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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로 끝내려던 봉사가 10개월이 되기까지
송지은 기자 | 승인 2020.01.17 11:07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도망치듯 떠난 파라과이에서 뜻밖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행복 또한 발견한 최연수 단원. 뜨거운 태양 아래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파라과이의 전통음료 떼레레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을 특별하게 보는 눈을 준 파라과이 친구들을 소개한다.

내 닫힌 마음빗장을 열어준 파라과이 친구들

쉼 없이 달려가는 삶에 지친 나머지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결심했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진로가 미처 결정되지 않은 채 사회에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쉬고 싶어 선택한 휴학이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한 학기를 보내고 외국어도 배울 겸 해외봉사를 가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기는 쉬웠지만, 한국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파라과이의 환경에 적응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파라과이에 온 지 엿새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배움을 향한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을 경험한 영어캠프.

 

뜻밖에 생각이 바뀐 건 우루과이 청소년들을 위한 영어캠프를 준비하면서였다. 파라과이에서 우루과이까지, 찜통더위에 에어컨이 고장난 버스를 타고 20시간을 달렸다. 캠프를 하는 동안 나와 동료 단원들이 지낼 곳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는 군부대 숙소였다. 창문도 열 수 없는 방에 모기까지 들끓어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파라과이 친구들과 부대끼며 캠프를 준비하다 보니 그 시간이 차츰 즐거워졌다.

파라과이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며 ‘어, 조금 더 버틸 만하겠는데…. 3개월만 더 있어볼까?’ 했던 것이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추운 날씨에 자기가 입던 외투를 벗어준 친구, ‘요거트가 먹고 싶다’는 말에 선뜻 사주며 기뻐하던 친구 덕분에 모든 게 낯선 파라과이를 향해 닫혀 있던 내 마음이 활짝 열렸다. 모든 게 서툰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그들 덕분에 감사의 의미를 깨달았고, 파라과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점점 커져갔다.

52도 더위도 녹이는 ‘떼레레’

파라과이는 한국과는 지구 정반대편에 있다. 이틀간 비행을 마치고 파라과이에 도착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너무 덥다!’였다. 더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습해서 찝찝한 더위, 햇볕에 타버릴 뜻 따가운 더위… 파라과이의 더위는 ‘숨통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더위’였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유독 더위를 못 참는 내가 과연 여기서 1년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최고기온이 섭씨 52도까지 오르던 날에는 ‘파라과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적응하고 사는 걸까?’ 궁금해졌다.

파라과이의 대표적인 천연약초 음료‘떼레레terere’.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비밀을 알아냈다. 바로 ‘떼레레’ 였다. 떼레레terere는 파라과이의 대표적인 천연약초 음료다. 파라과이 사람들은 ‘떼르모’라고 부르는 큰 보냉병에 떼레레를 담아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나눠 마신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내가 지내던 해외봉사단 지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청소년들을 위한 마인드캠프 홍보를 하러 나갈 때면 떼레레가 담긴 커다란 떼르모를 챙겨 들고 다니며 떼레레를 마실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엄청난 더위와 갈증으로 당장 죽을 것 같다가도 시원한 떼레레를 한 모금 마시면 그 모든 고통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기분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빨대 하나로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마시는 것은 떼레레의 또 다른 특징이다. 자칫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시다보면 어느 새 거부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친근함이 느껴질 정도다. 어느 날, 파라과이 친구 제니가 ‘같이 떼레레 마시자’며 나를 마당으로 불렀다.

제니와 떼레레를 마시며 ‘나도 어느덧 파라과이에 적응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나를 위해 직접 떼레레를 준비해 왔다는 말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현지 사람들에게도, 또 나에게도 떼레레는 음료를 넘어 우정, 사랑, 배려, 단합 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실수’야말로 최고의 스페인어 선생님!

해외봉사 기간 동안 나의 목표였던 ‘스페인어 배우기’는 뜻밖의 방법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현지 친구들과 수다 떨듯 자주 대화를 나누다보니 책상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적은데도 스페인어가 많이 늘었다.

책상에 앉아 문법과 단어를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말을 많이 하는 편이 기억하기도 쉽고 능숙해지는 데 시간도 적게 들었다. 혼자 책을 보고 외운 단어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직접 써먹다 실수하며 배운 단어는 기억에 오래 남았다. 한번은 “Me gusta terere con sabor a menta 나는 박하가 들어간 떼레레가 좋아”라고 해야 하는데, 실수로 “Me gusta terere con sabor a mente나는 정신이 들어간 떼레레가 좋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하를 뜻하는 ‘멘따menta’와 정신精神을 뜻하는 ‘멘떼mente’를 헷갈린 것이다. 하지만 실수를 한 뒤로는 헷갈리지 않는다.

그렇게 스페인어를 배우는 동안 불과 몇 달 만에 상대의 말을 웬만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말하기는 듣기와는 전혀 달랐지만, 주변 친구들의 격려 덕분에 스페인어로 말을 많이 하게 되었고 실력향상도 빨랐다.

한국문화 아카데미에서 젓가락 사용법을 현지 친구들에게 알려줬다. 어려울텐데도 열심히 배우려는 모습이 고마웠다.
다 함께 봉사를 마치고 아쉬운 마음으로 찍은 사진.

1년간 파라과이에서 살며 배운 것들 중 가장 값진 건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더울 때 에어컨을 켜고, 배고플 때 밥을 먹는 등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나는 오히려 불평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황에 가서야 ‘아, 내가 정말 풍족한 삶을 살았구나. 그런 삶을 살았던 게 감사한일이었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의 나라면 생각지도 못할 변화다. 날씨가 조금만 시원하거나, 어쩌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등 소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내가 되었다. 감사가 쌓일수록 내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글, 사진=최연수(굿뉴스코 파라과이 단원)

송지은 기자  songj86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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