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돌아온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가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겨울왕국2’에는 1편에 없던 ‘노덜드라 부족’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이들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추장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사회, 대자연의 일부로서 더불어 사는 삶 등은 수백 년 전, 북미 대륙을 누비며 살던 원주민을 떠올리게 했다. ‘겨울왕국2’는 노덜드라 부족이 아렌델 왕국과 다툼을 그치고, 서로 각 나라의 터전을 지키는 것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지만, 현실 속 북미 원주민과 백인들의 삶은 이와 달랐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에 의해 ‘보호구역’이라 불리는 북쪽의 황무지로 내몰렸다.

백수십 년이 흐른 지금, 많은 원주민들은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에 사로잡힌 채 정부 연금에 의지하며 술과 마약, 범죄 등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런데 2020년을 한 달 앞두고, 현실 속 원주민 이야기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고 싶다는 청년이 나타났다. 캐나다 매니토바 주州의 원주민 마을 ‘넬슨하우스’에서 한국으로 1년간 해외봉사를 하러 온 ‘타일러 무디’가 그 주인공이다. 그를 만나 특별한 꿈을 품게 된 사연을 물었다.

캐나다 원주민마을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들었어요.

장소 협찬 | 모꼬지게스트하우스
장소 협찬 | 모꼬지게스트하우스

네, 해외에 가는 것뿐만 아니라 보호구역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요. 1800년대 북미 원주민들은 미국 및 캐나다 정부와 ‘보호구역에서 지내는 대신 연금 지급과 세금 면제 등 각종 복지혜택을 받는다’는 조약을 맺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원주민들은 전혀 달라진 생활방식에 적응하지 못했고, 부족한 일자리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정부지원에 의지한 채 살아왔습니다. 원주민을 위한 정부지원금을 바라보는 미국과 캐나다시민들의 시각 또한 부정적이죠. 원주민 청소년들도 대부분 스스로를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때문에 바깥세상으로 나가길 두려워하죠. 가족들도 처음에는 해외봉사를 다녀오겠다는 저를 말렸어요. 하지만 저는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경험하면 제 삶이 변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파견국으로 한국을 선택한 건 제게 가장 낯선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만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큰 결심을 할 수 있었군요.

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제가 변했거든요.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제 삶은 늘 외롭고 우울했어요. 마약과 술로 얼룩진 삶을 살았거든요. 마약중독자인 아버지와 알코올중독자인 어머니를 보며 ‘내 미래도 결국 비참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저와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다들 절망과 슬픔 속에서만 살다 하나둘 제 곁을 떠나갔어요.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웃음이 터졌다. 지금도 SNS로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웃음이 터졌다. 지금도 SNS로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IYF캠프. 행사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된 IYF캠프. 행사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몇 개월 전, 친구의 소개로 국제청소년연합IYF에서 주최하는 마인드캠프에 참석하게 됐어요. 미국에서 캠프가 캠프를 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뉴욕과 LA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어요. 생전처음 자유의 여신상도 보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사귀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멘토’를 만난거예요. 캠프 기간 동안 IYF 밴쿠버 지부장인 홍상수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지 등 모든 걸 털어놓았죠.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시더니 ‘너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하셨어요. 틈날 때면 저를 찾아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어요. ‘내가 뭐라고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걸까? 내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해 주신 분이 한 분도 없었는데.’ 제가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늘 제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어른의 말을 따르고 싶어졌어요. 그때부터 캠프 스케줄과 규칙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해외봉사 프로그램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얼마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캐나다 원주민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캐나다 원주민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마인드캠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세계 문화 박람회’에 참가하면서입니다. 한국, 아프리카, 멕시코 등 해외로 1년간 봉사를 갔다 온 학생들이 각자 다녀온 나라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해외봉사 활동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어요. ‘다른 사람을 위해 살 때 더 큰 행복을 느꼈다’ ‘잊지 못할 친구를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해외봉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캠프에 참석하면서 정말 행복했지만, 넬슨하우스로 돌아가면 다시 어두운 예전 삶으로 돌아갈 것 같았어요. 그런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홍상수 선생님도 제게 해외봉사를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셨고요. 캠프를 마치던 날, 캠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해외봉사 지원자를 모집했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었지요.

한국까지 오려면 적잖은 비용이 들었을 텐데요.

캐나다에서 2달 정도 훈련을 받고 한국으로 나오는 일정이었어요. 원주민마을에서 대도시까지 나오는 비용과, 캐나다에서 한국까지 왕복항공료와 경비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제게 주어진 시간은 단 7일이었죠. 원주민마을로 돌아가자마자 매일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한국에 갈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레고 기뻐서 하루 14시간씩 일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어요.

하지만 제 보수는 항공료와 경비로 쓰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고민하다 넬슨하우스의 공공기관 7곳에 후원요청 편지를 보냈어요. 마인드캠프에 참석하며 배운 것들, 그리고 해외봉사를 가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싶은 이유를 진솔하게 적었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기관에서 저를 후원해 주겠다고 하셨어요. 총 2,600달러를 후원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고요. 도움을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에 온 지도 한 달이 넘었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김장 봉사하던 날, 배추밭에서 손수 딴 배추들.
김장 봉사하던 날, 배추밭에서 손수 딴 배추들.
김장 재료 손질, 생전 처음해보는일이었다.
김장 재료 손질, 생전 처음해보는일이었다.

실제로 한국에 와보니 언어나 음식 등 모든 것들이 놀랍고 신기해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정리정돈을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건 떡볶이와 김치예요. 얼마 전엔 직접 김치를 담가 봤는데, 필요한 재료도 많고 손질해야 하는 것도 많아서 놀랐습니다. 일이 고되기도 했지만, 함께 일했던 한국인 봉사자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저도 힘이 나서 열심히 일했어요. 최근에는 2월에 있을 초등학생 영어 캠프를 준비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아이들과 만나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오늘 표지 촬영하면서 한옥이나 약과 등을 처음 본 것 같네요. 이런 한국문화도 많이 체험해보고 싶습니다!

1년 동안 해외봉사를 마치면 무슨 일을 할 계획인가요?

‘캐나다에 돌아가면 요리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요리사가 되는 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하고 싶은 건 고향으로 돌아가 원주민들 사이에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는 거예요. 저희 가족들 중 해외에 가 본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넬슨하우스의 첫 번째 해외봉사자이기도 하죠. 인생의 꿈과 소망없이 술과 마약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미래를 향한 소망을 품고, 꿈을 꾸며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고요.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이 모두 저처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도록 꼭 돕고 싶습니다. 2020년은 그런 제 꿈을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이곳에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봉사하는 기쁨을 느끼며 마음껏 꿈꾸고 싶어요. 한국에서 지낼 1년이 무척 기대됩니다.

Editor’s Comment

그는 마치 알을 깨고 나와 세상 밖을 처음 만난 병아리 같았다. 한국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새로웠고, 그를 행복하게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관심은 힘이 세다’는 걸 깨달았다. 캠프에서 만난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은 상처 입어 살아갈 힘을 잃은 타일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타일러가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랑과 행복을 받고, 그 사랑과 행복이 지구 반대편 원주민마을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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