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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 맛본 행복한 시간
송지은 기자 | 승인 2020.01.15 17:24

오랫동안 늘 잘하려는 틀 속에서 자신을 괴롭혔다. 하지만 좀 부족하고 잘하지 못해도 네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힘든 것, 어려운 것, 부족한 것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날 싫어하고 떠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네팔에서 보낸 1년은, 내 생애 처음 맛본 행복한 시간이었다.

몸은 네팔까지 왔어도 마음은 갇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서 큰 사고를 당하신 적이 있다. 엄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내가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 늘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다. ‘착한 아들’ ‘모범생’ ‘좋은 친구’ 등 반듯한 이름표가 붙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난 ‘좋은 사람’이라는 틀에 스스로 갇혀버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겁이 나서 마음의 어려움도, 불편한 감정도 솔직하게 꺼내지 못했다. 자신을 그대로 표현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내 삶에 특별한 변화를 주고 싶어서 네팔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네팔의 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도로위에는 짓다가 만 건물이 즐비했고 들개들이 온 거리를 뛰어다녔다. 무엇보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봉사활동 중 만난 현지 아주머니가 우리를 집으로 초청했다. 허름해 보이지만, 가족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가장 편안한 집이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만만찮았다. 고산지대의 장거리를 오가며 마인드강연과 시골 봉사를 했다. 습관대로 좋고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힘들어도 속으로 참고 말하지 않았다. 함께 온 단원들은 어려운 것이나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지부장님이나 현지인들에게 이야기했다. 때때로 사고를 칠 때도 있지만 자유롭게 표현하고 또 달라지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고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내 모습과 많이 비교했다. 겉모습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바뀌지 않는 내 모습에 절망하고 있었다.

빛 가운데 있는 어둠은 사라진다

어느 날, 다른 지부의 행사에 사진기자로서 참석하고 돌아왔는데 그곳 지부장님이 전화를 주셔서 내가 쓴 기사에 대해 질책하셨다. 나는 나름대로 변명이 있었지만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꾸역꾸역 “네”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우리 지부장님이 저녁에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무슨 일이지?’ 혹시 잘못한 게 있나 싶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현철아, 네 맘에 쉼이 있니?”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었다. 스스로 만든 ‘보기 좋은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있자니 점점 마음에 쉴 틈이 없었다. 지부장님은 몇 개월간 나를 지켜보면서 그걸 알아채신 것이다.

“현철아, 봉사를 하려면 네가 먼저 행복해야 해.”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행복은 내가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부장님께서는 사람은 다 똑같다고, 행복도 있고 어려움도 있다고 하셨다.

시골의 작은 마을 ‘쭐리쭐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동맥은 산소를, 정맥은 이산화탄소를 운반하지. 만약 몸이 산소는 받아들이는데 이산화탄소는 배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죽게 될 거야. 우리 마음에도 들어오는 게 있으면 나가는 것도 있어야 해. 어둠을 빛 가운데 드러내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부족함과 어려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드러내면 어느새 어려움은 사라지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어. 너도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말고, 좀 못난 모습도 표현하면서 편하게 지내.”

지부장님 말씀을 들으면서 내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분명히 어려움이 있는데 그런 것은 꽁꽁 숨기려고 애쓰다보니 사는 것이 피곤했다. 지부장님과 대화한 이후 내 부족한 것, 내 마음에 불편한 것들을 말하기 위해 입을 떼는 연습을 시작했다. 표현하기 어려울 때는 표현하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분명히 어두운 이야기를 했는데 마음은 밝아졌다. 어려움을 이야기하니까 내 마음은 쉴 수 있었고 행복이 찾아왔다.

차가운 고산지대를 따뜻하게 만드는 아이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는 그림 같은 학교가 있다. ‘스노우랜드학교’라는 이 학교는 이름 그대로 눈 덮인 고산지대에 있는 곳이다. 이곳은 기숙형 학교인데 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 특히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이 학교는 우리 굿뉴스코 네팔 지부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는데, 네팔의 큰 명절인 ‘더싸인’ 기간에 집에 가지 못하고 외로워할 아이들을 위해 이틀 동안 마인드캠프를 열었다.

이번 캠프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었다. 처음으로 현지인의 통역 없이 아카데미, 게임, 강연 등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했다. 큰 행사라서 인도에 있는 굿뉴스코 단원들도 함께했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우리 12명은 머리를 맞대고 밤새 준비했다. 캠프 첫 날, 강당에 앉아있는 100여 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자 갑자기 머리가 하얘진 나는 말을 끊임없이 더듬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네팔어인지 외계어인지 모를 정도였다. 엉터리인 내 언어를 알아들으려 애쓰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네팔의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킬티플’ 지역의 공원위에 올라가서 현지 친구들과 찍었다.
수질이 좋지 않은 네팔에서 자주 물탱크 청소를 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에 정신이 없고 힘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내 앞에서 방긋방긋 웃는 아이들 덕분에 부족한 언어실력으로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항상 괜찮다고 말없이 위로하며 부족한 나를 채워주는 아이들의 미소가 정말 고마웠다.

캠프를 무사히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한 꼬마가 달려왔다. 그 꼬마는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꼬옥 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어설펐는데, 이 아이는 나를 ‘아빠’라고 부르면서 따라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껴안아주었다. 진짜 아빠처럼!

나는 오랫동안 잘하려는 틀 속에서 자신을 괴롭혔다. 내 마음은 항상 쉬지 못했다. 하지만 좀 부족하고 잘하지 못해도 네팔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껴줬고 사랑해주었다. 힘든 것, 어려운 것, 부족한 것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날 싫어하고 떠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네팔에서 보낸 1년은, 내 생애 처음 맛본 ‘행복한 시간’이었다.

글, 사진=김현철(굿뉴스코 네팔 단원)

송지은 기자  songj86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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