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컴퓨터의 편리함으로 인해 고급스럽고 다양한 모양의 필기도구조차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신 정보통신(new media)이라 불리는 이 시대, 비약적으로 발달된 인터넷의 혜택으로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편집, 수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옛날에는 종이, 붓, 먹, 벼루는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하여 특히 학문에 뜻을 둔 학자 곧 선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었다. 그밖에 종이를 눌러 반듯하게 고정시켜주는 문진(文鎭)이 있으며, 물을 담아 벼루에 붓는 연적(硯滴)이 있다.

연적은 이름도 모양도 다양하다. 주전자 형태를 수주(水注), 주발이나 병의 형태를 수우(水盂), 배가 불룩 나온 두꺼비 형태를 섬여()라 하고 수적(水滴), 연수(硯水)라는 이름도 있다. 오리, 원숭이, 거북이, 반달, 복숭아 등 매우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재질은 구리, 돌, 옥으로 만들어지다가 그 뒤에 도자기로 만들어졌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연적은 도자기로 만들어져 뚜껑도 없이 윗면에 구멍만 두 개가 나 있다. 가운데에 난 구멍을 풍혈(風穴), 가장자리에 난 구멍을 수혈(水穴)이라 부른다. 풍혈은 공기가 드나드는 구멍이며 수혈은 물이 드나드는 구멍이다.

연적에 물을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적을 물속에 집어넣으면 된다. 연적을 물속에 집어넣으면 수혈로 물이 들어가면서 풍혈을 통해 기포를 일으키며 공기를 뿜어낸다. 제 아무리 연적을 물속에 집어넣어도 연적 속에 물을 담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풍혈을 막았을 때이다. 풍혈을 막으면 신기하게도 물이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는다. 연적은 반드시 두 개의 구멍이 모두 열려 있어야만 한다.

마음은 또 하나의 연적이다. 연적 속에 물이 채워지지 않은 만큼 공기로 채워지듯 마음에 말씀이 채워지지 않은 만큼 허망한 생각들로 채워진다. 사단은 생각만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것을 버리지 못하도록 답답하게 마음의 풍혈을 막아놓는 일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열게 하셔서 두 구멍 모두 정상적인 기능을 하게 하신다. 이제 정상적인 그 마음을 말씀 속에 담그기만 하면 한 구멍으로 말씀이 들어가는 동시에 또 한 구멍으로 생각이 버려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어 오랫동안 육신의 소리를 크게 들으며 살았던 것이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엘리사를 찾아왔으나 쉽게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것도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할 풍혈이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구원을 받고도 그 막힌 풍혈로 말미암아 풍요 속에서 기근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넉넉한 아버지와 살면서도 마음에서 받은 적이 없어 그것을 맘껏 누리지 못했던 큰아들로 살아온 삶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 한심스러웠다.

시원스레 뚫린 두 개의 구멍, 연적을 물속에 집어넣었더니 말씀이 들어가면서 생각의 기포를 일으킨다. 그럴 때 마음의 연적은 아마도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무척 행복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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