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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 마인드칼럼] 내 마음에 있는 아버지
박옥수 | 승인 2020.05.04 15:57

몇 해 전 늦은 봄,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가 참외 농사에 대해 이야기해주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세상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술도 마시고 도박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에게 술과 도박을 멀리하고 신앙을 가지라고 권했지만 아들은 일부러 거역하며 방탕하게 지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얼마 전, 아버지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수님이 자기처럼 나쁜 인간을 위해 대신 죽어주셨다’는 사실이 좋아서 믿음의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아버지가 하시던 참외 농사를 이어받았다. 자신을 바로잡아 주려고 애쓰신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깊이 간직한 채 참외 농사에 마음을 쏟았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고 멋대로 살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발견한 뒤로는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아버지를 향한 고마움을 마음에 채우고 살다 보니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사고하는 깊이가 달라졌다. 툭툭 내뱉던 말이나 함부로 하던 행동이 사라지고 한 부분 한 부분 깊이 생각하면서 참외 농사를 지었다.

참외 농사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뿌리와 줄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참외는 뿌리와 줄기가 약하고 호박은 튼튼하기에, 참외 순을 호박 줄기에 접붙여 호박의 뿌리와 줄기를 통해 참외 열매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법을 쓴다. 이 사람은 그런 지혜 외에도 생각을 깊이 해서 지혜롭게 농사를 지었다. 겨울이 여느 겨울보다 무척 추웠던 해가 있었다. 그는 참외가 얼지 않도록 추위를 이기는 비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비료를 개발했다. 그해 겨울에 다른 밭의 참외들은 다 얼었는데 그의 농장 참외들은 싱싱했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당신 밭의 참외는 어떻게 얼지 않고 싱싱합니까?”

“올 겨울이 유난히 춥다고 하기에 추위를 이기는 비료를 주었지요.”

“아니, 추위를 이기는 비료가 있습니까?”

“있지요. 생각해 보세요. 아프리카 같은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지만, 추운 러시아나 중국의 북방 사람들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잖아요. 왜 그러겠어요? 돼지기름이나 비계가 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렇지요. 참외한테 돼지비계를 비료로 주었더니 추위를 잘 견디네요.”

사람들은 그의 지혜에 자주 놀랐다.

성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외 농사를 짓지만, 이 사람이 재배한 참외는 상품 가치가 아주 높아 수확하자마자 일류 백화점에서 서로 사가려고 한다. 이 사람의 참외 농장에는 교실로 쓰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참외 농사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농사법을 무료로 가르쳐준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한번은 귀농해서 참외 농사에 손댔다가 망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 배워갔다. 그 사람이 배운 대로 농사를 지었더니 좋은 참외 수확이 많아져 요즘은 귀농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며 산다고 한다. 이처럼 그의 도움을 받아 삶이 달라지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그 소식을 접한 군수님도 그의 농장에 찾아와서 그를 칭찬했고, 그가 성주 신문에 기고한 참외 농사법에 대한 글들도 지혜가 돋보여 인기 칼럼이 되었다.

그는 오늘도 자기에게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킬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내 마음은 내가 못 지켜요. 그러니까 나를 믿지 말고, 지혜를 받아들여야 해요.”

마음이 겸비한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듣기에 자연히 사고가 깊어지고 삶이 달라진다. 이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안 후 마음이 겸비해져서 모든 데에서 지혜를 얻는 마음이 발달되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인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마음이 더욱 겸비해져서 더 지혜롭게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평범해 보이는 농부지만,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지혜로 성주 참외의 품질 향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고하며 사는 삶을 내게 보여주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내 아들이 태어난 해인 1974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나이가 일흔이셨는데, 위궤양으로 굉장히 고생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에 좋은 위궤양 약들이 많이 나와 ‘이약이 조금만 일찍 나왔다면 아버지가 좀 편하실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마음이 많이 섭섭했다.

아버지는 5형제 중 맏이였다. 바로 아래 동생은 일본에 징용을 가서 전쟁이 끝나고는 히로시마 근교에서 자리를 잡고 살았고, 셋째와 넷째 동생은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했다. 전쟁터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전사한 줄로 알지, 아무 소식도 없었다. 아버지는 동생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셨다. 그런데 막내 동생마저 6·25전쟁 때 전사했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동생을 셋이나 잃었기에 얼굴에 늘 근심이 담겨 있고 슬픔이 서려 있었다. 그 슬픔을 나눌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도 대충 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셨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다 피난을 가는데 아버지는 피난을 가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아버지, 우리는 왜 피난을 안 가요?”

“글쎄다. 대구와 서울 가는 길은 알지만 그곳은 인민군이 점령했고, 나머지 지방의 지리는 전혀 모르고 지도도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피난민들과 같이 가면 총이나 대포 맞기도 좋고, 잠자고 음식 먹는 것도 힘들고 물 마시기도 어려울 것이니 거기에는 같이 가고 싶지 않구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니 인민군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낙동강을 건너야 하는데, 국군이 낙동강을 최후방어선으로 삼아 인민군을 저지하려고 이미 교전이 시작되어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원치 않았지만 우리는 인민군 점령 지역에 머물게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마을에 있는 향교로 데리고 가셨다. 나는 마루 밑에 들어가 있었다. 국군이 쏜 대포가 날아와 향교 축대를 ‘펑’ 하고 때렸는데,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너무 겁이 나서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아버지가 나를 업고 낙동강을 따라 반대편으로 올라가고 계셨다. 피난민들이 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신 것이다. 어둑어둑한 새벽이었는데, 강가에는 피난 가다가 죽은 시체도 많았고, 피난민들이 버린 음식과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들어가니까 아주 평온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지혜로 우리 가족은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고 피난생활을 마쳤다.

