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곽백수

올해로 데뷔 21년째인 웹툰작가 곽백수는 창의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트라우마’와 ‘가우스전자’ 등 지금까지 그린 단편만화만 4,500여 편에 이른다. 그 한 편 한 편에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작품을 그릴까?’를 고심한 흔적이 배어 있다. 그가 풀어놓은 창의력의 비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한 달을 앞서 사는 사람, 비결은 창의력!

지난 10월 24일 목요일 밤 11시, 평소처럼 웹툰 ‘가우스전자’ 시즌4 430화가 네이버 웹툰에 업데이트되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여느 때와 전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화가 지금까지 8년 2개월간 연재된 ‘가우스전자’의 마지막 화였기 때문이다. 댓글로 나타난 독자들의 심정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이렇게 갑자기 끝나다니…’라는 아쉬움과 ‘그동안 가우스전자를 보며 참 즐거웠다’는 고마움이었다. 이날 업데이트된 마지막화에는 평소보다 10배는 많은 6,3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렇다면 이 만화를 그린 곽백수 작가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우스전자’의 팬이자 작가의 팬으로서 내심 궁금했다. 사실 곽백수는 웹툰계에서 모범생으로 손꼽히는 작가다. 매일같이 수십 종의 만화가 올라오는 포털사이트의 웹툰 코너에서 휴재 공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휴재의 이유는 다양하다. 단순히 작가의 게으름부터 건강상의 이유, 개인 및 가족의 경조사 등…. 그러나 그는 2007년 네이버 웹툰에 ‘트라우마’ 연재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속칭 ‘펑크’, 즉 무단휴재를 한 적이 없다. 펑크는커녕 한 달 연재분을 쌓아놓고 있다는 소문이 팬들과 동료작가들 사이에 있을 정도였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부러운 대목이다.

한 달을 앞서 사는 비결을 들으러 일산에 있는 곽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간 날은 ‘가우스전자’ 연재가 끝난 지 2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도 그는 작업실에 나와 있었다. 평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작업실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하루 8시간을 꼬박꼬박 만화를 그리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성이 롱런해 온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하하, 저는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만화가니까 그저 본업에 충실한 거죠. 원래 ‘가우스전자’는 10년을 연재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직장생활을 소재로 8년을 그리다보니 더 이상 참신한 이야깃거리를 찾기 힘들었어요.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지만, 오히려 후련하고 뿌듯합니다.”

하지만 그 후련함과 뿌듯함을 채 만끽할 틈도 없이, 그는 요즘 차기작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새 작품의 스토리를 구상하며 원고를 그리는 틈틈이 캐릭터 설정·스토리텔링·작화 기법과 구도 등을 연구하며 자신을 계속 단련시키고 있다.

‘20년 넘게 4,500여 편의 만화를 그려온 그에게 아직도 발전의 여지가 있을까?’ 싶지만, 곽 작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제 실력은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다만 어제보다 한 단계 발전할 오늘을 기대하며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주효한 것이 창의력입니다.”

‘창의력’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기자의 귀가 절로 솔깃해졌다. 다른 작가들이 마감을 못 맞춰 허덕일 때, 한 달치 작업량을 미리 끝내놓는 모범작가가 말하는 창의력이란 어떤 능력일까?

‘창의력=거창한 것’이라는 눈높이부터 낮춰라

다 빈치, 에디슨,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창의력 하면 금방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발명이나 발견을 남기며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곽 작가는 ‘뭔가 거창하고 기상천외한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리는 것이 바로 창의력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제가 생각하는 창의력은 나에게 혹은 조직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에요. 학생이라면 ‘어떻게 짧은 시간에 많은 공부량을 소화할까?’에 대한 답을 찾고, 기자라면 ‘오늘 어떻게 해야 곽백수 작가의 깊은 속내를 이끌어낼까?’를 고민하겠죠. 그렇게 문제해결을 위해 애쓰다가 답이 툭 튀어나오는 것, 그게 창의력이에요.”

곽백수는 네이버 웹툰 작가들 중에서도 태블릿과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가장 먼저 사용한 얼리어답터다. 그는 이 또한 창의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소모하는 반복작업을 줄이고, 좀 더 쾌적하고 빠르게 만화를 그릴까?’를 연구하던 중 디지털도구가 눈에 띄었다는 것.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가지 문제를 겪습니다. ‘하늘이 흐린데 오늘 우산을 가져 가, 말아?’ ‘남자친구랑 싸웠는데 어떻게 풀지?’ 이걸 해결하려고 머리를 쓰는 것, 그게 창의력을 발휘하는 과정이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아마추어가 영감을 기다릴 때 프로는 작업한다

웹툰 작가들은 대개 연재를 끝내면 여행을 가거나 작업에서 한동안 손을 떼는 등 휴식기를 갖는다. 하지만 곽백수는 앞서 소개했듯 마음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신작 준비에 한창이다. 이 또한 그가 말하는 창의력의 비결과 맞닿아 있다.

