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리뷰

숲에 가도 나무는 못 보는 사람들

나무에 대해 쓴 책은 현란하거나 요란스러울 수 없다. 이런 책들은 탄산음료처럼 달콤하고 상쾌하진 않지만 나무라는 존재가 가진 특유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나무는 자연을 대표하는 존재다. 자연이란 하늘과 땅이고, 나무는 그것들 사이를 채워주고 있으니까. 나무가 가진 교훈은 자연이 주는 지혜를 대표한다. 나무를 알면 자연을 아는 것이다. 그런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운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무들은 태어날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 한번 태어난 자리에서 평생을 서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어떤 나무도 똑같지 않다.

‘나무의사란 무슨 직업일까?’ 우종영 씨의 책을 만나면서 첫 번째로 떠오른 질문이다. 저자는 나무병원 ‘푸른공간’을 설립해 30년째 아픈 나무를 돌봐오고 있다. 나무 심기는 쉬워도 나무 살리기는 참 어려운 모양이다. 도심의 가로수, 조경수에서 천연기념물 고목까지 수천 그루의 죽어가는 나무들이 그의 손에서 되살아났다. 아무나 하는 일은 분명 아니다. ‘그는 어떻게 나무를 만나게 됐을까? 어떻게 해서 말없는 나무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됐을까?’ 학교 밖에서의 방황과 길거리의 거친 삶이 그가 나무의 지혜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두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못 볼 수 있다. 귀가 있고 마음이 있어도 음악을 듣고 감동받지 못할 수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진리는 그래서 맞는 것 같다.

서점에는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새 책들이 등장한다. 매력적인 제목 아닌 것이 없다. 끌리는 편집 아닌 것이 없다. 서점에 가면 나는 갈팡질팡 방향을 잃어버린다. 겨우 제목들을 훑고 나온다. 손에 쥔 스마트폰만 열어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뉴스…. 매순간 한 사람이 다 소화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거기에 있다. 전부 날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나무는 나를 꼭 봐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숲에 들어가도 나무를 발견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이므로 나무를 보더라도 빠르게 지나칠 뿐이라는 것이다. 속도를 늦추고 곁에 있는 나무를 천천히 음미해보면 나뭇잎 한 장의 잎맥도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똑같은 게 없고, 그 잎맥은 지도처럼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 눈으로 바라 볼 때에 나무 한 그루는 백 가지도 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나무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

‘당신도 나무처럼 단단하게 살아가세요.’ 저자가 제일 먼저 주는 당부다. 첫마디에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먼저 흔들려본 사람이기 때문에 나무를 빌려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단단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나무가 처하는 외부환경과 마찬가지로 사람한테도 거친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햇볕 충만한 좋은 땅에서 자라는 사람도 있지만 자갈밭에 처한 사람, 빽빽한 경쟁 상대들 가운데서 어렵게 햇볕을 찾아가는 사람, 소금기 있는 바닷바람을 견뎌야 하는 사람, 심지어 바위틈으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사람도 있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끈질기게 뿌리를 뻗어나 가는 나무의 생명력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런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답은 희망이라 생각한다. 희망은 사람에게 새 힘을 주고 강한 마음을 준다. 저자는 책의 여러 곳에서 경쟁만을 쫓아가는 바쁜 사회를 냉정하게 꼬집는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천편일률적인 한 가지 길만 제시하는 사회를 안타까워한다. 나무처럼 겨울이 왔을 때 자기의 잎을 다 떨어뜨리고 비울 줄 모르는 인간세상을 낯설어한다. 나무의사의 눈으로 볼 때는 나무와 사람의 삶이 너무도 차이가 크다.

바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요소는 개인이 갖는 희망이라는 정신적 가치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나 자신은 물론 남에게, 내 가족에게, 나아가 이 세상에 보탬이 된다는 건강한 자존감이다. 정신적 가치란 마치 우리 몸의 비타민과도 같다. 적은 양이 필요하지만 없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사람이 그저 조직사회의 로봇이 아니라면, 공장의 기계가 아니라면, 그저 밥벌이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에게는 진실한 희망과 꿈이 필요하다.

