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Adieu아듀 우울증 ②

S씨의 사연
원하는 대로 흘러갔던 내 세상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란 나는 대학 졸업 때까지 이렇다 할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 굳이 말하자면 고3 때 입시를 치르며 열심히 공부한 게 가장 큰 고생이었다. 다행히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에 순탄히 진학했다. 언제나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이 함께였고, 어울릴 친구도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취업준비를 했다. 토익, 자격증 공부를 하고, 경력을 쌓기 위해 주말에도 부지런히 살았다. 그러자 금방 유명 미술관의 마케팅 팀에 취업이 되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불청객이 등장했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 전시장에서 가끔 보던 큐레이터의 모습과 실제 큐레이터의 삶은 너무도 달랐다. 백조가 수면 아래서 쉬지 않고 발을 구르듯 전시장 뒤에서 해야 하는 궂은일이 넘쳐났다. 전시가 오픈하는 날에는 높은 구두를 신고 4층 계단을 오르내리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등 힘든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정말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다른 팀 막내와 대놓고 나를 비교하는 사수와, 실수를 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큰소리로 혼을 내는 팀장님을 대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출근길이 지옥같이 느껴지길 여러 날,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심기일전하고 새로 취업한 또 다른 미술관에서는 실수 없이 하려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 덕에 일은 잘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상사와의 관계가 껄끄러웠다. 이번에도 사수는 나에게만 차가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내게 이별을 알려왔다. 결혼 상대로서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 사람만큼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난 TV 속의 커리어우먼도 멋진 왕자님을 만나는 금잔디도 아니었다

잇따라 충격적인 일을 만난 후, 난 일을 그만두고 진학했던 대학원도 휴학했다. 1톤 트럭처럼 느껴지는 몸을 침대 위로 일으키기 힘들었다. 가끔 멀쩡하게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잠들 때까지 서너 시간씩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그려놓은 멋진 미래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끝난 것처럼 서럽고 슬펐다.

좋은 직장과 멋진 배우자를 만나 승승장구 하려던 부푼 꿈이 내동댕이쳐지자 견디기 힘들었다. 잘나가는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초라했다. 병원을 찾으니 우울증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우울증과 긴 싸움을 해야 했다. 자신을 비관하고 주변을 원망하며 2년이 흘렀고,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웃지 않았고 언제나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봤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행동으로 옮길 강단이 없었다. 그래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낮에는 너무 졸리고 밤에는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사실과 언제 이 병이 나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머리가 맑은 때는 가끔 생각했다. ‘왜 유독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졌다. ‘남들은 다 잘 사는데 왜 하필 나야?’

의외의 곳에서 답을 찾다

2년간 허송세월을 한 게 아까웠던 나는, 지인의 소개로 어린이 도서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나보다 서너 살 어린 동생들이었다.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동생들이 좋아서 금방 친해졌다. 가까워지니 서로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도 허약하고 예민한 감성을 지닌 A, 자신보다 아이돌을 더 사랑하는 B, 생각이 너무 많은 C. 동료들이 나와 다른 게 하나 있었는데 자신의 결점을 남 앞에서 인정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 내 고민을 자주 이야기했고, 그들은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부터 나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건네는 목소리를 차곡차곡 모아보았다.

“어려움 없이 자라서 네게 닥친 시련이 크게 느껴진 걸지 몰라. 관점을 한번 바꿔 봐.” 어둠에만 시선을 줄 때는 세상이 끝난 것같이 슬펐는데, 감사할 곳으로 눈을 옮기자 기쁨이 내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초라해진 나를 떠났지만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동료들을 얻었다. 그제야 내가 틀렸음을 인정했다. 내가 때로는 실패를 할 수도 있고, 내 판단이 옳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말이다. 때때로 어두운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찰 때면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조언을 얻을 때도 있었고, 뚜렷한 해결책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자연스럽게 약을 끊게 되었다. 가끔 ‘진작 이렇게 살았더라면 아픔을 겪지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란 말처럼 우울증이 지나간 내 마음은 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앞으로도 인생에 비가 올 때도 있겠지만 이전같이 크게 아프진 않으리라 믿는다.

