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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나를 위해 깜짝 등장한 ‘베드버그’
오성민 | 승인 2019.12.05 20:58

소심한 그가 새로운 경험을 하러 자메이카로 떠났다. 아름다운 해변과 별빛이 있는 나라에서 1년을 보낼 생각에 설레었는데, ‘소통’이 문제였다. 뜻밖의 ‘베드버그 소동’을 통해 마음의 벽을 쌓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하고 자메이카에서 행복한 추억을 만든오성민 씨가 12월 표지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 성격이 너무 싫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작은 키와 똥똥한 체형 때문에 놀림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더욱 소심해진 것 같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썼다. 또 나는 싫어도 좋은 척, 괜찮은 척 마음에 가면을 쓰고 지냈다. 이런 내 성격을 아시고 그러셨는지, 부모님은 내게 활동적인 일들을 많이 시키셨지만 내 가면은 쉽사리 벗겨지지 않았다.

‘커서 해외봉사를 꼭 가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형과 누나 때문이었다. 대학생이 된 형과 누나가 각각 라이베리아와 캄보디아에서 봉사했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많이 변해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언어를 배우고 봉사하며 행복했던 이야기와 가족이 그리웠던 이야기,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던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던 형과 누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생이 되었는데, 진로문제만 생각하면 고민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서 잠시 여유를 가지려고 입대 신청을 하고 한 달 뒤부터 경상북도 영천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년 9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하며 지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다짐했던 바로 그 ‘해외봉사’를 떠올렸다. 학교에 하루 빨리 복학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게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 후 곧바로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자메이카로 왔다.

도착한 지 2주만에 찾아온 후회

카리브해에 있는 자메이카는 바다가 아름답고 블루 마운틴 커피, 레게음악,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 등이 유명한 나라이다. 자메이카에 도착해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 흥겨운 레게 음악과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나를 반겼는데, 나는 유독 별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메이카의 첫인상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아, 자메이카에 오길 정말 잘했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고 앞으로 보낼 1년이 너무 기대됐다.

커버스토리의 주인공 오성민 단원(가운데)과 라이언(왼쪽), 마리오(오른쪽)

자메이카는 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수준과 비슷한 가난한 나라다. 물자도 부족하고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은 데다 물이 귀해서 아주 더운 여름에 단수가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물가는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졌지만 자메이카에 올 때 이미 각오하고 온 터라 그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나를 진짜 힘들게 했던 건 다름 아닌 소통문제였다.

봉사단 센터에서 함께 지내는 남학생들은 멕시코 사람 마누엘과 오네시모, 아이티 사람 마리오, 한국 사람 나와 요한이, 그리고 현지인 라이언 등 6명이다. 자메이카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지만 ‘파투아patois’라는 현지 언어가 있어서 친한 사람들끼리는 현지어로 이야기하고, 또 새로운 언어에 대한 흥미가 많아서 스페인어나 불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센터에서는 주로 스페인어나 파투아어로 대화했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2주쯤 됐을 때부터 너무 불편하고 자메이카에 온 것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다 가끔씩 나를 힐끔 쳐다보면 비웃는 거 같았고, 외로워서 점점 마음을 닫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머릿속은 ‘모두가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앞으로 1년을 이렇게 지내야 한다는 현실에 절망스럽기만 했다.

‘베드버그’ 덕분에 마음을 터놓다

자메이카에 온 지 2달이 채 안 됐을 때, 봉사단원들 몸에 한 명씩 붉은 반점이 돋아나면서 가렵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다른 단원들보다 더 심해서 반점이 온몸에 퍼져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피부가 깨끗했기 때문에 극심한 가려움을 참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개미에게 물린 것 같다며 약을 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답답하게 2주쯤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 마누엘이 드디어 벌레를 잡았다. ‘베드버그’였다.

베드버그는 번식이 아주 빠른 벌레다. 그래서 지부장님은 우리에게 일주일간 따로 떨어져서 생활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생활했고 쓰던 가구는 모두 버렸다. 기존 숙소를 소독하고 살균작업을 마친 뒤 새 가구를 들여놓는데, 가구 배치를 어떻게 할지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내가 의견을 내면 모두 무시할 거라고 생각하며 내 기분을 거스르게 하는 사람과는 싸우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특히 방장인 자메이카 친구 라이언에게 쌓인 감정이 많아 꼭 한 번 퍼부어주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그날의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라이언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모두 내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의견을 이야기하자 친구들이 내 말을 따라주었고 날 위해 수납장까지 구해 와 배치해주었다.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투머로우> 표지 촬영, 단원들 모두 함께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주위 사람들의 속마음을 볼 수 있었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 모두 나를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밤 너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잠이 잘 안 와서 그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을 되짚어 보았다. 친구들은 항상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는데, 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 숨기고 지내온 것들이 많았다. 베드버그 사건 덕분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 우리 센터 주변에서 베드버그가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나를 위해 깜짝 등장해 준 베드버그가 얼마나 고맙던지! 혼자 고립되어 힘들어하며 불평했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자메이카에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함께 지내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중요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말했더니 그들 또한 나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요즘 그들은 나에게 가족처럼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서로에게 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으로 즐겁고 나보다 어린 동생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면 모두가 나를 비웃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나를 감추고 보호하려고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나를 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신 마음을 터놓자 오해는 사라지고 금세 가까워졌다. 자메이카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자메이카에 오기 전과 후의 오성민은 다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생겼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늘 조심조심했던 내가 지금은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출 정도로 자유롭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요즘 정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벌써 12월! 지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처음 해변에 가서 다 같이 실컷 놀던 날, 너무 더워서 방에 드러누워 헥헥거리던 날, 거리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던 날…. 이 모든 기억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자메이카에 다시 올 날이 있을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남은 시간 동안 더 자주 표현하고, 더 많은 추억들을 남기고 싶다. 그리고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웃고 떠들며 추억하고 싶다.

글=오성민(굿뉴스코 자메이카 단원)

오성민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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