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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토 경찰악대가 사랑하는 레라토 선생님
송지은 기자 | 승인 2019.12.16 16:12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해준, 아프리카의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나라 레소토에서 겪은 1년간의 놀라운 변화.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법, 다른 문화와 인종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며 한층 성숙해진 김은진 학생의 수기를 소개한다.

아프리카의 보석 레소토

약 20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레소토. 공항에 내렸을 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치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돌산에 감탄하며 차를 타고 지부로 갔다. “얘들아, 너희가 오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오늘 갑자기 물이 끊겨서 오늘은 못 씻고 그냥 자야겠다.” 레소토는 물은 풍부하지만 수도시설이 부실해서 가끔씩 물이 끊긴다. 보통은 하루이틀이면 다시 수돗물이 나오지만 이때만큼은 5일간 나오지 않아서 1주일간 샤워를 하지 못했다. 영하 2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도 보일러가 없다보니 한국의 겨울보다 추웠다. 아프리카에 눈이 내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내가 과연 아프리카에서 1년을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지대가 높아 하늘이 가까운 레소토의 풍경은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1년을 함께 보내며 정든 태국과 중국 봉사단원들과 함께.

아프리카의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한 레소토는 사계절이 있고 시원하며 건조한 기후다. 심지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많은 관광객이 스키장을 찾아 레소토로 온다. 여름에는 기후가 건조한 덕분에 벌레나 모기가 거의 없어서 아프리카의 흔한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걸릴 염려도 없다. 물이 풍부하고 목축업도 발달한 덕에 고기도 저렴했다. 레소토가 아프리카의 숨겨진 보석으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악대로부터 배운, 사랑

레소토 굿뉴스코 지부와 MOU를 체결한 레소토 경찰청의 경찰악대에게 바이올린 수업을 하게 됐다. 레소토에 온 지 3주밖에 되지 않아서 채 적응도 하지 못한 내가, 부족한 영어와 바이올린 실력으로 누구를 가르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실력이 탄로나면 아무도 내게 악기를 배우려고 하지 않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경찰밴드는 나를 좋아해줬다.

생일 다음 날, “어제 생일이라 엄마랑 통화를 했는데요. 경찰밴드 여러분들 덕분에 행복하게 잘 지낸다고 이야기했어요” 나를 좋아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경찰악대 단원들은 어제가 생일인지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그러더니 경찰단원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는데 노래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경찰악대 멤버 중 한 명인 레보앙이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항상 열심히 노력하며 나를 따라준 마타바네(오른쪽)는내가 가장 아끼던 레소토 경찰악대 단원이다.
이기적인 나에게 사랑을 알게 해준 경찰악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딸처럼 아껴주는 그들 덕분에 레소토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Happy Birthday Lerato’라고 장식된 케이크에는 경찰악대 단원들이 내게 지어준 현지 이름인 레라토Lerato(사랑이란 뜻)가 적혀 있었다. 멤버들의 마음에 감동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마치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는 게 고마웠다. 교사인 내게 오히려 멤버들이 다가와 모르는 영어와 현지어를 가르쳐줬다. 매주 바이올린 수업을 하며 영어와 현지어 사용을 쓸 기회가 많았던 나는 다른 봉사단원보다 언어가 빨리 늘었다.

내 한계의 둥지에 머무르려던 생각을 버리고 부담을 뛰어넘자 행복이 배가 되어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완벽한 모습만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내가 서툴고 부족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소감’의 맛을 깨달은 순간

“레라토, 이게 우리 엄마가 너에게 주려고 만드신 ‘소감’이라는 거야. 한번 먹어 봐~!” 현지 친구 타또가 준 소감은 한국의 식혜와도 같은 레소토의 전통 음료였다. 시고 달고 목으로 삼킬 때 느끼한 맛을 내는 소감은 왜 먹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는 독특한 맛의 음료였다. 한국인 단원들 누구도 익숙지 않은 맛의 소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에 레소토의 어느 지역을 방문하든 소감을 내왔다. 음식을 주는데 거절이 미안해 참고 계속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디네오의 졸업파티에 초대받아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갔는데 디네오의 할머니께서 소감을 주셨다. “너희가 오면 주려고 만들어서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어놨어. 시원하지?” 또 소감이었다. 이제 포기하는 심정으로 소감을 마셨는데 신기하게 소감이 너무 달고 맛있었다. 이제껏 마셨던 소감과 다른 맛인가 싶어서 같이 온 단원들에게 너네도 맛있냐고 물었다. “무슨 소리야? 똑같은데. 나는 몇 번을 마셔도 못 먹겠어.” 그날 나는 다른 단원들이 남긴 소감까지 혼자서 다 마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감만이 가진 특별한 맛을 알게 됐고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맛을 알면 헤어나올 수 없는 음료 ‘소감’.
해외봉사자가 되려고 훈련 중인 레소토 학생들과 마인드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익숙한 것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나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포기하는 게 익숙했다. 소감의 맛을 깨달은 순간 내 섣부른 선입견 때문에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많이 놓치고 살았다는 걸 알았다.

학창시절, 성적 잘 받는 게 유일한 목표였던 난 앞만 보고 달리면서 주변에 있던 행복을 놓치고 살았다. 순수하게 나를 사랑해주는 경찰악대 단원과 레소토 친구들에게서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차갑게 얼었던 나의 마음이 녹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한 것에만 머물던 내게 매일 경험해 본적 없는 부담스러운 일이 찾아왔지만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며 내 한계를 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나를 180도 변하게 해준 레소토에 감사하다.

글=김은진(굿뉴스코 레소토 단원)

송지은 기자  songj86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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