집에 돌아온 뒤, 1951년 8월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우리는 너무 어렸고, 어머니의 죽음은 아버지를 더욱 슬프게 했다. 한달 만에 큰형님이 군대에 갔고, 아버지는 탄약 나르는 일을 하느라 집에 계시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었던 큰누님이 집에서 제일 어른이 되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서 있었다.

세월이 지난 뒤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가 나에게 많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생각하며 사는 삶을 자주 보여주셨다. 덕분에 나도 마음의 세계를 깊이 생각해갈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사고한다는 것이 마치 허공을 헤매는 것 같은 일이 되기 쉬운데, 성경에서 마음의 세계를 정확히 알 수 있어서 놀라웠다.

기쁨도 슬픔도 마음 안에서 만들어진다. 마음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을 느끼기도 한다. 좋은 집이나 차를 가져 기뻐할 수 있지만, 그런 기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기에 조건과 상관없이 마음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정말 귀중하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이 기뻐하고 싶으면 마음에서 먼저 그렇게 작동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나보다 네 살 어린 막내는 네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자라선지 몸이 허약했다. 하지만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갈 돈은 없었다. 선산에 병원이 유일하게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의사가 사는 집을 찾아가셨다. 당시에는 의사도 초가집에 살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다. 아버지가 그 집을 둘러보니 변소에 인분이 거의 차있었다. 의사는 그런 일을 처리할 줄 모른다.

농부인 아버지가 인분을 다 퍼서 화장실을 깨끗하게 정돈해 주셨다. 저녁에 의사가 집에 와서 변소를 보고는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 변소를 누가 치웠어?”

“이문동 박 씨, 그분이 와서 치웠어요.”

“그분이 왜?”

“글쎄요, 고맙게도 그렇게 해주었네요.”

며칠 후에는 아버지가 지게에 새 짚단을 잔뜩 지고 의사 집을 찾아가셨다. 그 집 마당에 짚단을 내려놓고 이엉을 새로 엮으셨다. 아버지는 지붕의 낡은 이엉을 걷어내고, 새 이엉으로 덮어주셨다. 이엉들을 새끼로 묶고, 짚 끝을 정갈하게 깎아서 지붕을 깔끔하게 정돈해 준 아버지에게 의사는 굉장히 고마워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의사와 친해졌고, 돈이 없더라도 의사는 고마운 마음으로 내 동생을 치료해주었다. 동생은 중이염과 천식 등을 앓았는데, 언제든지 찾아가면 바로 치료해주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어렵거나 부끄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우리가 잘되는 것을 보면 기뻐하셨다. 지금 내 나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많은데,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그립고 아버지에게 배우고 싶다. 항상 깊이 생각하시고 당신을 위하기보다 자식을 위하시던 아버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내 마음에 새겨진다.

나는 어렸을 때 생각이 깊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에 있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 마음에 있는 고통을 나도 느꼈으면 그 아픔을 함께 나누었을 텐데, 표면적인 일에만 마음이 젖어 있었다. 돌아보면, 그렇게 산 시간들이 몹시 안타깝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쁘고 감사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일제 강점기에 일어났던 일들도 이야기해주시고, 땅을 샀을 때의 기쁨도 이야기 해주셨다. 그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일어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위궤양이 심해서 위출혈로 고통을 겪으셨다. 형님이 아버지를 모셨는데, 형님이 일본에 가시면서 우리 집으로 오셨다. 좁고 불편한 우리 집에서 6개월 정도 계시던 중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어느 날, 아버지와 진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가 부르셔서 아내와 함께 아버지가 거하시던 방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려고 일어나시다가 갑자기 ‘웩’ 하고 피를 토하셨다. 위 출혈로 위 안에 고여 있었던 피를 토하셨던 것이다. ‘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에 있던 아버지와 나와 아내, 세 사람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피를 다 닦은 후 아버지를 새 요에 뉘어드렸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그래, 괜찮다.”

“만일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가 기억날 때 아버지 음성을 듣고 싶어서 녹음 장치를 했습니다. 아버지, 저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십시오.”

“잘했다. 안 그래도 내가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버지는 당신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들을 한 시간 가량 담담히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 마음 안에 있는 자식을 위하는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는 순간에 아들인 내가 곁에 있어서 행복했고, 아버지의 마음을 분명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가 말씀을 마치시고 내가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장지葬地를 준비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영혼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내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무슨 공로가 있어야 가지.”

아버지는 한숨을 쉬셨다. 내가 거기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목사였다는 것이 감사했다.

하늘나라는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값 없이 가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두 시간에 걸쳐서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예수님이나 신앙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죽음 앞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나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우리 곁에 3일을 기쁨 속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지만, 내 마음에는 아버지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내 아들에게 내가 그렇게 기억되길 바란다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 실제 아버지는 있지만, 자기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다투고, 아버지에게 분노하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얻을 수 있는 평안과 기쁨을 내 마음에 가득 남겨주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재산이나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주시지 않았지만 아들의 마음에 깊은 평안을 주셨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넣어주시고 먼저 가셨다. 나도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지만, 내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고 내 딸에게 그런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사람들이 모두 마음에서 오래오래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아버지를 기억할 때마다 아버지의 사랑이 마음에 행복을 더해주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좋다.

글=박옥수
국제청소년연합 설립자이며 목사, 청소년 문제 전문가, 마인드교육 권위자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길, 곧 성경에서 찾은 마음의 세계를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마인드북 시리즈로 <나를 끌고 가는 너는 누구냐> <마음을 파는 백화점> <내 안에 있는 나 아닌 나> <마음밭에 서서> <내가 왜 그랬을까> 등 5권을 집필했으며, 최근엔 <마인드교육 교사를 위한 전문가 과정>을 출간했다.

박옥수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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