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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봉사자들의 실수담 '내가 왜 그랬을까?'
고은비 기자 | 승인 2019.12.10 14:04

1년간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사느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을 해외봉사단원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던 실수담이 이젠 당당한 경험과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나만 몰랐던 사실
페루 정하은

유쾌하고 정 많은 페루 사람들. 이들은 지난 9개월간 나의 친구, 때론 가족이 되어주었다.

한번은 현지인 친구 ‘셰일라’에게 점심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요. 기쁜 마음으로 셰일라네 집에 도착했는데, 셰일라의 어머니가 환한 미소로 저를 반겨주셨죠. 셰일라의 언니, 동생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를 도와 식사준비를 함께 했어요. 그런데 셰일라의 어머니는 틈만 나면 바닥을 청소하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보며 ‘굉장히 깔끔한 분이시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셰일라 가족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머니는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바닥을 쓸고 닦으셨죠. 저에게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시면서 말이죠. 그런 어머니에게 청소를 이토록 많이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여쭤보지는 않았어요. 셰일라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한 뒤 나가려고 현관문 앞에 섰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신발을 신으려고 보니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있는 거예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물론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셰일라 어머니께 무척 죄송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페루에 온 뒤 누군가의 집에 처음 초대받은 것이어서 저도 모르게 신발을 벗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맨발인 저 때문에 어머니가 계속 바닥을 닦으셨던 거예요. 귀찮을 만도 한데 저를 배려해서 활짝 웃으며 청소를 하신 셰일라 어머니를 생각하니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셰일라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종종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제게 소중한 친구와 가족이 되어준 페루 사람들과 함께 감동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사회자의 최고 실수는?
바누아투 강승완

무전여행 중 투투바 섬에서 만난 유치원 교사와 아이들. 바누아투 투투바 섬에는 약 200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맨 오른쪽 위가 강승완.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 봉사단원들은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태권도와 음악, 댄스 등을 가르치는 아카데미 수업을 엽니다. 특히 저는 사회를 맡아 프로그램을 이끌어야 했는데, 앞에 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았죠. 그중 저를 가장 당황스럽게 한 건 바누아투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그들이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질문을 해도 호응을 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내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앞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는 어느 섬에서 왔니?’ 그런데 아이가 깜짝 놀라며 겁을 먹는 거예요. 미안하다고 얼른 사과를 하긴 했지만 아이의 반응에 ‘바누아투 사람들은 나한테 마음을 열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어 아카데미를 하면서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달 전에 봉사단원들이 산토 섬으로 6박7일간의 무전여행을 떠났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바누아투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고 처음 만난 우리를 집에 초대해 재워주었죠. 심지어 우리가 하는 일들에 관심을 보이며 이런저런 질문까지 했습니다. 무전여행을 하며 ‘바누아투 사람들은 이렇더라’ 하는 제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오랜 시간 바누아투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이에요. 저는 어학연수를 하기 위해 해외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바누아투는 제게 언어와 더불어 잊을 수 없는 추억, 따뜻한 마음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나 한국 사람이야
베냉 유가언

베냉 봉사단에서 매주 여는 중국어.영어.한국어 캠프를 홍보하기 위해 어느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였어요. 내리쬐는 햇볕으로 몸이 점점 지쳐갈 무렵 어떤 여학생이 저를 불렀습니다.

“너 손에 들고 있는 게 뭐야?” 불어를 잘 못했던 저는 열심히 캠프 홍보물에 적힌 글을 읽어주기만 했어요. 학생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저에게 계속 ‘쎄우C'est ou?’라고 물었습니다. 불어로 ‘여기가 어디야?’를 ‘쎄우?’라고 하거든요. 저는 ‘쎄우’를 ‘서울’이라고 잘못 알아듣고 너무 반가워서 활짝 웃으며 “너 서울을 알아? 나 한국 사람이야!”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동안 중국 사람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서 서울이라는 말에 더 기뻤던 거죠. 순간 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홍보물을 가리키며 ‘쎄우?’라고 물었는데, 저는 또 한 번 미소 짓고 홍보물을 주며 “꼭 참석해 봐!”라고 말한 뒤 돌아봤습니다.

베냉 깔라비시의 한 사립대학교를 방문해 언어캠프를 홍보했다.
잊지 못할 실수로 얻은 나의 소중한 친구, 마리엔과 함께.

당시에는 ‘쎄우’가 ‘거기 어디야?’라는 말인 줄 몰랐기 때문에 혼자 이상한 말을 하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랬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다가도 얼굴이 빨개지죠. 신기한 건 그날 홍보물을 주었던 학생이 제가 진행하는 한국어 캠프에 왔다는 거예요. 얼마 후에 그 친구가 제게 말하길 “너와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웃으며 자신감 있게 캠프를 소개하는 네 모습을 보며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어!”라고 했어요. 요즘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 사이로 지내는데, 좋은 친구를 얻게 해준 그날의 실수를 잊지 못할 거예요.

리더의 지각
스리랑카 황민우

지난 8월, 스리랑카 봉사단은 현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박3일간의 코리안 캠프를 개최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숙식도 해야 하고, 바쁜 일정으로 진행되는 캠프이기 때문에 행사를 책임감 있게 리드해갈 사람이 필요했는데, 봉사단원들을 아무리 살펴봐도 적임자는 연장자이자 경험이 풍부한 저였죠. 저는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기상미션을 제안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는데요. 물론 담당자는 저였습니다.

“이 기상미션은 팀원이 모두 함께해야 합니다. 내가 늦게 일어나면 다른 팀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을 기억하고 열정을 다해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가자들에게 멋지게 공지한 후 봉사단원들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내일 5시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주세요. 절대 늦으면 안 됩니다!”

워터올림픽을 진행하는 모습.

늦장을 부리는 단원들이 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저 자신을 ‘리더십 있고 행사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캠프 첫째 날 저녁,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싸늘한 기운이 제 몸을 스쳤습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오전 7시 30분이었어요.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셀 수 없이 많이 쌓여 있었죠. 떨리는 손으로 단원들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선배, 왜 안 나오세요?’ ‘선배, 5시까지 모이는 거 아니었나요?’ ‘선배, 어디 있는 거죠?’

그동안 제가 했던 말과 행동이 모두 떠오르면서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대체 나는 왜 이럴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해놓고 늦다니! 그것도 2시간 반이나!’ 순간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새벽에 일어 났지만 머리가 아파서 나갈 수 없었어. 못 나간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오류가 나서 전송이 안 된 거 같아. 미안해’라고 거짓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죠. 동정심을 일으키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던 중에 지부장님이 언젠가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났어요.

‘실수할 수도 있죠. 잘못한 걸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발전하지만, 숨기고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만 하면 퇴보합니다. 어떤 자세로 사느냐에 따라 삶의 차이는 커져요. 당장 보기에 잘하는 사람이 아닌, 실수를 인정하고 발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어 아카데미 마지막 날, 스리랑카 전통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손 모양은 코리아의 K를 의미한다.

쏟아져 올 비난의 화살이 두려웠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로 하고 얼른 메시지에 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침에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서둘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맙게도 단원들은 저를 이해해주었죠. 은연중에 ‘내가 누구보다 일을 많이 하고 열심히 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창피했어요.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실수들을 많이 저질렀지만 오히려 배우는 기회가 되었고, 자유로워지고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은비 기자  bsh002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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