꽃씨를 심기 시작하는 리디아. 4월에 단비가 내리면 5월엔 꽃이 만발할 거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새싹들이 하나둘 꽃을 피우기 시작하자 동네 사람들이 꽃을 보러 모여든다. 사람들은 리디아의 꽃들을 보며 텅 빈 마음속에 꿈과 희망을 다시 심는다.

 

한편 리디아가 외삼촌을 위해 준비한 비밀 프로젝트는 빵집 옥상을 예쁜 꽃과 화초들로 가득 채우는 일. 잘 웃지 않는 외삼촌에게 행복한 웃음을 안겨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청소하고 빵 만들고 학교 가기도 힘겨울 텐데….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미는, 작지만 힘이 센 리디아, 그 긍정의 원천은 무엇일까? 리디아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엄마가 보고 싶고 가족을 만날 수 없어도 마음으로는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몸은 떨어져 있어도 슬프지 않다. 리디아는 날마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꽃씨를 보내줘서 감사하고, 집에서 오는 편지를 받을 때 행복하고, 비밀 장소를 꾸미면서 신이 나고…. 그래서 리디아는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요.”라고 편지에 쓴다. 집 떠나 더부살이하는 아이의 마음이 결코 아니다. 이런 리디아의 마음이 외삼촌에게 전달되고 가게는 빵을 사러 온 손님들로 꽉 찬다. “엄마 아빠 할머니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아름다움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라며 리디아는 자신의 행복한 마음이 가족들에게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예쁜 꽃과 화초들은 그 씨앗이 리디아의 집에서 소포로 보내온 것들이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마음이 흐르면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리디아는 “집에서 오는 편지를 받을 때마다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도 더 자주 편지를 쓰도록 할게요.”라고 하면서 편지로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며 새 힘을 얻는다.

가족과 연결된 리디아의 마음이 외삼촌에게, 이웃 사람들에게 흘러간다. 엠마 아주머니가 리디아를 도와주고 이웃은 꽃 심을 큰 그릇과 화초를 가져온다. 삼촌의 마음도 이미 변화가 시작되어, 조카 리디아를 위해 꽃으로 뒤덮인 케이크를 남몰래 만들고 있었다. 폐허였던 옥상처럼 전혀 웃지 않던 외삼촌의 얼굴이 리디아의 마음과 연결되면서 천 번의 웃음꽃을 품은 케이크로 피어난 것이다.

우리 마음의 정원은 어떤가? 어떤 꽃씨를 뿌리고 있나? 우리 마음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나? 인생은 거친 바다 같아서 풍랑이 일고 파도가 친다. 살다보면 가족간에 갈등도 생기고 힘든 일이 찾아온다. 몸은 함께 살지만 마음이 멀고 서로 흐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부해라” “잘해라” “성공해라” 가족을 위하는 소리 같지만, 부담을 주고 상처를 주고 마음을 닫게 할 때가 많다. 뭐든 잘하라고 하니까 아이들은 나쁜 것은 숨기고 좋은 것만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잘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아이들은 잘못한 일을 말할 수 없게 된다. 실패하고 힘들 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럴 때에 가족 간에 속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힘들었지? 엄마도 실패하고 잘못할 때가 많았어. 괜찮아, 그래야 다른 사람들 어려움도 알 수 있는 거야.” 이렇게 마음을 만져줄 때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무슨 말이든 가족들에게 할 수 있다. 정말 어려울 때 가족과 소통할 수 있고 리디아처럼 꽃씨도 뿌릴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마음을 표현하거나 나누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각기 자기 방에서 따로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 너무들 바쁘다. 가족끼리 함께 밥을 먹어도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SNS로 대화하고…. 상대의 마음을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용건만 줄임말로 쉽게 주고받는다. 마음을 나눌 필요가 없다. 심지어 아이들이 친구들과 싸우면 엄마들이 해결해주는 경우도 종종 본다. 이웃 간에 큰 분쟁이 생기면 변호사에게 맡겨 처리한다.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볼 시간이 없다. 상대방과 부딪힐 기회를 만들지 않으니 화해하거나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다. 서로 마음이 끊겨져 있으니 무덤덤해진다. 풍요 속에 마음은 한없이 약하고 빈곤해진 것이다.

가정의 달이다. 리디아의 정원에 꽃씨가 한껏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잔소리 대신에 가족이 함박 웃을 굉장한 계획,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며보면 어떨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리디아처럼 먼저 한 장의 편지에 마음을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갈등이 있어도 먼저 마음을 열고 표현하고 조율해보자. “괜찮아. 나도 그랬어.” 이렇게 가족의 마음과 연결되면 리디아처럼 작지만 우리는 힘이 센 사람이 된다. 그럼 우리도 리디아처럼 소망의 꽃씨를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껏 뿌리는 풍성한 5월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쓴이 심문자 님은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리디아의 정원> 데이비드 스몰과 사라 스튜어트 부부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이 책(원제 The Gardener)은 불황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1997년에 초판을 발행했고 1998년 칼데콧 아너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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