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UTIC대학교 우고 페레이라 총장

지난해 7월, 한국에서 열린 세계대학총장포럼에서 파라과이 우고 페레이라 총장을 처음 만났다. ‘대학 교육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그는 일흔여섯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얼마 전 다시 만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본 그의 모습은 무대 위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전쟁 종식과 함께 시작된 군부 독재 시대에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50대 나이에 파라과이 청소년들을 위해 대학을 설립하기까지, 그는 차분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라과이 청소년을 위한 프로젝트부터 지자체 및 법원과의 MOU 추진 등등,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니 총장님은 매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시네요.

우선 저희 학교를 소개하겠습니다.
파라과이 국제사립기술대학교 UTIC·Universidad Tecnologica Intercontinental는 개교한 지 24년이 되었습니다. 신생 대학이지만 국제적으로 인증받은 학과의 다양성과 교육 방식만큼은 파라과이 내 어느 대학보다 뛰어납니다. 또한 파라과이 전역에 22개의 캠퍼스가 있습니다.

총장으로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활동·교육법을 찾아 학교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는 돈이 없거나 거리가 멀어서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수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위해 일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학생들이 종종 “총장님 덕분에 제가 이런 것을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데요, 그 한마디에도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제가 젊어서는 회계사, 경영자로 일했습니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이제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 회계사로 일하셨다고요.

네, 대학에서 회계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제가 정말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한 분야였죠. 졸업한 후 브라질 남부에 위치한 조인빌리 시市의 재무 감사를 맡기도 했고, 일본 요코하마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대학의 경영 관리자로도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를 떠올리면 괴로운 기억이 더 많아요. 제가 사회에서 활동하던 당시 파라과이는 지독한 군부 독재 시대였습니다.

회계사나 경영 관리자로 일하면서 정부로부터 끝없는 감시와 간섭을 받았고, 그것을 상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때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인간, 독재자의 끝없는 욕심과 야망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아마 그 시간이 없었다면 대학을 설립하는 일을 꿈꿀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따듯하게 만드는 바른 인재들을 길러내고 싶었습니다. 경영 일을 하면서 구성원들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도 했고요.

그가 52살이 되던 1993년은 파라과이가 35년 간의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첫 민간 정부가 들어선 해였다. 우고 페레이라 총장은 모 기업의 최고 경영자 직을 사임하고 학교 설립에 뛰어 들었다. 아직은 많은 것이 열악한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한 시민 단체 ETA(시민기술교육시행협회)의 후원이 이어졌고, 1996년 1월 마침내 UTIC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제가 어릴 적엔 나라가 무척 가난했고, 독재와 쿠데타가 반복되는 불안정한 정부 아래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굉장히 수직적인 분이셨고요. 그 당시엔 ‘미래에 뭐가 되고 싶다’라는 개념이 없었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어요.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파라과이가 우루과이와 브라질을 상대로 큰 전쟁을 치른 직후였는데, 글이 무척 배우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교를 갈 수 없었죠. 그때 할아버지께서는 수소문 끝에 글을 아는 어른의 집을 찾아가 그 집에서 청소하고 심부름하면서 글을 배웠다고 해요. 그리고 마을로 돌아와 시골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죠. 할머니와 결혼한 후에는 아예 시골 마을로 가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 열었고요. 학생들은 돈이 없었기에 과일이나 채소를 선생님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할아버지는 그렇게 행복해하셨다고 합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제8회 세계 대학총장 포럼에 참석해 대학 교육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발표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제8회 세계 대학총장 포럼에 참석해 대학 교육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발표했다.

어린 저에게 그 이야기는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 공동체를 위해 일한다는 것, 그 기쁨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사실 ‘앞으로 교육자가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택해야 했을 때 할아버지의 삶이 크고 작게 제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경영학과 회계학에 흥미를 가졌던 것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죠.

