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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라금융시스템 개발자 전엘림
배효지 기자 | 승인 2020.01.14 08:45

증권사의 금융 시스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전엘림 씨는 요즘 무척 바쁘다. ‘IT개발’ 분야는 업무강도가 높고, 퇴근 후나 주말에도 대학원 공부로 여유 부릴 틈이 없어서다. 하지만 아프리카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가 될 꿈이 있기에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그녀를 만났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

전엘림
대학에서 IT응용시스템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증권사에서 해외주식 매매시스템을 운영하는 상주 프리랜서로 근무하고 있다. 해외봉사야말로 인생의 꿈과 목표, 그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일깨워준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낮에는 금융 시스템 개발자로, 밤에는 대학원생으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전엘림 씨. 하지만 대학 신입생 때만 해도 이런 자신의 모습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단순히 수능성적에 맞춰 선택한 ‘IT응용시스템공학’ 전공. 성적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지만, IT분야를 공부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딱히 없었기에 별다른 의욕을 느끼지 못했다.

지겨운 공부에서 해방받고 싶었던 걸까. 대학교 1학년을 마친 그녀는 훌쩍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하지만 언어와 문화, 분위기까지 다른 낯선 나라에서 사고방식이 너무도 다른 사람들과 지내자니 답답했다. 일상의 작은 것 등 그녀의 기준에서는 이해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은 빨래한 옷을 흙투성이 길바닥에 펼쳐놓고 말렸다. 흙바닥에 말린 옷을 입다니, 그녀의 눈에는 못내 찝찝해 보였다.

“깨끗이 빤 옷을 더러운 길바닥에 펼쳐두면 다시 더러워지잖아? 깨끗한 곳에 널어 말려야지.” 하지만 현지인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옷이 마른 뒤에는 흙도 말끔히 털려. 깨끗해.” 항상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그녀에게 현지인들은 ‘손으로 먹어보라’고, 쌀죽에 소금이나 간장을 넣어 먹는 그녀에게 ‘설탕을 넣어 먹으라’고 권했다. 놀라운 건 현지식으로 먹으니 더 맛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그들을 가르치려 했어요. 그런데 그들과 함께 지내며 대화할수록 ‘내 기준이 옳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들의 사고와 시각은 한국인인 저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틀리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었던 거죠.”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면 편견과 고정관념이 사라진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해외봉사가 준 선물들: 마음을 보는 눈+인생의 목표

동네 아이들은 사진만 찍으면 좋아서 우르르 몰려든다.

우기가 시작되며 온 하늘이 구름에 덮여 우중충하던 4월, 엘림씨는 황열병에 걸렸다. 온 몸에서 펄펄 열이 났고, 구토에 코피를 흘린 것은 물론, 손발까지 저렸다. 그야말로 죽어갈 듯 앓아 누워 병마와 싸우던 그녀에게, 가난한 현지인들은 ‘힘내라’며 먹을 것과 피를 만드는 데 좋은 차茶를 챙겨다 주었다. 자기들도 하루 두 끼 먹기 힘들 만큼 가난한데도 말이다.

그런 사랑에 힘입어 기운을 차린 어느 날, 그녀에게 불어를 가르쳐주던 알랭이 프랑스어 문법책을 하나 추천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초등학생, 중학생은 모두 이 책으로 공부한다’며 ‘꼭 이책을 사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날부터 알랭은 한 푼 두 푼 책값을 모으는 한편, 중고책방을 드나들며 그 문법책을 찾고 찾았다. 그리고 그녀가 한국으로 떠나던 날, 그 문법책을 까만 봉지에 담아 건네주었다.

“선물의 값어치는 가격이 아닌, 주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황열병으로 아플 때도 오히려 따뜻이 보살펴 준 현지인들의 사랑과 정성을 경험하며 행복했지요. 그 행복을 앞으로도 계속 경험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귀국 후에는 자연스럽게 ‘다시 아프리카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컴퓨터공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생기니 절로 공부할 의욕이 솟았다. 그동안 포기하다시피 했던 전공공부를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출발이 이렇게 늦었는데 따라갈 수 있겠어?’ 교수님이나 조교선생님이 염려했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단다.

“신기했어요. 그렇게 어렵던 프로그래밍이, 컴퓨터공학 교수가 될 목표가 생긴 뒤에는 그렇게 재미있는 거 있죠? IT는 제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저와 너무 잘 맞는 분야였어요.”

