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경험이 내게 가르쳐준 것

저는 유독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에 젬병이었습니다. 특히 신입생 때는 고학년이 될수록 사람들과 함께해야하는 과제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죠. ‘나보고 고집이 세다는데, 나만 그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답답함에 몸부림치며 1학년을 보내던 저는 변하고 싶어, 아프리카 ‘잠비아’로 해외봉사를 떠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특히 매주 목요일, 토요일에는 아카데미 수업을 진행했어요. 제가 맡은 수업은 ‘태권도’였습니다. 어릴 적 태권도를 잠시 배운 실력이 다였기에, 수업하기 전에 꼼꼼히 책을 보며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태권도 아카데미 수업. 순수한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태권도 아카데미 수업. 순수한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발가락은 안쪽으로 접고... 오케이 45도!’

‘옆차기는 무릎을 들어서...’

수업 분위기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학생들은 저를 마치 ‘이소룡’인 것 마냥 깍듯이 대해주었거든요. 아이들이 “마스터, 마스터!”하고 저를 불렀죠. 그런데 참가생 중 ‘로저스’라는 학생이 맨날 지각을 했습니다. 장난기가 많은 친구라, 주의를 줘도 웃어넘기기 일쑤였어요. 하루는 로저스가 한 시간 넘게 지각을 했습니다. ‘이번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 왜 이렇게 늦었어! 너 때문에 수업이 안 돼. 계속 이런식으로 할 거면 너 수업 오지마.”그러자 로저스가 약간 울먹거리면서 말했어요.

“집이 이사를 가서 조금 빠듯해요. 그리고 동생들 밥도 해주고 와야 됐어요.”

마음이 조금 약해졌습니다.

“뭐? 이사? 어디로 이사 갔는데?”

로져스가 현지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리쿠카 쿠 치뭬뭬.(치뭬뭬로 이사갔어요)”

그 말을 듣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왜냐하면 ‘치뭬뭬’는 저희 센터와 걸어서 3시간 떨어진 곳이었거든요.

로저스는 버스비가 없어서 하루에 6시간을 걸어 다닌 겁니다. 저의 허접한 태권도를 배우려고 말이죠. 망치로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고맙기도 하고…. 그 날 제 일기장엔 이런 글이 쓰여졌습니다.

“항상 기억하자, I could be wrong!(내가 틀릴 수도 있다!)”

앞 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정인호 씨. 편협했던 기준을 내려 놓자, 잠비아에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앞 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정인호 씨. 편협했던 기준을 내려 놓자, 잠비아에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청소하는 법, 씻는 법, 밥 먹는 방법 등 사소한 것부터 언어, 생활환경까지 모든 것이 달랐던 잠비아. 그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선, 한국인의 기준도, 정인호라는 사람의 기준도 잠시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진정한 아프리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의 진짜 점수는?

그로부터 1년 후, 저는 입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에서, 과거에 했던 고민을 되풀이 하고 있었어요. 군대에서 맞이한 단체 활동, 특히 단체 생활은 여전히 힘들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동료들의 습관 하나 하나가 ‘눈엣가시’처럼 거슬리기 시작했고, 한껏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특히, 저랑 같은 생활관을 쓰는 A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늘 말을 퉁명스럽게 하고 빨래를 쌓아두고, 쩝쩝거리며 식사를 하는 등 제가 싫어하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 친구를 보며 ‘저 친구는 왜 저럴까 ’생각했어요.

그때 ‘소통’에 관한 책을 읽다 ‘나의 진짜 점수 매기기’에 대한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100점을 기준으로, 자신이 가진 단점의 값을 빼며 값을 매기는 것이었어요. 저도 얼른 제 점수를 매겨보았습니다.

200: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간 최종 결승 무대. 떨리긴 했지만, 즐거운 도전이었다.
200: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간 최종 결승 무대. 떨리긴 했지만, 즐거운 도전이었다.

제가 매긴 제 점수는 85점이었어요. 하지만. 제 동기들에게 물어본 제 점수는 달랐습니다. 불과 ‘60점’이었죠. 그래도 전 제가 크게 모난 구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생각한 점수랑 너무 다르더군요. 제가 모르는 단점들도 많았고요. 섭섭한 마음도 들었어요. 자신에게 점수를 매겨보라던 그 책의 결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객관적인 점수보다, 스스로에게 훨씬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거나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힘들어지게 되죠. 반대로, 객관적인 점수보다 자신에게 더 낮은 점수를 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며, 배우려는 자세를 갖기에 누구와 만나도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결말을 한참 읽은 후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85점이 아닌 100점으로 생각했구나. 사실, 60점인데 내가 100점짜리 답안이라 생각했기에 늘 (불편하고)부딪힐 수밖에 없었구나.’ 사실, 사람의 단점이 얼마나 많으냐, 60점이냐 85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죠. 제가 정말 85점으로라도 생각했다면 15점만큼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을 테니까요. 저는 제 객관적인 점수를 알게 된 그날, 형편없는 점수에 슬퍼하기 보단,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얻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만남이 두렵지 않다

며칠 뒤, 우연히 A라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물론, 무시하기보단 부탁하는 태도로 불편했던 점들을 말했지요. 늘 퉁명스럽게 말하는 동료라 말싸움을 우려했던 제 생각과 정말 달랐어요. 제 이야기를 들은 A가 ‘미안해.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라는 첫마디와 함께 입을 열었습니다. 알고 보니, 화목하지 않았던 가족과 학교생활에서 받은 상처가 있었더라고요.

단순히 나쁜 습관이라고만 여겼던 것에도 남모를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미운동료였는데, 신기하게도 그날 진솔한 대화 끝에 소중한 친구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는 제가 보는 ‘좋은 사람’의 기준도 좀 허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짜증스럽던 ‘군대’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제 편협했던 기준을 넓혀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제 8회 장병강연대회 ‘도전! 나도 명강사’에서 3등을 수상했다.
제 8회 장병강연대회 ‘도전! 나도 명강사’에서 3등을 수상했다.

이 두 가지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곳에선 늘 부딪힘이 뒤따랐습니다. 물론, 그땐 속상하고 짜증도 났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제가 얼마나 편협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품이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전역 후, 복학을 하고 사회로 나갈 때에도 새로운 만남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부딪힐수록 더 넓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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