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기생충’과 비견되는 작품?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것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샘하듯 이런 말을 했다. “아카데미 수상작이 한국 영화다.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그러면서 미국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훌륭한 영화가 많은데 왜 미국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하지 못했냐며 자못 아쉬워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도대체 어떠한 영화이기에 대통령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호평을 얻은 것일까?

노예제도로 갈라졌던 미국의 남과 북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작가 마가렛 미첼의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원작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860년대 미국을 두 동강으로 갈라놓았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미국은 노예제도로 인해 극심한 대립을 겪고 있었다. 상공업 중심의 북부는 노예가 필요하지 않았던 반면 면화를 중심으로 한 농업 지역이 많았던 남부는 값싼 다량의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 남부는 아프리카에서 많은 노예들을 들여와 그들로 하여금 밭을 개간하고 막대한 양의 면화를 재배하게 하여 부를 축적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북부는 ‘노예제도는 비인간적이고 마땅히 사라져야 할 제도’라며 남부인들을 자극했다. 노예는 남부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생계의 수단이기에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북부인들은 남부인들의 눈에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이 극심한 대립의 한가운데서 소설은 시작된다.

깜찍한 애교와 미모의 소유자, 스칼렛 오하라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노예주인 남부 조지아 주의 평화로운 시골 마을 타라다. 주인공의 이름은 스칼렛 오하라. 아일랜드 이민 2세인 그녀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하면 언제든지 노예들이 필요한 것을 마련해주었고,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손에 넣었다. 특히, 그녀에겐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깜찍한 애교와 반반한 외모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그녀에게 한 번이라도 이성으로서 매력을 느끼지 않았던 남자가 한 명도 없었을 정도로 그녀는 그런 쪽에는 탁월했다. 그녀의 어항에는 수많은 남자들이 미끼를 물려는 물고기처럼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헛된 희망을 쫓으며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발랑 까진 눈웃음을 쳐도 넘어오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애슐리 윌크스였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라도 애슐리도 자신이 관리하는 어장에 넣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애슐리와 스칼렛

애슐리 윌크스와 스칼렛 오하라, 그들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애슐리 윌크스는 차분하며 독서와 사색을 좋아했고, 스칼렛 오하라는 다혈질이고 모험을 좋아하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스칼렛 오하라는 애슐리 윌크스를 몇 년간 짝사랑했고, 한번은 그에게 작심하고 구애의 손길을 내밀지만 애석하게도 애슐리 윌크스는 멜라니 해밀턴이라는 여자와 결혼한다.

애슐리가 스칼렛 오하라에게 약혼자 멜라니를 소개하는 장면.
애슐리가 스칼렛 오하라에게 약혼자 멜라니를 소개하는 장면.

엄연히 한 여자의 남편이 된 애슐리 윌크스를 이상하게도 스칼렛 오하라는 오히려 더욱 마음에 품는다. 심지어 스칼렛은 애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의 아내 멜라니의 동생 찰리 해밀턴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꼬드겨 시집을 갔고, 원하지도 않았던 애도 갖는다. 그러던 중 남북전쟁이 발발해 그들이 누렸던 평화로운 일상은 단번에 산산조각이 난다. 남자들은 군대에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갔고, 애슐리와 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칼렛의 남편인 찰리는 입대하고 얼마 안 되어 전사가 아닌 병을 얻어 죽는다. 한순간에 미망인이 된 스칼렛 오하라. 자신이 사랑하는 애슐리 윌크스의 아내이자 자신의 시누이인 멜라니 해밀턴과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며, 그들이 전쟁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1600페이지나 되는 책의 방대한 분량을 차지한다.

스칼렛의 둘도 없는 친구, 레트 버틀러

소설에는 스칼렛 오하라, 애슐리 윌크스, 멜라니 해밀턴 외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드라마에도 주연이 아닌 것 같은 인물이 알고 보면 주연인 경우가 더러 있듯이 이 소설에도 그런 인물이 있다. 바로 레트 버틀러이다. 그는 남부 사람이자 영국 등 유럽을 오가며 거래하는 무역상이었다. 그는 남부가 전쟁에서 이기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도박과 술집 운영 등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남부 사람들은 그를 돈만 밝히는 양키와 다를 바 없다며 미워했다.