“운동을 쉬면 근육이 죽어버리듯, 생각하기를 쉬면 두뇌가 무뎌집니다. 저나 주변 작가들의 경험상 3개월 정도 만화를 쉬었다가 다시 그리면, 예전 감각을 회복하는 데 1년 정도 걸립니다. ‘가우스전자’는 끝났지만, 제가 작업을 쉬지 않는 건 지금의 컨디션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예요. 스토리 짜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생각하는 훈련을 계속 하면 뇌가 단련되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곽백수가 꼽은 ‘가우스전자’ 베스트 에피소드.‘거품기획’의 사원 ‘이직중’은 이름처럼 언제든 회사를 떠날 생각뿐이다. 늘 흐리멍텅하던 그의 눈빛이 어떻게 똘방지게 바뀐 걸까? 그 사연은 ‘가우스전자’ 시즌4 205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곽백수가 꼽은 ‘가우스전자’ 베스트 에피소드.‘거품기획’의 사원 ‘이직중’은 이름처럼 언제든 회사를 떠날 생각뿐이다. 늘 흐리멍텅하던 그의 눈빛이 어떻게 똘방지게 바뀐 걸까? 그 사연은 ‘가우스전자’ 시즌4 205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가우스전자’의 탄생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21년 내공의 만화가답게 그림 작업은 그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건은 그림에 재미와 생명을 불어넣는 스토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 중 사흘을 그는 스토리를 짜는 데 할애한다. 하루에 스토리 2개를 짜는 게 목표지만, 운좋은 날은 3~5개의 스토리가 나오기도 한단다. 그렇게 일주일 연재분인 스토리 5개가 나오면, 남은 이틀은 그 스토리대로 그림을 그린다. 채색과 배경 작업을 도와주는 어시는 따로 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물론, 인터넷 게시판의 직장인 신변잡기도 좋은 소재죠. 그 소재를 놓고 ‘여기에 어떻게 스토리를 입히지?’를 계속 고민합니다. ‘창작에는 영감靈感이 필요하다’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발벗고 뛰어다니고, 팔을 걷어붙이고 매달리고 하는 과정 자체에서 최고의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죠. 멍하니 있으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건 게으른 사람이죠.”

그는 ‘아마추어가 영감을 기다릴 때 프로는 작업한다’는,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 척 클로스의 말을 인용했다.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큰 창작작업을 하다 지칠 때 되새겨보면 힘이 솟을 만한 금언金言이었다.

부딪히며 배운 것이 진정한 내 것이다

인터넷에서 그의 초기작 ‘트라우마’를 찾아 ‘가우스전자’와 비교해보면 그림체나 채색, 배경처리 등이 몰라보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개그코드도 발전했다. ‘트라우마’의 개그들 중에는 피식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허무개그가 많았다면, ‘가우스전자’의 개그들은 빵 터지면서도 세태를 꼬집는 등 정곡을 찌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 넘게 연재를 계속하며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결국 질보다 양입니다. 많이 그리면 저절로 느는 거죠. 이현세 선배님은 ‘똥이라도 계속 그리면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세요. 작가는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는 직업입니다. 실패에서도 배우고, 성공에서도 배우는 거죠.”

그렇게 배움을 거듭하는 동안 어느새 몰라보게 성장한 자신을 보며, 그리고 앞으로 더 성장해 갈 자신을 생각하며 그는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그 희열에 취하지는 않는다. 늘 자신의 작품을 챙겨보는 팬들 때문이다. ‘가우스전자’는 전성기에 조회수 100만, 연재종료 전까지도 40만을 기록할 만큼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다. 영향력이 큰 만큼 책임감도 클 수밖에 없다.

“댓글을 꼼꼼히 챙겨봅니다. 제 작품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쳐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거든요. 댓글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죠. ‘여기 그림이 틀린 것 같다’ ‘이런 점은 비현실적이다’라는 지적을 받으면 뜨끔합니다. 물론 그런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죠.”

곽백수는 ‘좋은 만화를 그리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만화’란 어떤 만화일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잘 드러내 주는 만화 아닐까요? 모든 이야기구조를 가진 장르의 목표이기도 하구요.” 남보다 한 달을 앞서 사는 그가 전해준 창의력 노하우는 간단하고도 명쾌했다. 그는 ‘사고思考’의 참 의미를 깨닫고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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