인생이란 ‘함께’ 사는 것임을 알았다
P씨의 사연

학창 시절에는 거의 매일 밤이 깊도록 책에 빠져서 시간을 보냈다. 부활, 죄와 벌, 적과 흑 등 주로 고전 소설들을 읽었다.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인생에 대한 답을 주는 대신 내 마음에 우울함을 잔뜩 남겼다. 어느 책에든 인간의 부조리와 추악함, 가책과 몸부림 등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학교에서 공부를 제법 했고 주관도 나름대로 뚜렷해서 앞으로 무얼 해도 잘할 거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허한 마음을 채우고 싶었다.

어느 날, 참된 인생을 찾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날 이후 사람들과 단절되어 지내면서 내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인생의 답을 찾지 못했고,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이상해졌다.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고, 나중에는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의미 없는 삶, 그냥 죽고 싶었다. 그렇게 되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그 후로는 우울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긴 시간을 보냈다.

하늘의 선물이었을까, 삶의 이유를 찾기에 허덕이던 내가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형편없었던 자신이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삶이 감사하다며, 그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하는 분이었다. 저런 삶도 있구나! 감사와 행복 속에서 살고 있는 그분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인생의 길을 돌이켜 나도 그분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마음에 새 길이 나기 시작했다. 비록 우울한 마음이 여전히 많았지만 감사한 일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가족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전에 추구했던 것과 다른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스로 서고 싶었는데, 누군가를 의지해서 서기 시작했다.

나는 인생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했다. 그런데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마음을 합하고, 누군가의 힘을 빌려오고…, 그렇게 함께 사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 나는 함께 사는 것에 길들여졌다. 내가 약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주위에 있는, 나보다 힘이 강한 분들과 엮여서 살면 되니까. 그래서 내 인생에도 감사가 자꾸 커진다.

생각의 차이가 행복의 차이
J씨의 사연

어린 시절, 우리 집은 10평 남짓한 집에 네 식구가 살 만큼 가난했다. 부모님이 매일같이 다투시다 보니 집에 있으면 살얼음판을 걷듯 불안했고 숨이 막혔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중학생이 되면서 울적할 때면 술을 마셨다. 잠깐은 기분이 좋아졌지만, 깨고 나면 남는 게 없어 허무했다. 내 삶은 점점 어두운 구덩이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차라리 죽자’는 생각에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다. 한번은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했지만, 이렇게만 살다 죽는 게 너무 억울해 뛰어내리지 못했다. ‘내 삶이 왜 이렇게 됐지?’ 하는 생각에 잡혀 한참을 울었다. 우울한 삶에 벗어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알고 지내던 언니가 해외봉사를 권했다. 삶을 새로 시작할 기회라는 생각에 동유럽으로 해외봉사를 갔다. 거기서 ‘아이쉐’라는 친구를 사귀었다. 그 나라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고, 사람들은 살 집을 손수 지을 만큼 삶이 열악했다.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어 청소부 정도가 고작이다. 또 아이쉐는 이민자여서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독일로 일하러 간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아이쉐가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자기 나라로 가면 잘살 수 있는데 왜 여기서 힘들게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루는 아이쉐에게 이유를 물으니 웃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다 여기 살잖아. 난 여기가 좋아.” 나는 내 삶이 늘 불만스러웠는데,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더 행복하고 밝게 사는 아이쉐를 보며 부끄러웠다.

나는 그동안 꽁꽁 감추고 살던 지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딸이 있는 데다 행동도 어른스러운 아이쉐는 이모가 조카를 대하듯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쉐의 마음속 행복과 감사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힘든 일을 겪었지만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 조건도 많은데, 작은 생각의 차이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기며 살았다 생각하니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로잡고 있던 어둠에서 벗어났다.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도 차츰 느끼게 되었다. 요즘은 부모님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산다. 힘들다고 삶을 포기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지금, 난 너무 행복하다.