레트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애슐리와 스칼렛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관계를 이용해 그는 스칼렛에게 은근히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는 스칼렛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는 공방전이 치열했던 애틀랜타에서 스칼렛과 멜라니가 탈출할 수 있도록 말과 마차를 구해주고, 애틀랜타가 재건됐을 때에는 스칼렛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끔 돈을 융자해주기도 한다. 둘은 은근히 비슷한 면이 많았다. 돈을 밝히길 좋아했고, 실리를 따졌으며, 패전 후에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고 과거의 삶을 동경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남부인들을 경멸했다.

사랑스러운 스칼렛 오하라를 바라보고 있는 레트 버틀러.
사랑스러운 스칼렛 오하라를 바라보고 있는 레트 버틀러.

비록 서로 직설적인 성격에 티격태격 다투기도 했지만 둘은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가 된다. 나아가 스칼렛의 꾸밈없이 솔직하고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진취적인 모습에 반해 레트는 그녀에게 청혼하기에 이른다.

마음의 신기루를 쫓아간 스칼렛

레트와의 달콤했던 신혼생활도 잠시,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애슐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애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애슐리에 대한 집착을 낭만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애슐리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동안 그녀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애슐리와 잘되리라는 근거도 없는 생각에 빠져 남편인 레트에게 “다시는 당신의 아기를 낳지 않겠어요.”라고 남편의 자존심을 무참히 긁어놓는가 하면, 그녀가 전 남편들에게서 낳았던 자식들의 마음도 모조리 잃는다. 드디어 스칼렛은 애슐리와 단둘이 있을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고, 애슐리와 자신의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서로 포옹한 채 입을 맞췄다. 짜릿했던 불륜의 순간은 그녀를 시기하는 무리에게 발각돼 모두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만다.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나들며 그녀를 자기 몸처럼 아껴줬던 시누이 멜라니와 애슐리, 그리고 그녀의 남편 레트에게까지. 애슐리를 언젠가는 자기 손에 넣으리라는 욕망의 신기루를 따라가다 큰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녀가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애슐리를 단순히 욕망의 충족 수단으로 여겼고, 진심으로 충고해주는 남편 레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슐리와의 불미스런 일이 있은 직후 레트는 말한다. “우린 두 사람 다 불한당이고, 스칼렛,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우리를 막아내지 못해. 나는 당신을 사랑했고, 애슐리로서는 절대로 당신을 그렇게까지 깊이 파악하질 못했겠지만, 내가 당신을 뼛속까지 훤히 알았기 때문에 우린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몰라.” 스칼렛은 남편이 진실을 이야기해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애슐리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을 뿐이었다. 만약 스칼렛이 레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레트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임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녀와 레트와의 사이에서 생겨난 예쁜 딸아이도 죽지 않았을거니와, 어쩌면 그녀의 사업을 더 확장해 애틀랜타에서 제일가는 여성 사업가로 성장했으리라. 그렇다. 스칼렛은 자신을 끔찍이도 아끼는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다른 어느 부부들보다 훨씬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을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들

붉은 석양 아래 함께 하고 있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뮤지컬 포스터로 가장 많이 쓰이는 명장면이다.
붉은 석양 아래 함께 하고 있는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뮤지컬 포스터로 가장 많이 쓰이는 명장면이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에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기대와 이상을 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 실체가 자신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지는 스칼렛의 사례처럼 그 자신조차도 모른다. 스칼렛에게 애슐리는 허상 그 자체였으며, 그 허상은 스칼렛의 마음에 아무런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헛된 것들을 깨우쳐 줄 수 있는 레트와 같은 사람들, 나를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우리는 응당 그런 사람들의 말을 믿고 마음에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우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들에 대해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스칼렛의 모습과 같진 않을까. 항상 불던 바람이 예전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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