‘희망’이라는 마음의 습관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이 점점 희석되는 세상이다. 바꿔 말하면,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성공담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희망을 배우는 곳은 드물다. 개인의 희망은 좋은 환경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의 습관이다. 우리는 형편과 상관없이 희망과 절망 중에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희망을 선택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과 평소에 쓰는 말부터 다르다. 이들은 ‘왕년에는 내가 말이지…’ 하는 과거형을 쓰지 않는다. 늘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을 얘기한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의 세계에서는 이미 이뤄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언어가 굉장한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을 넘어 한 사회가 세대를 이어가면서 발전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된다고 믿는다.

유복한 세대에 태어난 우리도 과거로부터의 희망에 빚을 지고 있지 않은가? 불과 몇 십년 전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나 선박, 반도체, 원전기술은 커녕 가발 정도를 만들어 수출했다.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교역을 하는 나라는 200여 개국으로, 전 세계에 코카콜라를 파는 나라의 개수만큼이나 많다. ‘우리 세대는 가난했지만 내 자녀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 내가 못 배웠지만 내 아이들은 잘 배우도록 해주자….’ 그 억척스러움과 지극한 가족사랑, 또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기이하리만큼 희망적인 기업가정신. 나는 그것이 세계인의 시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인의 진면목이라 생각한다.

희망이라는 습관은 나태해지기 쉬운 우리 본성과는 정반대다. 이런 시대에도 자꾸만 희망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 아니, 우리에겐 꼭 그런 이들이 필요하다! 지금도 현명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기꺼이 도전과 고생으로 내몰아서 나무처럼 단단하고 고요한 힘을 길러줄 것이다. 용감한 젊은이들이 기꺼이 세계시장으로 나가서 좌충우돌 해보는 것처럼 그런 경험이 희망의 재료다.

자연의 지혜가 가득한 숲으로 안내하는 책

희망을 선택하는 습관을 어떻게 배울지는 이 책의 직설적인 목차와 소제목들만 펼쳐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은 씨앗처럼 용감해질 것 / 최고의 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법이다 / 내가 예순이 넘어 다시 시험 준비를 하는 이유 / 내 손으로 작은 집을 지으며 깨달은 것들 / 오늘 하루가 어떤 하루일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작은 에피소드들 안에는 가볍게 넘기기 힘든 인생의 교훈이 잘 여문 밤알처럼 송송히 박혀 있다. 책의 후반부로 나아가면 붉나무, 먼나무, 버즘나무, 메타세쿼이아, 개박달나무, 보리밥나무, 아까시나무… 낯선(?) 이름들의 나무가 저마다의 개성을 통해 지혜를 알려준다. 그런 배움이 즐겁다. 저자의 문장들은 수수하고 읽기 쉬운 것이 나무를 닮았다.

책 속의 한 문장을 찾으라면 이것을 선택하고 싶다.

“평생을 나무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고 병든 나무를 고쳐 왔지만, 실은 나무에게서 매 순간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존경하는 사람도 없이, 마음 주고받는 대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다.

저자는 직업의 본질 속에서 희망의 멘토를 찾아냈다. 마치 우주를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나 인체를 평생 공부해온 의학자가 자신이 연구해온 대상에서 인간 너머의 경외감을 발견하는 것처럼.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나무의 교훈은 자연이 주는 지혜를 대표한다. 이제 숲을 찾아가자.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서 나무를 만나자. 숲이 만들어주는 디지털 프리digital free의 강의실에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또 앞으로 살아갈 일들을 생각하자. 나무가 늘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듯이 우리 마음을 희망 편으로 내어주자. 비록 희망의 씨앗이 작아도 그것을 매일 가꾸고 보살펴주는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오직 스스로의 몫이다. 나무를 고쳐주며,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운 이야기의 일독을 권한다.

글=최지웅(자유기고가·악어타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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