굿바이 우울증

어두운 내 마음을 샅샅이 찾아 기쁨과 행복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일생동안 한 번도 감기에 안 걸려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른 봄과 늦가을엔 환절기 감기가 유행처럼 찾아오고, 여름엔 냉방병 같은 감기가 기다리고 있다. 어딜 가나 콜록콜록, 훌쩍거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겨울에는 감기 바이러스와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렇듯 감기는 사시사철 우리 주변을 맴돈다.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들은 연간 평균 2~3회 감기에 걸리고 소아의 경우엔 6~8회 가량 감기에 걸린다고 한다. 영어로 감기를 ‘Common cold’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흔한 질환인지 가늠이 된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감기약은 발명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연간 2조 원이 넘는 의료비가 감기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감기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은 없다. 잘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기는 죽을병이 아니며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도 아니다.

우리 마음의 우울증을, 우리 몸의 감기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살다보면, 스스로 감당하고 싶지 않은 일이나 능력 너머의 어려운 일이 생긴다. 또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일들은 비오는 길을 걷다 만나는 웅덩이처럼 간헐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여러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그때 우리는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하고 모든 것을 피해 그냥 도망치고 싶어진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진 세상을 향해 마음에 빗장을 걸 때도 있다. 그렇게 Adieu어려운 상황, 불편한 사람 때문에 내 마음이 힘을 잃고 아플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죽을 일은 아니다.

마음의 감기이기 때문이다. 평생 안 걸릴 방법은 없지만, 걸렸을 때 ‘내가 마음을 편히 쉬어주면 나을 수 있어’라고 희망을 품으면 된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일은 별일이 아닌 것이다. ‘마음의 감기’가 찾아올 땐 받아주지 말고 단호하게 말하길 바란다.

“그래, 좀 아플 수 있지만 나을 수 있어. 이건 죽을병이 아니래.”그렇다면 우울증을 어떻게 약물이 아닌, 새로운 마음 습관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마인드교육의 권위자 박옥수 목사의 해결안을 소개하는 것으로 우울증 기사를 마무리한다.

“나도 살면서 우울할 때가 있어요. 좋지 않은 일이나 어려운 일을 겪으면 말도 하기 싫고 아무도 상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내가 우울할 때 기쁨이 없어서 우울한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아서 우울한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마음 안에 희망도 있고 감사도 있는데 내가 우울이라는 연못에 빠져 있어서 우울한 거예요.

내 삶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더라도, 우울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우울할 수밖에 없어요. 눈을 들어 다른 방향을 보면 굳이 내가 우울해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세상 끝난 것처럼,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처럼 우울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라도, 어두운 내 마음을 샅샅이 찾아보면 작은 기쁨과 소망이 있고, 행복도 있습니다. 그 기쁨, 소망, 행복을 찾아 말을 걸어보세요.

‘야, 기쁨아! 너 언제 왔어?’ ‘소망아, 네가 여기에 있었는지 몰랐네.’

이렇게 기쁨이나 소망과 이야기를 하면, 우울이 기다리다가 지쳐 버려요.

저는 목사라서 성경을 늘 읽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사마리아 성城이 아람 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성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는 말씀으로 주린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셨어요. 그런데 우울의 연못에 빠져 있던 군대장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이 군대장관 같은 사람이 바로 우울증 환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으면 배고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불가능하다는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거예요.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은 우울을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눈을 들어 보면 우울증보다 더 좋은 것들이 보일 거예요. 그쪽으로 마음이 옮겨지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어요. 정말 그래요.

우울증 환자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가 말이 안 된다고 할지도 몰라요. 내가 우울하면 우울증 환자인 게 맞지만, 바라보는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 보세요. 원하는 컴퓨터 게임을 골라서 할 수 있듯이, 메뉴판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 시킬 수 있듯이, 나도 마음속 여러 연못 중에서 우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우울을 선택했을 때만 우울해집니다. 이제 선택을 바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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