그런데 회계와 경영 일을 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데에는 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을 때, 할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늦기 전에 학교를 직접 운영해보자고 결심했죠. 파라과이가 변하기 위해선 교육이 절실히 필요했거든요. 중요한 시기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학교 설립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물론, 학교 설립 초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함께 일할 교수진이 적었기 때문에 학과나 전공을 정할 때 과목 하나하나를 꼼꼼히 검증하는 일부터 일일이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 진행이 더뎠죠. 하지만 성과에 비중을 두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처리해 나갔습니다. 학교를 위하여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에 끊임없이 도전했고, 상황이 나쁘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자리 잡을 때까지 아주 끈질기게 일한 거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를 대단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십대 시절에 저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감정을 따라 살았습니다. 수직적인 아버지 밑에서 억압된 삶을 산 탓인지, 친구든 선생님이든 제게 무엇인가를 시키면 그것을 받아들여서 진취적으로 헤쳐나가기보다 반사적으로 저항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시대를 욕하고,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었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Feel the Fear & Do It Anyway>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수잔 제퍼슨이라는 미국 작가가 쓴 책으로, 주인공의 이야기가 꼭 저 같았죠. 절망적인 자신의 처지를 보며 세상을 향해 불평하면서 살던 주인공이 ‘이 생각이 내가 발전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지금껏 미뤄두었거나 두려워했던 일들에 도전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1987년 출판된 미국 작가,수잔 제퍼슨의 책
1987년 출판된 미국 작가,수잔 제퍼슨의 책

그 책을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저의 부정적인 생각이 결국 저를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책의 영향으로 제 약점을 이겨낼 수 있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직도 그 책을 종종 생각합니다. ‘아무리 두려워도, 그 일을 하라’ 한국의 독자 분들에게도 책을 소개하고 싶네요.

우고 페레이라 총장은 여러 상처들로 인해 뒤틀리고 부족했던 자신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삶 속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좋은 책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문제가 있거나 부족한 학생들도 교육을 통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절망 속에서 살던 아이들이 꿈을 찾고, 방황하던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올바른 길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70대인 그가 여전히 힘있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총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대학 교육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입니까?

파라과이 거리에는 돈을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거리의 아이들은 결국 도둑질을 하거나 마약에 빠지는 등 삶이 범죄나 일탈로 이어집니다. 이에 정부에서 아이들이 정상적인 교육과 양육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정부만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기대하기엔 그 실효성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육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교육자들이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라는 같은 목표 아래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저희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교직원 모임을 할 때면, 제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여러분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학생들에게 최고의 것을 가르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사람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일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육의 가치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학 교육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교육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변화의 시작을 일으키는 씨앗과 같습니다. 저희 학교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지식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을 배워 각 가정에 영향을 주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 영향을 주며, 궁극적으로 파라과이의 모든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앞으로 대학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싶으신지요.

저희 대학은 윤리, 민주주의 및 자유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인성 개발을 제1의 교육 목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교수에게는 학생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학생들에게도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 할 줄 알고, 마음에 평안을 가질 때 사회에 이로운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나아가 좋은 아내와 남편으로서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 목표에 차분히 집중할 수 있었고, 놀라운 속도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해 7월에 한국에서 열린 ‘세계 대학총장 포럼’을 참석했던 이유도 한국의 청소년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11월, 우고 페레이라 총장은 한국에서 강사를 초청해 UTIC대학교 부총장과 학장을 대상으로 ‘소통과 교류’에 관한 마인드교육을 시행했다. 강사에게는 감사장을 수여했다.
지난 11월, 우고 페레이라 총장은 한국에서 강사를 초청해 UTIC대학교 부총장과 학장을 대상으로 ‘소통과 교류’에 관한 마인드교육을 시행했다. 강사에게는 감사장을 수여했다.

현재 저희 학교에서는 환경 보존에 대한 교육으로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인류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 새로운 일과 어려운 활동에 도전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것,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인성개발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NGO 단체인 국제청소년연합IYF과 함께 실질적인 인성교육을 더 진행할 예정입니다.

인성교육 과목 개설을 논의 중이며, 가깝게는 IYF의 대표적인 청소년 프로그램인 ‘해외봉사활동’을 파라과이 학생들에게도 적극 추천하려고 합니다. 또한 인성교육의 기회를 학생뿐 아니라 경영 이사와 교수진 전체로 넓히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시작되고, 그 변화들이 모여 파라과이 전체가 행복한 나라로 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학교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쉼 없이 생각한다는 우고 페레이라 총장. 그는 어느덧 어린 시절 존경하던 할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사람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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