특히 과에서 2주간 해준 졸업준비 교육이 큰 도움이 되었다. 조교선생님이 취업에 꼭 필요한 웹사이트 개발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조직·관리·저장하는 학문인 ‘자료구조’나 SQL·자바·C언어 등을 공부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리고 2012년, 공공기관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개발자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녀가 처음 만든 것은 한국관광공사 직원들을 위한 설문조사 시스템이었다. 차츰 경력이 쌓이면서 좀 더 크고 정교한 IT시스템을 관리해 보고 싶은 목표가 생긴 그녀는, 2014년 금융기관용 IT 시스템을 구축하는 개발자로 전향하기에 이른다.

‘상대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게 경쟁력

숯이나 장작으로 불을 피워 지은 밥에선 항상 맛난 누룽지를 맛볼 수 있었다.

해외봉사를 하며 터득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자세’는 엘림 씨가 시스템 개발자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케팅, 영업, 회계 등 타 부서를 보조하는 IT업종의 특성상, 개발자들의 고객은 직장동료들이다. 그런데 각 부서에서는 서로 ‘우리 시스템부터 먼저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오곤 한다. 자칫하면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럴 때 최고의 해법은 소통입니다. 각 부서원과 회의를 하면서 ‘A부서 시스템은 언제까지 완료하면 되죠? 제가 들어보니 B부서 시스템이 더 급한 듯한데, 이때까지 해 드리면 될까요?’ 하고 부서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조율하는 거죠. 때로는 제가 처리해 본 경험이 있는 업무나 익숙한 개발방식에 다른 분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제 의견을 내려놓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일터에서 중요한 지혜죠.”

뜻하지 않은 일로 동료나 상사와 사이가 어색해졌을 때는, 먼저 다가가 앞뒤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하면 오히려 관계가 친밀해질 때도 많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자세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며 오늘도 그녀는 꾸준히 성장 중이다.

IT분야의 업무강도가 높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와 피로를 이기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사용자의 칭찬과 격려다. 단순히 요청받은 만큼 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 입장에서 ‘아주 조금 더’ 생각하고 개발한 것만으로도 사용자들이 ‘너무 편하다. 고맙다’고 반응할 때 그녀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가령 어떤 부서에서 ‘버튼을 클릭하면 정해진 순서대로 여러 계좌에서 입출금이 진행되는 기능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요. 요청대로 개발을 완료한 후에도 그 기능을 사용할 실무자들 중에는 개발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죠. 그런 사람은 어느 계좌에서 어떻게 돈이 드나드는지 인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럴 때면 따로 돈의 입출금을 화살표로 표시한 차트를 그려 PPT에 넣어주는 거죠.”

이렇게 그녀가 작성한 표나 그림은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참고 자료로 유용하게 쓰일 정도라고 한다.

24시간 긴장상태… 때로는 새벽 출동도

현재 엘림 씨는 증권사 해외주식 매매시스템의 운영을 맡고 있다. 돈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시스템이라 작은 실수가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식을 산 고객이 시스템상의 문제로 원하는 시기에 주식을 팔지 못해 손해를 입었다면 이를 배상해야 한다. 24시간 항상 긴장하면서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가는지 거듭 확인하는 것이 운영자의 몫이다.

‘증권사의 업무는 주식시장 스케줄에 맞춰 돌아간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국내 주식시장 코스피와 코스닥은 오전 8시 30분에 개장하기 때문에 시스템 담당자들은 8시까지 출근해 아침점검을 하며 문제점을 미리 해결한다.

“주식 거래시간에는 어지간해서는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장이 끝나는 15시 30분이 되어서야 긴장을 풀고 티타임을 갖죠. 특히 제가 담당하는 해외주식시장 중 미국 시장은 한국시간으로 23시 30분부터 다음 날 6시까지 열리기 때문에 혹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새벽에 긴급출동하기도 하죠.”

틈날 때면 엘림 씨는 먼 훗날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힘을 얻는단다. 대학 때는 교수님들이 본인들의 전문분야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시스템이라는 분야의 전체적인 구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아쉬웠다는 엘림 씨. ‘학생들이 시스템의 큰 그림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교수가 되겠다’는 게 그녀의 꿈이다. 그 꿈이야말로 그녀가 쉼없이 달려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이다.

배효지 기자  gkgk2816@itmorro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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