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자전적 소설 <인간의 대지>

좋은 책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다. 또 마음에 한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것들에 대한 답을 찾아갈 기회를 만들어 주는 책이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섭리를 새록새록 발견해가듯이 우리는 책 속에서 사색하며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을 더듬는다. <인간의 대지>는 나로 오래도록 생각하게 하고, 긴 여운과 질문을 남긴 그런 책이다.

평생을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면서,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길들여진 ‘수평적 시각’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수직적 시각’으로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 보고 인류의 문명을 조명하면서 미래의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해 고찰해 온 작가가 있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인데, 프랑스 리옹 출신인 그는 공군에 입대한 것을 계기로 비행기와 인연을 맺어 조종사로서의 삶을 살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기 조종사로 종군해 전쟁 말기에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행방불명되었다. 조종사로 지내면서도 글쓰기를 지속해왔던 그는 비행하며 겪은 다양하고 절박했던 경험들을 토대로 인간에 대해 성찰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자전적 소설 <인간의 대지>를 저술했다.

1939년에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철학적이고도 시적인 표현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데, 안데스 산맥의 눈 속에 불시착하여 구사일생으로 귀환하는 동료 이야기와 무어인(북서 아프리카 이슬람교도를 가리키는 호칭) 반군 손에 노예로 팔렸지만 결국 귀향하는 어느 유목민 이야기, 리비아 사막에 추락해 신기루와 싸우다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이야기, 평범한 회계원이 내전에 참여하며 겪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머물렀던 몇몇 장면들이 있어 소개한다.

그것은 그들의 오만함을 꺾기 위해서였다

사하라 사막이 삶의 전부인 무어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우매함을 엿볼 수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하늘을 넓게 볼 수 없듯이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인간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성향이 다분하다. 주인공이 때때로 오만한 자들을 자신의 비행기에 태워 상공에 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노선이 맞으면 무어인 우두머리들을 비행기에 태워 세상 구경을 시켜주곤 했다. 그것은 그들의 오만함을 꺾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포로를 학살하는 것은 증오로 그런다기보다 멸시해서 그러기 때문이었다. …그 오만함은 자신들이 가진 힘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사부아 지방으로 데리고 갔었다. 가이드가 그들을 폭포로, 마치 머리를 땋은 기둥처럼 웅장하게 포효하는 폭포 앞으로 데리고 갔다. … 사하라, 이곳에서는 가장 가까운 우물로 가려해도 며칠을 걸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입을 다물었고 말없이 침중한 표정으로 장엄한 신비가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쉽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이 오만한 데서 기인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멸시는 오만에서 나온다’는 말은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면 환상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음을 사고하게 해주었다.

장애물을 극복하는 강인함, 꿈을 품은 자의 것이다

주인공이 ‘쥐비 곶’이라는 지역에서 공항 책임자로 일할 때, 자신을 비행기에 숨겨 고향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간곡히 애원하는 어느 노예를 만난다. 노예로 잡혀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절망하다 결국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예의 삶에 순응해 살아가는데, 그는 달랐다. 눈앞에 펼쳐진 절망적인 상황에 저항했으며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믿음 속에서 지냈다. 그는 4년간의 긴 포로생활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세 자녀가 살고 있을 고향 ‘말라케치’를 체념하지 않았다.

가족과 지내던 집을 가슴에 간직한 채 ‘노예’라는 옷을 벗어버릴 날을 기다렸고, 밤마다 눈을 감고 별 아래 자리 잡은 자신의 하얀 집을 떠올리며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그림이 현실이 된 것이다. 꿈을 품은 자에게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극복해낼 수 있는 강인함이 뿜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한번은 주인공과 정비사가 탄 비행기가 야간 비행을 하던 중 난기류로 항로를 벗어나 리비아 사막에 추락한다. 그곳에서 구조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대목이 나오는데, 주인공은 ‘추락하면 비행기 잔해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규정 조항을 지키며 동료들이 수색에 성공해 자신과 정비사를 발견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마실 물이 다 떨어지자 결국 비행기를 떠나 사막을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끝없이 나타나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신기루다. 주인공은 신기루를 부정하기 위해 자신과 싸워야 했다. 눈에 보이는 지극히 사실적인 광경에 판단력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는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내 이성에 호소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말한다. ‘저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흥분하지 마. 착란현상이라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멍청이 같으니, 저걸 만들어낸 게 너라는 걸 잘 알잖아.’ ‘그러면 세상에 진짜는 아무것도 없어’”

결국은 모든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들은 신기루가 사라지지 않는 사막을 신물 나게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걸을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조난당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주저앉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 조난자의 침묵에 가슴이 찢길 대로 찢긴 가족들을 떠올릴 때 신기루를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혼자라면, 난 그냥 누워버릴 텐데…” 나를 붙잡아주는 힘의 근원을 생각해보게 하는 한마디였다.

‘직선 코스’를 선택하다

높은 하늘에서 수직적으로 내려다보는 시각은 작가로 하여금 훨씬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일상과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그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과 관념적으로 부여해온 가치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비행기를 통해 직선을 배웠다. 이륙하자마자 우리는 마을의 샘터로 가는 길, 도시와 도시를 구불구불하게 이어주는 길을 버린다. 그때부터 우리는 샘에 대한 욕구에서 해방되고 그토록 귀하게 여기던 예속성에서 벗어나 곧바로 멀리 떨어진 우리의 목적지로 기수를 돌린다. 직선 항로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폐허의 틈새에서 피어난 생명의 꽃들과 기후가 유리한 곳에서 공원처럼 피어나는 문명들을 살피면서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읽어간다.”

나도 내 일상에서 한 발짝 벗어나 ‘다시 읽기’를 시작한 시점이 있다. 교직에 몸담은 지 20년이 되어갈 무렵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았다. 가르치는 일이 생계의 수단이 되어 습관적으로 출퇴근하고 있었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도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교육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가진 한 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삶에 변화가 찾아오려면 먼저 마음이 변해야 하고 마음의 변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한 대안학교로 옮겨 학생들에게 마음의 세계를 가르치며 행복하게 지냈다.

대지를 벗어나 하늘 위에서 나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방향 없이 구불구불 나 있는 내 마음의 길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직선코스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라는 독특한 탐구도구와 ‘행동’이라는 탐구방식으로 작품을 탄생시킨 행동주의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그의 비행기는 우리의 시야를 산과 바다, 사막으로 옮겨주어 인간이 얼마나 왜소하고 유약한 존재인지 일깨워 준다. 인간은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사흘을 견디지 못한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자신을 우물에 묶어둔 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약하기 그지없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인간이 존엄하고 위대하다고 말한다.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별한 ‘정신’ 때문이다. 특히 그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마음의 힘을 중시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마음의 연결로 인한 강인함으로 생명을 되찾은 노예 이야기에서 보듯이 인간은 마음의 힘으로 한계를 뛰어넘는다.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일상을 붙들고 있는 대지를 벗어나는 경험으로, 주인공이 던진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가치인가?’라는 질문 앞에 오늘도 조용히 나를 세워본다.

글=변미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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